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갈무리하는 이런 수상작품집의 경우 언제나 그 한 해의 경향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올해의 젊은작가상 역시 그러한 경향성을 엿볼 수 있었는데 몇 가지를 집자면 다음과 같다.
· 여전히 득세하는 퀴어와 여성 소재
18년, 19년, 그리고 올해 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모두 읽은 나는 당연하게도 각 소설의 주제의식에서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딱히 거창한 발견은 아니지만).
흔히 얘기하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예술 분야는 단연코 문학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 작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여성 젠더 문제를 발화하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두면서 꼭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문제를 곁들이는 작품이 많아졌다. 젊은작가상 수상작 중 꼽아보자면 강화길 작가의 <호수 - 다른 사람>(2017 수상), 박민정 작가의 <세실, 주희>(2018 대상)이 기수상작 중 있으며 올해는 대상 작인 강화길 작가의 <음복>, 이현석 작가의 <다른 세계에서도>가 직접적으로 여성 젠더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간접적인 부분에서 표출하는 작품은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장류진 작가의 <연수>를 꼽을 수 있겠다. 이는 아직까지도 여성 문제에 대해 한국이 무지함을 의미하며, 그럴수록 이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작가들(그리고 문학 및 예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퀴어를 주제로 다룬 작품은 18년부터 3년 연속으로 총 네 작품(<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와 눈물의 자이툰 파스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데이 포 나이트>, <그런 생활>)이 수상작이 되었고, 그중 작품 하나(<우럭 한 점 우주의 맛>)는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얻었지만 이 네 작품을 쓴 작가는 두 명(박상영, 김봉곤)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은 씁쓸하다. 박상영 작가는 기존 퀴어 문학이 가지고 있던 쓸모없는 자기비애나 이성애자와 다른 무언가를 표출하려는 등의 클리셰를 타파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등(본인은 이런 말이 맘에 안 든다고 했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으며, 김봉곤의 경우 (개인적으로) 19년 수상작인 <데이 포 나이트>는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20년 수상작인 <그런 생활>은 전작의 아쉬움을 말끔히 털어낼 수 있는 담백한 작품이어서 좋았다. 아무튼, 다양한 시각을 소설로 녹여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닌가.
다만, 이런 경향이 한동안 국내 소설계의 주류가 돼버릴 것 같다는 예감과 그것이 몇 년간은 고착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1년 동안의 수백 작품 중 일곱 작품으로 소설판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국내 문학의 주 독자층이 여성인 것은 분명하고 주 독자층의 주 니즈가 본 문제에 쏠려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시와 소설 관계없이 문학에 사회적 책임을 얹는 행위가 갈수록 커져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세태를 다루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을 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지만, 문제 제기의 방향이 모두 한곳을 향해있을 이유는 없다.
· SF 붐은 온다?
SF 장르라는 것이 아직까지 국문학계에서 그렇게 주류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나, 올해부터는 무언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젊은작가상 첫해인 2010년에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 이후 SF 소설의 수상은 없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SF 신예인 김초엽 작가의 단편 <인지 공간>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SF 장르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혜성같이 등단한 김초엽 작가는 2019년 단행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펴내어 오늘의 작가상 수상과 동시에 전국 온 · 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차지하였는데, 덕분에 (자극이나 영감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김영하 작가의 신작 «작별 인사» 역시 SF 장르이다. 참고로 김영하 작가의 소속사인 블라썸 크리에이티브에는 앞서 말한 배명훈, 김초엽 두 명의 SF 작가가 소속되어 있다.
물론 젊은작가상이 장르 쿼터제를 시행하는 것도 아니오, 김초엽 작가가 촉발한 2019-2020 SF 열풍을 의식하여 <인지 공간>을 젊은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2019년 한 해에 발표된 소설 중 선고위원/심사위원이 가장 좋았던 소설 7개 중 하나에 <인지 공간>이 뽑혔을 뿐이다. 하지만 SF 장르의 팬들은 이 일로 충분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꼭 주류가 아니더라도 양질의 SF 소설이 (지금도 잘 나오고 있지만) 더욱더 나올 것을 바랄 수 있을 테고, 어쩌면 이젠 주류 문학 장르에 당당하게 올라갈 수 있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슈퍼 루키 전성시대
이번 젊은작가상 첫 수상 작가 중 이현석 작가와 장희원 작가의 공통점은, 단행본 하나 없이 작품 하나로 등단 이후 젊은작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 이력이 얼마 있지 않은 작가의 등단은 문학계나 독자나 당연히 고마운 일일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도 이런 루키 작가들이 매해 나온다면 한국소설의 미래는 밝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단행본 없이 작품 하나로 등단 이후 이번 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웹진 '비유'의 18년 4월 호에 본인의 첫 작품인 <하긴>을 투고하여 등단 후 본 작으로 2019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이미상 작가를 꼽을 수 있겠다. 이미상 작가는 기존 한국문학에서 등단 후 문학상 수상의 과정의 클리셰의 중심을 완벽하게 파괴하였다. 메이저 신문사의 신춘문예나 기성 메이저 출판사들이 내는 문예지에 작품을 투고하여 등단 후, 꾸준히 문예지에 본인의 작품을 투고하여 어느 정도 단행본 한 권을 엮을만한 분량이 나온다면 단행본을 출판하여 이름을 알린 후 거기서 눈에 띈다면 문학상 수상자에 리스트를 올리는 기존의 전형적인 테크트리를 완벽하게 무시한 이미상 작가의 행보는 대단함을 넘어서 경이로움을 일으킨다. 신춘문예나 기성 문예지가 아닌 웹진, 그것도 만들어진지 꽤 된 웹진도 아닌 2018년 1월 첫 선을 보인 웹진에 본인의 작품을 투고하여 등단 후 그 작품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것은 가히 '로열로더'의 행보이다. 올해는 단행본 없이 수상한 작가의 수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작가들이 늘어날수록, 이 책에서 국문학의 미래와 함께 더 먼 시간에서의 국문학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