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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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마이클 코넬리나 제프리 디버의 책을 읽기보다는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확실히 분위기 면에서 아주 다르다. 감각적이지만 나름 고독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현대추리소설들의 주인공과는 달리 고전 추리소설의 주인공들은 뭐랄까 낭만이 있다. 범인의 느낌도 다르다. 현대추리소설의 그들이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이고, 사이코패스적이라면 고전추리소설의 그들은 조금 더 순진하다고 할까. 물론 그들도 악의를 가지고 있고 그 악의에 의해 범행을 저지르지만 말이다.

 

도로시 L. 세이어즈의 <맹독>은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중의 하나이다. 윔지경은 중년의 탐정이고, 아직 미혼이다. 결혼에는 관심없는 듯 무심한 남자였지만 동거하던 한 남자를 비소를 이용하여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해리엇이라는 여자의 재판을 본 순간, 그녀는 범인이 아니라는 것과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녀의 무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윔지경의 불과도 같은 사랑에 그 자신도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느끼며, 그의 주변 사람들도 그가 변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랑이 먼저인지, 그 사적인 감정에 의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윔지경은 범인을 알아내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1920년 옥스퍼드 대학교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한 당시 옥스퍼드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이 <맹독>이라는 소설속의 여인, 해리엇을 자신의 분신으로 삼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 여성으로써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기에는 조금 어려웠던 시대에 선구자적 여성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던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삶이 이 소설 안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안에 갇히기 싫어하는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사랑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작가가 소설 속에서 그 남자가 맹독에 의해 살해당한다는 설정을 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남자는 맹독으로 살해당하고 그와의 사랑을 끝낸 여자가 범인으로 오인받게 되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열정적으로 불태우며 그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쓰는 윔지경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남성상을 그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항상 느끼지만 고전추리소설은 어떤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이동하는 방식(아마도 비행기나 차를 타고 먼 길을 단숨에 가는 것 말고, 마차를 타고 오랜 시간 덜컹이며 이동하는 그런 것), 그리고 그들이 먹는 방식(떠들썩한 레스토랑이나 유명한 커피숍 말고,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긴다거나 먹을 것을 만드는 것)등에서 느껴지는 우아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그들의 옷매무새나 말하는 스타일등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오래 된 영화필름같은 것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그런 우아함에서 기인하는 것일 것이다.

 

아직 사랑을 알기 전의 피터 윔지경의 또다른 시리즈도 읽어 보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한 <맹독> 또 한 권의 우아한 추리소설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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