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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 해로운 말로부터 몸과 마음을 지키는 20가지 언어 처방
리자 홀트마이어 지음, 김현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월
평점 :
#정신건강 #마음챙김 #자존감 #멘탈관리 #멜라토닌 #뇌과학 #심리학 #심리치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사람은 말에 맞기도 하지만, 사실은 말 이후에 혼자서 한 대 더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더 이상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는 그 “추가 타격”을 멈추게 하는 책입니다. 리자 홀트마이어 작가님은 독일에서 상담과 소통 코칭을 해 온 분답게, 대화를 ‘예쁜 문장 만들기’가 아니라 신경계가 반응하는 자극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말의 문제를 도덕이나 인성 탓으로 몰지 않고, “어떤 문장이 어떤 스트레스 회로를 켜는가”라는 관점으로 풀어갑니다. 전문 연구서라기보다 교양서이지만, 사례–개념–대체 문장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분명해 설득력이 생깁니다.

대화 관련 책이 흔히 “공감해라, 경청해라” 같은 원칙을 말하는 데서 끝난다면, 이 책은 언어 패턴의 이름을 붙여 ‘증상’처럼 다룹니다. 무례, 비난, 수동공격, 책임 회피형 사과, 피플 플리징, 독이 되는 긍정, 가스라이팅 같은 장면을 “아, 이거 내 일상인데?” 수준으로 구체화하고, 그때 몸과 마음이 왜 반응하는지까지 연결합니다. 즉, 기술(스킬) 이전에 ‘진단(패턴 인식)’을 먼저 줍니다. 그래서 독자는 ‘상처받지 말아야지’ 같은 결심 대신, “지금 내 뇌가 경보를 울렸구나”라고 상황을 분리해 보는 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인식 변화는 한 가지입니다. ‘상대의 말 = 사실’이 아니라 ‘상대의 말 = 자극 + 내 해석’이라는 분해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쁘지 않아요” 같은 애매한 칭찬, “네가 좋을 대로 해” 같은 수동공격, “미안, 근데 나 원래 이런 성격” 같은 회피형 사과를 들었을 때, 예전엔 ‘내가 예민한가?’로 끝났다면 이제는 “저건 패턴이고, 내가 반응하는 포인트가 있다”로 바뀝니다. 그 순간부터 선택지가 생깁니다. 거리 두기, 재확인 질문, 경계 설정, 혹은 대화 종료까지요. 말하자면, 감정이 자동 실행되던 자리에 ‘설정 메뉴’가 뜹니다.

제가 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장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반추의 메커니즘입니다. 여기서 작가님이 제시하는 핵심은, 생각을 ‘정답 찾기’로 몰지 말고 메타인지적으로 관찰하라는 겁니다. 인지행동치료(CBT)에서 말하는 자동사고 점검과도 닿아 있고, “증거–해석–대안”으로 재구성하면 반추가 ‘사실 확인’이 아니라 ‘불안 확대’였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따라서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자연스레 다음부터는 “그 말의 진짜 뜻은?” 대신 “내가 지금 불안을 줄이려고 추측으로 때우고 있나?”를 먼저 묻게 됩니다. 그리고 행동은 간단해집니다. 필요하면 확인 질문(“아까 그 부분, 제가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나요?”), 아니면 종결(“지금은 결론이 안 나니 내일로 넘기자”)로 루프를 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개인적인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마음이 불편한 대화를 겪고 나면, 생각을 쫓아다녔습니다. 하나의 말이 튀어나오면 “그 말의 진짜 의도는 뭘까” 하고 눌러보고, 또 다른 의심이 고개를 들면 다시 망치질을 하듯 곱씹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점점 힘들고 지쳐갈 뿐이었습니다. 리자 홀트마이어 작가님이 설명하는 반추와 언어 패턴 개념은, 그때의 제가 왜 그렇게 허공을 치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문제는 상대의 말이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만들어낸 해석의 증식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아예 그 판에서 한 발 물러서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말의 의미를 끝까지 파헤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용,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안도감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말 때문에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는 대화를 ‘품격’이 아니라 위생으로 다루는 책입니다. 상처 주는 말을 없애기보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자라지 못하게 하는 방식—패턴을 알아차리고, 문장을 바꿔 말하고, 몸의 긴장을 낮추는 루틴까지—를 현실적인 강도로 제시합니다. 대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고 나서 “내가 왜 그때 그렇게 흔들렸지?”라는 질문이 “아, 저 패턴에 내가 걸렸구나. 다음엔 이렇게 처리하자”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말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말의 구조를 읽는 사람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추천하는 훌륭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