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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마을 사우나
이인애 지음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장편소설 #이인애 #힐링판타지 #탄광마을사우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탄광마을 사우나>는 무거운 현실을 다루는 태도에서부터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지방소멸, 공동체의 붕괴, 쇠락한 탄광마을이라는 소재는 자칫하면 지나치게 어둡고 건조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사우나와 카페, 비누 거품, 케이크 같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그 현실을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날카로운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고발하기보다, 뜨거운 물에 천천히 몸을 담그듯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방식입니다.

특히 ‘말하는 비누 거품’이라는 판타지적 장치는 이 작품의 온도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이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판타지가 아니라, 말해지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그 안의 인물들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이인애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가장 잘 살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 소설에서 어머니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주인공 민지의 태도가 저의 마음에 오랫동안 찡하게, 오래도록 남았는데요. 어머니의 다이어리를 읽으며 느끼는 섬뜩함, 그리고 ‘죽은 사람의 과거를 보듬는 것은 딸인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는 거리감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은 죽은 이를 쉽게 미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남겨진 사람이 그 죽음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우나, 케이크, 고양이, 그리고 끝내 말해지지 못한 마음들은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니라, 사람 하나의 온기가 머물렀던 자리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조용히 이어지는 순간들 속에서 공동체의 의미는 선언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복원됩니다. ‘회복’을 외치지 않지만, 읽고 나면 어느새 회복의 방향으로 와 있는 느낌을 주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지닌 힘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거리를 두는 태도가 더 정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해온 친구를 잃은 뒤, 그 사람의 삶과 감정을 끝까지 이해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는지 오래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을 정리하려 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더 거칠어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탄광마을 사우나>는 그 지점에서 조용히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모든 상실을 해석하거나 봉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떤 감정은 그대로 남겨 두어도 관계가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 담담한 태도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을 놓게 만들었고, 읽고 난 뒤에도 오래 생각하게 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허세 없는 판타지라서 더욱 좋았습니다. 세계를 구하거나 거창한 설정을 앞세우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오래 붙잡습니다. 케이크와 사우나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겉은 재를 뒤집어쓴 듯 보이지만 속은 촉촉한 티라미수케이크는, 상처 입은 사람들, 낡은 마을, 그리고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이미지로 작동합니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세상이 아직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다”는 감각을 조용히 건네면서 잔잔한 감동을 남깁니다.
이 소설은 지방소멸이나 공동체라는 말만 들어도 피로감을 느끼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란한 힐링 서사에 지친 독자에게도 잘 맞을거라 생각합니다. 울리기 위해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대신 곁에 조용히 앉아 주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이자, 아직 남아 있는 온기에 대한 기록인 <탄광마을 사우나>는 제가 정말 오랜만에 만난 꽤 괜찮은 힐링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