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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불행한 아이 ㅣ 문지 푸른 문학
유니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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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맥박은 속도를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문제를 풀다 보면 다 잊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잘난 놈'이라며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던 형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찬은 문제집을 탁 덮어버렸다. 조용히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찬은 신발을 꿰신고 집을 나왔다.
-61쪽 / <나보다 불행한 아이> / 유니게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청소년 문학 소설을 계속 써오고 계시는 유니게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나보다 불행한 아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입니다. 저는 올 초까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이 불행한 환경에 놓여있는 학생들도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을 보자마자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과연 어떤 아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일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보다 불행한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을 보고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살아갈 용기도 얻습니다. 저도 제가 가진 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우월감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요.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잘 써놓았습니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달아는 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금요일 저녁이면 언제나 운동화를 깨끗하게 빠는 게 달아의 습관입니다. 달아의 가정 환경을 모르는 친구들은 달아가 마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늘 하얀 운동화를 신고다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요.
달아에게 새아빠가 생기지만, 새아빠는 엄마와 불화를 겪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달아의 환경은 더 좋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리고 더욱 새침하고 예민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던 중 달아는 찬을 알게 됩니다. 찬은 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입니다. 찬은 눈치가 빠르고 새 부모님이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합니다. 찬은 사랑이란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찬의 형은 찬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잘보이기 위한 모습이 꼴사나울 뿐이었지요.

달아와 찬은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모두 불행하다는 데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는 신세한탄만 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더욱 성장하게 되지요. 조금 더 내용을 쓰면 스포가 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천하제일불행대회의 우승자가 누구일까를 다루는 게 아니라, 비록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성장을 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찬의 성장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길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지만, 사실 자신은 부모님의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거든요. 그때서야 찬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랑만 듬뿍 받아도 모자랄 청소년 시기에 결핍을 느끼고 늘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긴다면, 이보다 슬픈 삶이 또 어디있을까요.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을 하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달아와 찬은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두 아이는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리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 공감과 치유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나보다 불행한 아이>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