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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면서 일흔 다섯번째 생일을 맞게 된 '할머니' 엘리는 자신의 나이가 정말 싫다. 일흔 다섯보다는 훨씬 젊어보인다는 말을 들어도 싫다. 끔찍하게 싫다. 이제 막 갓 피어난 꽃처럼 탱탱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손녀딸 루시가 미치게 부럽다. 그래서 엘리는 일흔 다섯번째 생일날, 생일 케익위에 일흔 다섯개를 꽂수가 없어서 선택 된 숫자, 스물 아홉개의 촛불을 끄며 빌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스물 아홉살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정말 스물 아홉살의 엘리가 되어버린 아침. 여전히 일흔 다섯의 정신인 엘리는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다. 딸 바바라가 알기 전에 얼른 원래의 내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바바라와 통화를 하고, 가장 친한 친구 프리다의 전화를 받았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들이닥치기 전에 빨리 이 괴상한 상황을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한 엘리는 동네 케익집에서 미니케익을 여러개 사서 다시 한 번 소원을 빌어보기로 했다. 소원을 빌어보기도 전에 손녀딸 루시에게 들켜버리고 만 엘리는 루시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고 함께 이 난관을 헤쳐나가자고 하지만 루시는 할머니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니었다면 왜 촛불앞에서 그런 소원을 빌었느냐며 하루만이라도 할머니 자신만을 위해 스물 아홉으로 살아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엘리는 스물 아홉의 너무나도 젊고 예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마구 뛰어도 관절이 아프지 않고 숨이 차지 않는 자신의 몸에 기뻐하며 그 하루를 만끽할 준비를 한다. 일흔 다섯의 정신에 스물 아홉의 몸을 가진 할머니 엘리, 그녀의 하루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한 동안은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하면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정말 열심히, 후회없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다시 또 누군가 묻는다면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것 같다. 공부보다는 놀고 싶기 때문일까? 한참 청춘일 때 법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또 학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나에게 일탈이라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조용조용히 인생길에 있어 진흙탕은 피해가며 조심조심 걸어온 나에게 일탈이라는 것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와서 가던 동네 오락실, 교재 산다고 말하고 교재값을 더 부풀렸던 기억쯤이지 다른 것은 없다. 만약 다시 청춘이 된다면 그렇게 조용조용 말고, 조금은 소란스러운 청춘을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사실 생각뿐 다시 청춘이 된다해도 오롯이 나 혼자가 아니라면, 주위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마 또 똑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고 늙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늙었다는 것 말이야. 늙은이처럼 사는 것이 지겹다면 그걸 바꿀 순 있겠지. 그거라면 할 거야.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이미 다 해봤어. 너도 날 잘 알잖아. 나는 TV를 볼 때도 재방송은 안 봐. 이미 본 거니까. 한번 지나간 건, 그냥 지나간 거야."
-p. 289
나도 그렇다. 물론 이 할머니들처럼 이미 일흔이 훨씬 넘어버린 할머니는 아니지만 나도 내 나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이.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아줌마. 눈가에 잔주름이 굵어지기 시작하고 머리 어딘가에서 흰 머리가 자주 출몰하는 나이. 몸의 탄력도 예전같지 않고 아픈 데도 많은 것 같아지는 나이. 그런 나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가슴이 소란해지고 불안하고 떨리던, 아무것도 안정된 것 같지 않던 그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더욱이 내게 있어 스물 아홉은 아마도 여태까지의 내 인생 중에 가장 힘든 한해였으리라. 그러므로 더더욱 스물 아홉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열아홉이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은 특권이다. 젊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것이 용서되고 이해된다. 역자후기에 인용된 세익스피어의 말을 보고 가슴을 쳤다.
유혹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배반하고 싶은 것, 청춘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절묘한 말인가 말이다. 그렇다. 누군가 나를 유혹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스스로를 배반하고 싶어지는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청춘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그 뜨거운 불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사위어 가는 것이랄까? 그래도 또한 그 불덩이가 죽는 그 날까지 아마도 완전히 꺼지지는 않는 것이라고 안다. 가끔씩 가슴 속에서 후끈 달아오르는 불덩이를 느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 그래도 요즘처럼 단풍이 흩날리면서 쓸쓸한 찬바람이 불어올 때는 나도 뜨거운 불덩이에 데여도 좋으니 하루쯤 스무살로 돌아가봤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