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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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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 살도 넘은 상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한다. 별개로 지금 말 많은 작품들을 제외하곤 전년도보다 수준이 높아졌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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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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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 시장도 나름대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재밌는 구성과 기획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시리즈. 오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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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프로젝트 그룹 "Magazine Swan"에서 진행한 인터뷰로써, 그 인터뷰어가 알라딘 서재에도 기록하기 위해 옮겨왔음을 밝힙니다.






 이제 우리에게 페미니즘은 익숙해졌다. 익숙함을 넘어서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각자의 신념의 일부가 되었다. 이 새로운 신념은 필연적으로 기존에 존재했던 관념과 양식과의 전면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고, 페미니스트들은 지독하게 과거의 산물과 싸우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남성 중심 시각을 돌려놓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사랑의 종착점인 결혼마저도, 그들은 거부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슬로건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정지민 작가는 페미니즘이라는 신념과 결혼이라는 과거 제도와의 동침을 선언한다. 그녀는 새로운 시대의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던지고 있다. 그 관점을 글로 풀어낸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각자가 각자가 되고, 서로가 서로가 되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인터뷰어는 M, 작가의 말은 J로 표기합니다.)






 M: 우선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J: 저는 제주에서 4년째 잘 살고 있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정지민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대해서 글을 써 왔습니다.

 
M: 원래 제주 태생은 아니신데, 제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J: 되게 별 이유 없어요. 남편이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왔어요. 남편과 저 둘 다 대학원생이었는데  계속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해야 할지 말 지 고민의 시점이었기도 했고, 딱히 어디 묶인 곳이 없으니까 '그냥 한 번 내려가서 살아보자' 하고 내려왔어요. 처음에는 "6개월 정도 살아볼까?"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예 계속 살게 되었어요.


 
M: 인스타그램만 가도 술을 굉장히 즐겨 하시는 게 눈에 보이네요. 어떤 술을 좋아하시나요?


 
J: 맥주를 가장 좋아하고 요새는 화이트 와인도 자주 마시고 있어요. 탑동에 '맥파이'라고 수제 맥주 펍이 있는데 거기 한 번 가보세요. 맛있어요. 저는 취향이 맥주든, 화이트 와인이든 산미가 좀 높은 게 좋더라고요. 꼭 술이 아니더라도 커피나 반찬까지도…. 뭐든 먹을 때 산미가 좀 추가가 되면 맛이 풍성해지거든요.


 
M: 이 책을 내기 전에 공저로 참여한 「내가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라는 책 소개를 잠깐 부탁드릴게요.


 
J: 제가 '인문학협동조합'이라는 활동을 했었어요. 그게 인문학 연구자들끼리 모여서 '대학교라는 학제에만 인문학이 갇혀있지 말자, 인문학은 안에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라는 마인드로 모여서 강의도 기획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그런 조합이었는데 거기서 제가 강의 기획을 사랑으로 했었거든요. 사랑, 연애. 그때 강의 기획을 했던 걸 바탕으로 책을 꾸려서 낸 건데. 그때 연애에 관한 담론들이 되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일반적인 시각에서의 사랑뿐이었어요. '젊고 아름다운 이성 남녀가 만나서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결국 아름답게 사랑한다' 식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 나오는 클리셰적인 얘기뿐이었는데, 실제로 우리 세상에는 많은 유형의 사랑들이 있잖아요? 노년층의 사랑이나, 장애인들의 사랑, 동성애 등은 우리가 사랑의 개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그런 부분에서의 시각을 넓혀보고 탐구하는 책이었어요.

 저는 책의 첫 꼭지를 맡았는데 그게 꽤 시의성 있는 꼭지였어요. 제가 대학에 들어간 2008년에 대학생들의 연애에 대한 얘기가 엄청 많이 나왔었거든요. 내용이 '요새 대학생들이 그 청춘의 시기에 연애를 안 한다' 가 요지인 얘기였거든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많은 탐구도 오가고 "젊은이들이여, 사랑을 해라!" 같은 꼰대스러운 얘기들도 나오고 했는데 젊은 애들은 연애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담론이 꽤 많았는데, 저는 그게 신기했거든요? 저는 대학을 가서 연애도 하고 그게 재밌었는데 왜 내 친구들은 연애에 관심이 없고 사회적으로 이런 담론들이 많이 나올까, 하는 게 궁금해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 그 내용을 담아 쓴 게 그 부분이죠. 이번 책에도 언급이 약간 되고. 그때는 그때의 공부를 바탕으로 써서 낸 거고 지금은 또 그때와 지금의 배움이 다르니까, 그때는 젠더 관점이 없었거든요. 그냥 단순히 남녀가 사랑한다고만 생각했지 비대칭적인 부분은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걸 다시 공부하고 갱신한 게 이 책이 된 거 같아요.

 
M: 확장판이나 개정판 쯤으로 오늘 책을 생각하면 될까요?


 
J: 그럴 수도 있겠죠?


 
M: 책을 읽다 보면 웹툰 얘기가 나오는데 웹툰을 자주 보시는 것 같아요. 즐겨보거나 즐겨봤었던 작품이 뭐가 있을까요?


 
J: 오늘도 보고 왔는데, <유미의 세포들>. 거기 남자 캐릭터들이 맘에 들어요. 남성 작가분이 글을 쓰시는데, 되게 요즘 여성분들이 원하는 남성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요. '유미'라는 캐릭터의 남자 친구가 여러 번 바뀌는데 여성들이 거쳐가는 연애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또 책에서도 나왔지만 <이토록 보통의>라는 작품도 추천해요. 이 웹툰도 사랑 얘기를 되게 진지하게 하고 불륜 같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서사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게 있어서…. '불륜? 무조건 안 돼!' 했던 사람들도 나중 가서 좀 더 내부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되는 거죠. 그런 웹툰 되게 좋아합니다.

 
M: 대학원생이셨다고 했는데, 인터넷에 대학원생이라는 걸 자조하는 개그들이 많잖아요. 정말 대학원생이 그렇게 힘든가요?


 
J: (웃음) 그런 짤들이 많긴 하죠. 일단은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가 너무 불평등한 게 있고, 왜냐면 대학원생이 올라가려면 교수의 권력이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생기는 불합리한 일들이 되게 많고요. 제 과는 다른 곳에 비해 그런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없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다른 면에서는 그런 게 있긴 하죠. 수많은 대학원생 중에서 교수가 되는 게 극히 소수인데 그 많은 대학원생이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니까 그런 점에서 오는 불행함 같은 게 있고. 또 교수가 되기 전까지 강사 생활 같은 걸로 공백을 메꿀 때 돈이 매우 부족해지는 것도 있죠. 그래서 인터넷에서도 그런 자조하는 짤들이 돌아다니지 않나 싶어요. 사실 먹고 살만하다면 그렇게까지 엄청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M: 직접 낸 책으로 북토크를 몇 군데 다니셨는데 작가가 돼본 적 없는 입장에서 북토크를 하는 기분이 궁금하네요.


 
J: 되게… 되게 낯 뜨거워요. 북토크를 두 번을 했는데 첫 번째는 서울의 '땡스북스'에서 했었고, 두 번째는 저희 '사계생활'에서 그렇게 두 번을 했는데. 첫 번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이게 사실 북토크라는 게 별게 아니잖아요, 오시는 분들도 작가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인 거고. 편하게 그냥 얘기하면 되는데 약간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북토크는 조금 아쉬움이 남고. '사계생활'에서는 좀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내가 다니는 회사고 이미 한 번 해봤으니까. 사회 맡아준 선배도 예전에 저와 같이 일했었던 선배였었거든요. 그래서 좀 홀가분한 마음으로 했었죠. '이 사람들을 좀 웃겨야지'라는 마인드로(웃음).


 
M: 제가 스케줄이 아쉽게 안 맞아서 못 간 게 아쉬웠어요.


 
J: 사실 그렇게 재밌지도 않았어요(웃음).


 
M: 책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그전에, 작가님은 페미니스트이신가요?


 
J: 되게 부족한 페미니스트죠.


 
M: 젠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그렇게 짧지도 않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았잖아요.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신 건가요?


 
J: 아무래도, 책에서도 썼지만, 데이트 폭력. 데이트 폭력이 되게 한동안 문제였던 적이 있었잖아요. 2015년 봄쯤 그때가 메르스 갤러리 터지기 전이었거든요. 그때 데이트 폭력 사건이 여러 개가 있었고…. 저는 진짜로 몰랐어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몰랐고 되게 만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저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내가 연인에게 맞지 않고 내 주변에서 연인에게 맞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연인을 자기 수족처럼 부리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때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고…. 믿기지도 않는 일이잖아요, 이게? 저는 사랑에 대해 글도 쓰고 책도 낸 사람인데 이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M: 책에서 '페미니스트와 한남을 가르는 것은 성별이 아니다'라고 적어주셨어요. 두루뭉술할 수 있겠지만,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페미니스트의 정의나 개념이 있으실까요?


 
J: 약간 다른 얘기일 수 있겠지만 짚고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저는 지금도 가끔 '남편이 있는데 네가 어떻게 페미니스트냐'라는 얘기를 종종 들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 그런 거예요. 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것이 성추행 미투 때문이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 미투는 당연히 진실되었다'라는 생각이었어요. 왜냐면 이런 미투 문제를 가지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우리가 아무도 그런 사람이었을 줄 몰랐지만, 그런 잘못을 했을 거라고 인식했어요.

 그런데 나랑 정말 가깝게 지내나, 내가 호감이 있는 지인이 만약에 이런 성폭력 사건에 연루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이 사람을 알고, 만나고 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이런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 문제가 정말로 그랬을까? 분쟁적인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 사람 편을 들게 되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내 판단이 연관되어 있는 사람의 관계나 호감에 따라서 너무 원칙 없이 흔들리는 걸 볼 때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페미니스트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어렵고 각자의 맥락과 위치에서 각자가 페미니스트임을 정체화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아, 그런 사람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있는데…. 아무튼, 페미니스트라고 무조건 원칙만 앞서서도 안 되고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 한 후의 자신의 신념이나 원칙을 자기가 속한 삶의 여러 상황에서 계속해서 적용하고 스스로도 바꿔보고, 내가 틀렸다면 시정하고. 그런 업데이트를 계속 해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저도 너무 부족한 것 같고, 지금도…. 이게 부족하다에서 끝나면 안 되고 내가 이런 판단을 했을 때 이런 부분을 생각을 못 했으니 다음에 판단할 때는 더 반영하는 그런 노력들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되지, '나는 페미니스트야', '내가 하는 건 다 페미니즘이야'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별과 무관하게 페미니즘이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요.

 
M: 결혼을 하셨지만 일반적인 모습인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고 아내가 집안일을 한다'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 관계이시잖아요? 그런 관계로 인해 충돌이 생겼던 적이 있을까요?


 
J: 혹시 <마조 앤 새디>라는 웹툰 아세요? 그 웹툰에서 '마조'인 남자가 작가인데 요리도 잘 하고 가사도 잘 하는 남편이고, '새디'인 아내가 밖에 나가서 디자인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하거든요. 저희처럼 바뀐 케이스인 거죠. 한 쪽이 새디스트고 다른 쪽이 마조히스트인거잖아요? 전통적인 성 역할로 보았을 때 새디스트 아내가 좀 더 남성적이고 주도적인, 남편은 요리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아무튼 그러면서 잘 살고 계신 거예요. 저는 그거 보면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저렇게 집안일 잘 하는 남편 들여서 내가 요리 안 하고 내가 밖에서 돈 벌고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 했었거든요. 어렸을 때라고 해봤자 대학교 때지만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걸 살면서 잊고 살다가 그냥 제 남편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그게 이루어졌죠. 그래서인지 저희 둘 사이에는 별 충돌이 없었어요. 서로가 이 역할이 되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제 남편의 집돌이 성향, 저는 또 밖에 나가야 하는 스타일이어서 저희 사이의 충돌은 별로 없었고 부모님들도 딱히 이런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뭐라고 하신 적은 없어서 되게 좋았죠. 근데 관계 초반에 좀 어려웠던 건 남편이 자격지심처럼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내가 집에 있어서 장모님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스스로가 할 때가 좀 있었어요. 아니라고 해도 '내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그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좀 하더라고요. 그런 게 초기의 난관 아닌 난관 정도?


 
M: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간다고 해도 결혼과 육아는 아직도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잖아요. 책에서도 쓰셨지만 아이가 나오는 순간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확 무너지는 것은 자명하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육아 자체의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앞으로의 작가님의 자녀 계획은 없다고 보아도 될까요?


 
J: 아이는 지금도 계속 고민 중이에요. 왜냐면 아이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 낳아도 남편이랑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이 균형이 너무 좋아서 깨고 싶지 않기도 하지만 서로의 신뢰가 있으니까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육아도 저와 남편이 나누어서 잘 분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래서 누가 "지금 아이 낳을 거야?"라고 물어보면 항상 대답은 "아직은. 지금 당장은 잘 모르겠다."라고 미룬 게 벌써 2년 됐죠.


 
M: 그럼 만약에 제도적인 점이 개선되거나, 소위 '애 키우기 편해지는 세상'이 왔다고 가정한다면 좀 달라질 수 있을까요?


 
J: 제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제도적인 불충분 때문은 아니거든요. 그런 점이 개선된다고 해도 딱히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저희가 시부모님이 1층에 살고 저희가 2층에 살거든요. 시부모님과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데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나는 백 일 만에 회사 복귀를 하고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이 육아까지 조금 담당을 해주어라 하는 입장이라서 제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책에서 적었던 그런 다른 여성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 부부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확 바꿔야 되거든요. 저희가 소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런 분쟁이 하나도 없어요. 돈 걱정도 안 하고 둘이 먹고 놀고 하기에 충분한데 아이가 생기면 당장 그런 문제를 많이 떠안아야 하니까. 그런 고민이 있죠.


 
M: 달라진 시대의 결혼, 그것이 꼭 결혼이라는 이름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을 준비하려면 '새 시대의 관계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적으셨어요. 그게 어떤 것이 될까요?


 
J: 남자의 역할은 이런 것이고, 여자의 역할은 이런 거다,라고 우리가 배우고 익혀온 것들이 있잖아요? 전통적인?그 관계의 모습을 머릿속에 넣고 지금 연애를 하려고 하면 여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말이죠? 그러기 위해선 시대가 변했다는 걸 먼저 인지해야 하고, 그리고 예전에 아빠들은 많이 소통하지 않아도 되었잖아요? 지금 저희 부부처럼 서로가 긴밀하게 소통하고 그런 모습이 아니니까. 어차피 그냥 결혼은 하는 거니까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모습이니까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각자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이 아니었잖아요. 근데 그게 예전에는 그래도 됐어요. 근데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잖아요. 각자, 개인들이 중요하고 내 성장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내 배우자가 내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되게 재고하게 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서로 성장하면서 서로를 서포트 해줄 수도 있고. 예전에는 여성이 일방적으로 내조라는 이름 하에 서포팅을 했잖아요? 저는 서포팅이 서로가 서로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아내의 성장에 대해 질투하거나, 자격지심을 가지거나 그것에 대해 훼방을 놓으려고 할 때 여성들이 이 관계를 견디려고 할까?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 모든 걸 포함한 관계의 기술. 내 성장과 상대의 성장을 같이 이루어나갈 수 있는 전통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조합, 그걸 하기 위해서는 되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죠. 대화도 많이 해야 할 거고, 잘 싸우고 잘 화해해야 할 거고.


 
M: 그런 총체적인 부분이 새 시대의 관계의 기술이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성차 파트는 꽤 신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이런 문제들이 성차를 가져오면서 인정하지 않거나, 과하게 인정해서 그것을 역이용하거나,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어요.


 
J: 주변에서도 성차 파트를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이 많은데 지금 다시 얘기해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면서도 제가 고민 많이 했었는데 그런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저도 처음엔 성차를 부정하고 싶었고, 사실 부정하는 게 더 쉽잖아요. 성차는 없고 남녀 모두 생물학적으로는 같고 이런 차이는 사회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쓰면 "계몽"을 하기가 훨씬 더 쉽죠. 근데 제가 궁금해가지고 성차가 정말 있나 하고 찾아본 책들은 결론이 하나같이 성차가 있다는 거예요. 특히나 책에도 인용한 라이머 실험 같은 경우도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성차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겠다'라는 깨달음이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부정하고 싶은데, 부정할 수 없는. 또 나름 뇌과학에 대한 책들을 쭉 읽다 보니까 재밌기도 했고요.

 다만 이 성차라는 걸 관계에 적용할 때 좀 섬세히 할 부분들이 있다는 거란 생각을, 역시 또 책에서도 인용했던, 세라 홀리 박사의 실험에서 영감을 받았죠. 성차가 있다는 사실이 있고, 관계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성차 때문이다는 결론이 있는데 이 실험이 항상 결론이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또 그걸 증명하는 방식이 동성애 연인들을 보는 거라는 것도 되게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결론은 '성차가 있다고 해서 바로 여기로 가지 말자'라는 거죠. 우리가 더 섬세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결론을 냈던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성차를 너무 많이 인정해버려서 편집자님께서 요거는 조금(웃음). 이렇게 많이 인정해버리면 결론이 너무 힘을 못 받는다, 조금만 수정하자고 하셔서. 이 페미니즘 시리즈의 2편이 몸이잖아요. 거기서 과학자 선생님께서 성차 부분을 과학적으로 쓰셨는데 그것보다 내가 너무 많이 인정해버리니까 그러면 시리즈 균형이 안 맞는다, 덜 인정해라. 그랬죠.

 
M: 한남 파트 초입에 미러링 얘기가 등장을 하죠. 미러링 얘기가 주된 파트는 아니지만 저와 같은 층의 독자는 조금 갸웃거릴 것 같은 이야기에요. 미러링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J: 미러링이 옳은 일이냐? 저는 미러링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보다 미러링이라는 현상이 이걸 보는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얘기를 하고 싶거든요? 제가 미러링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건 '같이 나도 한남을 패야겠다'라는 즐거움이 아니라 너무 통쾌하고 너무 전복적이었어요. 제가 이제까지 인터넷을 하면서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를 보았을 때도 이게 문제라는 거를 못 느꼈어요, 불편은 한데…. 그런 걸 보면서 되게 불편한데 그 불편함이 뭔지 설명도 못 했단 말이에요, 왜 불편한지를. 근데 이런 것들이 왜 불편했고, 왜 하면 안 되는지를 미러링을 통해서 너무 확실하게 알겠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인식적인 전환이었어요. 이게 여성 혐오였구나, 그리고 난 이게 문제인지도 몰랐구나,라는 걸 그때 깨달았고 저는 모든 여성들이 미러링에 참여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그걸 보았던 모든 여성들은 그때 깨달았던 거죠. 이 과거의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들이 문제였다는 거를. 그 인식적 전환 효과가 너무 컸고 그래서 저는, 물론 미러링이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시점에서 그런 역할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미러링에 불쾌해하는 모습도 이해는 가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도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전엔 그런 것들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이 미러링에만 화들짝 놀라는 남자들을 보면 조금 당황스럽죠. 예전엔 아무 반응도 안 하다가 지금에서야 왜 이렇게 반응할까, 왜 이제까지 몰랐을까.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이 미러링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느 시점에는 효과를 다 하는 거죠. 이걸 계속 죽으라고 미러링을 하면 더 이상 재미가 없단 말이에요. 이 전복적인 힘이라는 건 초반에 반짝하고 사라지는 거지 계속 가는 게 아니거든요. 근데 강성 페미니스트들이 이 방향을 너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건 운동의 측면에서 그렇게 효과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확실히 이 미러링이 있고 나서의 인터넷을 쓰는 여성들의 그전과 후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M: 시가 파트는 읽어가면서 작가님이 꽤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에피소드나 마찰 같은 걸 겪으신 적이 있을까요?


 
J: 저도 운이 좋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부분의 마찰은 별로 없었어요. 제가 제주에 살면서 시부모님과 1, 2층에 함께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명절에는 우리 집을 가고, 명절에는 우리 엄마, 아빠를 보러 서울로 갔다가 갔다 와서 이제 또 (남편의) 어머님, 아버님도 뵙고. 이런 식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고요. 남편이 올라가는 걸 좀 귀찮아해서 가기 싫어하니까 그게 서운한데 그래도 이게 시가에 가기 싫어하는 며느리의 마음과 약간은 겹치는 면이 있어서,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건 아닌데 또… 내 안의 가부장제가 나오죠. '너도 올라가서 너의 할 일을 해야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제가 겪은 건 없었고 친구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죠. 정말 명절 끝나고 결혼한 여자친구들끼리 모이면 다들 머리까지 화가 차 있거든요. 평소에는 잘 지내도. 그런 거 보면 여러 생각이 들죠.

 
M: 폴리아모리 챕터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거나,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이 묻는 질문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폴리아모리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J: 저도 폴리아모리를 엄청 연구한 게 아니라서 디테일한 국내·외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사랑이라는 관계의 모양 자체가 우리가 스스로 개발해낸 게 아니라 외부의 영향을 받잖아요. '남녀가 사귀어야 하는구나', '대학에 가면 연애를 해도 되는구나', '이런 남자/여자를 만나야 하는구나' 같은 게 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으로 형성되는 관념들이잖아요? 근데 이제 제가 첫 책을, 「내가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를 썼을 때도 그랬지만 끊임없이 상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거든요?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이 사랑의 형태가, '정말로 이게 전부고 이게 정말 다 맞는 걸까? 이게 정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방식일까?' 식의 상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그게 인문학을 통해서 제가 배웠던 툴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는 방식이.

 같은 의미에서 그러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1 대 1의 관계로 서로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면서 사랑하는 관계가 옳은 거냐, 이것만이 사랑의 방식이냐고 질문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또 그렇게 질문할 수 있는 이유가 충분한 게 우리가 아는 부부 관계 모델이나 그런 것들이 전부 사실은 소유권을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로부터 탄생했단 말이에요? 상속 같은 경우도 상대가 여러 명이라면 복잡해지니까, 결혼 제도의 발생 자체가 자본주의적인 면에 기대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질문해 볼 수 있는 거죠. 그런 배타적인, 독점적인 사랑만이 사랑의 형태가 맞느냐,라고 했을 때 그게 아니라고 이미 실험해 본 이전의 여러 가지 실험도 있고 실천도 있는 데 그중 하나가 폴리아모리인 거예요.
 그리고 폴리아모리의 가장 핵심 명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내가 그거를 방해할 권리가 있냐, 이거죠. 근데 배타적인 연애는 그런 거잖아요. 내가 관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이 사람에게서만 얻어야 한다는 거잖아요. 성적인 것도 마찬가지고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도 마찬가지고 이제 이 바깥은 없다고 생각하자는 건데. 사실은 근데 우리가 살면서 되게 다양한 관계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더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내가 더 열릴 수도 있는 거고. 이걸 다 원천 차단하는 게 배타적인 사랑인 건데. 그래서 폴리아모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사람이 다른 이유로라도 행복해진다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더 행복해진다면 연인인 내가 더 그것을 지지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얘기하는 거예요.

 
M: 그래서 폴리아모리 챕터 이후에 또 나온 것이 다자연애 얘기이시고. 폴리아모리 개념에서 본다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그런 다자연애를 보는 시선이 그렇게 좋지는 않잖아요? 그런 극소수의 지지를 받을 이야기를 책에 풀어놓으신 게 좀 놀라웠어요.


 
J: 그 책을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해요,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M: 책에 인용하신 책 제목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J: 아니에요. 이건 최근에 나온 책이에요. 홍승은 작가님의 책인데 이 분이 지금 폴리아모리 생활을 하고 계시거든요? 자기랑 해서 셋이 같이 살아요. 그걸 에세이로 쓴 건데, 되게 재밌어요. 좋아할 것 같은데? 한 번 읽어보면서 실제 폴리아모리의 삶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아, 이 책에서 폴리아모리를 인용한 이유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이 20세기 적인 맥락에서 탄생한 자연스럽고, 백 년 전에도 그랬고 이백 년 전에도 그랬고, 이런 식의 흐름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인 맥락과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일시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을 받쳐주던 많은 조건들이 지금 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관계가 열릴 거다. 그리고 그런 실험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에요. 폴리아모리가 옳다, 그르다의 얘기가 아니라요.

 
M: 좀 더 다양한 관계의 방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폴리아모리이다?


 
J: 그럴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의외로 되게 내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고 이게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 절대성을 흔들기 위해서 폴리아모리를 가져왔죠. 내가 이걸 하지는 못하지만, 또 하거나 하자는 얘기도 아니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의 방식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 정도 얘기를 하기 위해서?


 
M: 비혼 얘기도 빠질 수 없겠죠. 논의도 많이 되고 있고 실제로 비혼주의의 길을 걷는 사람도 많이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서 안정적으로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책에서 쓰신 '생활동반자법' 같은 게 우리 삶에 실제로 들어오기 전에 결혼이라는 제도이 안정감을 누리되, 결혼이 좀 더 윤택해질 수는 없을까요?


 
J: 일단 '생활동반자법'이 만들어지기까지 난관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게 또 제대로 정착되기까지의 시간이 좀 필요한 거고…. 그래서 그런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서 그게 견인해 준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때까지는 이걸 각자 개인들이 헤쳐나갈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을 해야겠죠.


 
M: 처음 말씀하신 새로운 시대의 관계의 기술 같은 걸 통해서겠지요. 불륜 파트는 최근 <부부의 세계> 드라마가 히트를 치기도 했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도 이혼 전문 변호사분이 출연해서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었는데 불륜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는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이라는 게 서로의 관계를 재고하는 그런 것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고, 저는 쭉 읽어가면서 느낀 게 '우리의 관계가 평생 영원불멸하지는 않다'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J: 맞아요. 제가 <부부의 세계>를 보고서도 글을 하나 썼었는데, 저는 불륜물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요. <부부의 세계>도 마찬가지인데 결국은 '배신한 놈 = 나쁜 놈' 이거잖아요. 그런데 관계는 그전이 훨씬 길잖아요. 배신이 있기 전까지의 전사(前事)가 훨씬 길고. 물론 남성이나 여성이나, 대체로는 남성이지만, 그냥 쓰레기라서 그런 일을 했을 수도 있고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면 우리가 되게 서로를 한때는 정말 사랑했고, 서로 신뢰했고,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였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돼가지고 누군가 배신을 했다고 한다면 최종적으로 배신한 사람도 분명 잘못했고 죄를 물어야 하지만 이 이전의 관계를 돌아보지 않고 이럴 수가 있냐고 생각하는 거예요.


 
M: 불륜의 시발점은 어쩌면 그 이전의 권태가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까.


 
J: 권태라고 한정할 수 없는, 관계에서의 서로가 틀어지는 일들이 있었겠죠. 어느 날 사람이 '내가 바람을 피워야겠다'라고 해서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니까. 이 관계 내에서 생긴 결여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불륜은 그 방식 중 하나인 거고. 그러면 그 결여가 무엇인지 더 고민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보통 불륜 드라마에서는 이제 이태오 같은 애가 나오고 시청자들이 다 함께 욕을 하면서 결국 얘가 심판을 받거나, 복수극이거나. 그런 편이잖아요. 이 결여에 대한 질문들은 잘 안 나오고. 그게 전 늘 아쉽고, 우리가 불륜물을 볼 때도 항상 자기는 관계 안에 있는 입장에서 이입을 많이 하니까. '갑자기 등장해서 나의 남편을 꼬여 간 상간녀' 이렇게 밖에 안 보지만 더 많은 걸 고민해야 하지 않냐는 걸 생각하면서 파트를 썼던 것 같아요. 항상 생각해야죠, 정말 우리 관계가 괜찮은지를. 관계 안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고민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M: "함께 살되, 함께 사는 것의 모습이 꼭 결혼일 필요가 없다". 굉장히 이 말에 공감 가기도 하고 앞으로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예감도 약간 드네요. 만약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각화가 된다면, 예를 들면 '생활동반자법'이 결혼 전에 존재했다면 기꺼이 선택하셨을까요?


 
J: '생활동반자법'이 있었다면 저는 그걸 했었을 것 같아요, 결혼보다는. 보장하는 범위가 큰 차이가 없잖아요? 다만 결혼은 이미 존재하는 룰 속으로 들어가는 거고, '생활동반자법'은 이게 무엇인지 다 같이 탐색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 차이가 약간 있겠죠.


 
M: 이전에도 책을 내시긴 했지만 단독으로 이름을 걸고 책을 내신 건 처음이잖아요. 공저로 참여한 것과 단독으로 책을 낸 느낌의 차이가 있을까요?


 
J: 차이가 엄청 크죠. 그전에 공저로 냈을 때는 진짜 뭣도 모르고 냈고 인문학협동조합 안에 책 전체 기획과 편집을 담당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내 파트만 저는 쓰면 끝이었죠.


 
M: 그냥 원고 투고만 하면 끝나는 거였네요.


 
J: 그렇죠. "지민 씨, 이 부분만 써주세요." 하면 쓰고, 보강해달라고 하면 보강하고. 그렇게 제가 관여한 게 별로 없었다면 이 책은 제가 계속 편집자님과 상의하면서 방향을 잡아가고 쓴 책이고 하니까…. 특별하죠.


 
M: 책 하나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J: 맞아요. 이 책도 되게 그냥 쉽게 나온 게 아니고 이전에 다른 책 쓰려고 하다가 엎어지고…. 한동안 글 제대로 못 쓰고 이렇게 하다가 딱 방향을 잡고 쓴 거여 가지고.


 
M: 마침 이 책을 언제쯤 쓰려고 마음먹으셨는지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죠.


 
J: 책 앞 쪽에도 나와있는데 제 스스로 의문이 되게 많았어요. 페미니스트가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을 한 페미니스트는 있을 수 없다', '기혼자는 가부장제의 부역자다'라고 얘기도 가끔 하잖아요. 저는… 그런 단순한 말들이 좀 싫어요. 모든 사안에 대해서 섬세하게 접근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퉁쳐버리는 말들이 좀 싫고. 기혼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가? 또 페미니스트라고 다 똑같은가? 아니잖아요. 그 내부의 결들을 봐야 하는데. 실제로 세상의 거의 절반이 넘는 여성들이 결혼을 했는데 이 사람들을 다 적으로 돌리고 페미니즘을 하겠다는 거는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여성들이 다양한 입장에서 결혼이라는 걸 보는데, 가부장제에 부역할 것입니까? 네/아니오.'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결혼을 하는 데에는 내 역사도 있는 거고, 내 부모님을 봐 왔거나, 아니면 내가 오래전부터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왔거나. 그게 뭐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이 사람의 다양한 맥락이 있고 비혼이라는 멋있는 결정을 쿨하게 할 수 없는 다양한 배경이 있는 건데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해서 그 얘기를 쓰고 싶었던 거죠. 나는 내가 결혼을 했지만 내 스스로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결혼한 삶 속에서 계속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더 시정할 부분이 있다는 거를 내 스스로…. 나 자신도 설득하고 싶었고 계속 고민하던 주제여 가지고. 그래서 편집자님께 얘기를 해봤더니 "오, 너무 좋다"라고 하셔서 진행이 됐죠.


 
M: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떤 분의 도움이 많았을까요?


 
J: 남편의 도움이 진짜 컸죠. 왜냐면 글을 쓰는 동안은 확신이 없거든요. 이게 진짜 필요한 얘길까? 같은 생각도 있고, 지금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큰 면이 있으니까. 그게 사회에서 엄청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선 이 목소리가 큰 편이니까. 나도 선명하고 급진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기혼자이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섬세하게 봐야 한다' 등으로 말하는 게 더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과연 내가 그만큼 입장과 신념이 있는 사람인지를 의심을 많이 했고, 내 글이 과연 소용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면서 계속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한 적이 있었단 말이죠. 그냥 계약금 돌려주고 못 쓰겠다고 해야겠다는 이런 식의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남편이 정신 차리라고. 어디 계약금 뱉을 생각하냐고(웃음).


 
M: 다른 의미로 확신을 주셨군요(웃음).


 
J: 그러면서 계속 써야 한다고 옆에서 얘기를 해줘가지고. 잘 포기하는 타입이거든요, 제가. "너 스스로를 '나는 잘 포기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정의하게 만들지 말라"라고. "포기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반드시 써라."라고 해서 그런 도움 많이 받았어요. 없었으면 못 쓰지 않았을까?


 
M: 많은 분들이 인스타그램에서도 추천 서적으로 말씀하시고, 꽤 많은 독자분들이 찾아주셨어요. 몇 부 팔린지 알고 계시나요?


 
J: 몰라요. 나도 묻고 싶어.


 
M: 그럼 책을 찾아주신 독자분들께 한 말씀만. 굉장히 진부한 질문이네요.


 
J: 맞아. 앞에서 자기소개해달라 하고 뒤에서 한 마디 해달라고 하면 너무 진부해요. 안 돼(웃음). 무슨 말을 하지…?

 …제가 예전부터 사랑에 대한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지금 이 책을 쓸 때도 그렇고 제 생각에도 제 키워드는 '성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로서도 그렇고, 내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조정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A라고 정했으니까 앞으로 이대로 해야지' 이게 아니고, 이 안에서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맞는지 확인하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또…. 혹은 내가 그걸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 같아요. 내 스스로도 점검하기 위해서.

 
M: 그렇다면 정말 마지막 질문으로,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요?


 
J: 옛날에 그런 영화가 있었어요. <우리 학교>라는 영화 알아요?


 
M: 영화는 많이 문외한이라서….


 
J: 다큐멘터리인데, 일본에 있는 조선인 학교 있잖아요. 조선인 학교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그 학교가 북한식 교육을 하거든요? 약간 사회주의 교육을 해가지고. 아무튼 그 차이를 보는 게 재밌어요. 일본에서 한국어를 쓰면서 사회주의 교육을 받는데 또 그게 완벽히 북한 같지도 않아요. 우리의 세계와 동떨어진 그들의 커뮤니티 세계를 보는 게 재미가 있는데. 거기서 그런 말을 해요. "지향하기 때문에 지향한다".


 
M: "지향하기 때문에 지향한다"?


 
J: 그러니까 어떤 것을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그게 말이 되냐?"라고 질문할 수 있잖아요, 무언가를 내가 주장했을 때.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기 때문에'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지향하기 때문에 지향하는 거예요. 닿을 수 있는지 없는지랑 상관없이. 저는 이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당신의 답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이게 그런 거잖아요. '여성 혐오의 시대에, 혹은 남성과 여성이 이렇게 반목하는 시대에 결혼을 하는 부부들이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의문을 담은 책이잖아요.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 이전에 이 삭막한 세상에서 관계를 맺었다면 서로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M: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좋네요.






 · 정지민 작가님 인스타그램 : @anyria

 · Magazine Swan 인스타그램 : @magazineswan

 · 원본 인터뷰 링크 : Magazine Swan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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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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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모어라기엔 난 그의 데뷔를 지켜보지 못했지만, 이전 산문집부터 연달아 헛스윙을 한다는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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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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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건드린다기보다는, 감성을 억지로 후벼파려는 것 같다. 시집으로 충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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