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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키즈 ㅣ Wow 그래픽노블
베티 C. 탕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4년 11월
평점 :
저는 '미국 유학생'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오랫동안 영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미국 소재 학교 학위'가 가지는 '가치'가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에서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라고 하면 보는 눈부터 달라집니다. 설령 대학이 아니라 초, 중, 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간 사람들, 혹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타고난 복이 많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연스레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 무대 속에서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경쟁력을 하나 갖춘 셈이니까요.
그래서 보물창고에서 출간한 베티 C.탕의 <낙하산 키즈>를 읽기 전에는, 미국 조기유학생들에게 언제나 꽃길만 펼쳐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제가 유학생들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기유학생이라고 하면 집안이 부유하고, 걱정근심없이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는 제가 생각했던 조기유학생 이미지와 전혀 다른 아이들이 나오거든요.
이 책을 쓴 베티 C. 탕은 자신의 체험과 주변의 조기유학생들의 이야기를 섞어서 허구로 그래픽노블 <낙하산 키즈>를 창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의 유학생들도 <낙하산 키즈> 속 이야기와 비슷한 일들을 겪었다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조기유학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낙하산 키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열 살 짜리 소녀인 '린 펑링'입니다. 가족들이 부르는 별칭은 '펑리'(중국어로 파인애플)인데, 파인애플 이미지처럼 밝고 솔직하고 통통 튀는 성격을 가진 소녀입니다. 이 책은 펑링이 가족과 함께 미국 여행을 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펑링은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까지는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의 이야기라 저도 마치 미국의 유명 관광지를 투어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펑링의 행복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펑링과 언니, 오빠를 미국에 남겨두려 했거든요. 펑링 가족의 국적은 '대만'입니다. 펑링이 미국에 갔을 당시만 해도 대만의 국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아, 펑링의 부모님은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펑링의 아빠만 대만으로 돌아가고, 펑링은 엄마, 언니, 오빠와 함께 미국에서 살게 됩니다. 펑링의 아빠는 대만에서 하던 일을 계속해야만 돈을 벌어서 유학비를 대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펑링은 '앤'이라는 미국 이름을 갖고 미국 학교에 등록을 하여 미국인들 속에서 지냅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공부를 따라가는 일도 어렵고, 친구들을 사귀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듭니다. 이런 와중에 엄마는 대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비자가 만료되어 갱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린 삼남매는 부모님 없이 미국에서 지내게 됩니다.
다행히 린 삼남매에게는 그들을 돌볼 친척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만큼 의지가 되지는 않지요. 이런 상황 때문에 린 삼남매는 낙하산 키즈가 됩니다. 낙하산 키즈라는 말은 부모님이 있는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나 친척 집에 맡겨진 아시아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낙하산 키즈가 되었을 때 펑링의 언니는 겨우 열여섯, 오빠는 열 넷, 펑링은 열 살인, 아주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세 명의 아이들이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벌이는 고군부투가 <낙하산 키즈>의 줄거리입니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펑링의 오빠, 그런 오빠와 자주 부딪히는 S.A.T 입시를 앞둔 언니,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늘 외톨이로 지내는 펑링. 각각 자신만의 문제를 떠안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각한 내용을 심각하고 어둡게 쓴 책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합니다.
펑링의 오빠가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고, 펑링의 언니가 사기꾼 때문에 1만 달러를 날리고, 펑링이 매장에서 장난감을 훔치는 일이 있었지만 이들은 곧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미국인들에게 마음을 닫지 않습니다. 저는 이 세 아이들이 이렇게 소소한 문제를 겪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부모님도 없이 살아간다면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쉽게 놓지 않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어찌보면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가로막히는 상황이 많은데도, 이 아이들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놓으려 합니다.
<낙하산 키즈>는 조기유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유학을 가본 적 없는 청소년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낯선 환경에서 자칫 고립되어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여 더욱 강해진 아이들의 모습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펑링처럼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곁에 두고 계속 읽고 싶은 좋은 책입니다. 주변 환경이 자신을 괴롭게 만들어서 삶의 용기를 잃어버린 분들께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은후에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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