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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의 편견이라는 것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독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옷처럼 입어보고 살 수도 없는 책, 그저 제목과 띠지, 선전문구, 작가등을 보고 골라야 하는 독서생활은 자신의 성향이 어떤가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무 책이라도, 어떤 장르라도 상관없다며 무조건 책이라면 집어 들고 읽는 잡식성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앞서 비채의 다른 책인 <산마처럼 비웃는 것>의 서평을 쓸 때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호러와 SF장르는 선호하지 않는다. 완곡한 표현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는 것이지 실제로 싫어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역시나 앞서 말한 바대로 <산마처럼 비웃는 것>과 <일곱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사람의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과 책은 읽어봐야 아는 것이라는 것, 또 글을 잘 쓰는 사람이란 따로 있으며(이제 알았던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 그 장르가 어떠하던 간에 책 읽는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SF소설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는 다나카 요시키라는 작가를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였다. 또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책도 접해보지 못했다. 하여 SF라는 장르에 편견이 있었지만 다나카 요시키라는 작가에 관한 한 어떠한 정보도 편견도 없었던 나는 책을 펼치고 첫 두번째 장까지 읽은 후에 말했다. "이 사람, 하~ 진짜 글 잘 쓰네."라고. 무슨 말을 써도 문장문장이 그렇게 맛깔나고 재미지게 썼을 수가 없다.
때는 서기 2190년. 은하철도999라도 나올 것 같은 년도이다. 지축은 90도 뒤바뀌어 남극과 북극은 적도로 이동하였고 이를 '대전도'라고 한다. 인류의 태반은 멸망하였고 그 멸망을 달에서 바라보던 있는 자들은 세상으로 내려와 일곱 도시를 새로이 건설하고 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월면도시 사람들은 지구를 통제하기 위해 올림포스 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는 지구 전체 상공에 레이저 자동 공격 시스템을 설치한 것으로 지구의 어떤 비행체도 500m이상으로 날아오르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마치 신에게 닿겠다는 심정으로 바빌론의 탑을 쌓던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월면도시는 정체미상의 외계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고 올림포스 시스템만이 홀로 건재하다.
월면도시가 파괴되자 일곱 도시들은 조금씩 자신들이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다. 화합보다는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더 많은 이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회유하고, 속이고 짓밟는다. 분명히 시대는 발달하여 극에 달한 2190년인데 그들의 싸움은 고대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정권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고, 전쟁터에 나간 이들은 전쟁에서 대의를 찾지 못해 헤매인다. 정치 이념과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전편에 걸쳐 녹아 있다. 국가적 이념이라는 대의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정치인들, 그들의 도구인 군인, 민주시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둔한 군중들의 이야기가 도시마다 다른 색깔로 그려지고 있다. SF소설이지만 SF스럽지 않은, 뭔가 사회학 이야기를 한 편 읽은 것도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