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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의 항아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큰 기대없이 펴들었고, 숙제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허, 이것봐라~ 하는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앉은 자리에서 자리도 옮기지 못한 채 끝을 보고야 말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뫼비우스의 띠가 4차원으로 벌어진다면,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시청각은 물론이려니와 촉각과 후각, 미각까지도 체험이 가능한 가상현실의 세계. 한 번 빠져들면 도무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현실이 아닌지 구분하기조차 힘든 4차원의 세계가 바로 클라인의 항아리이다.
독일의 수학자 F. 클라인이 고안하였다고 하는데 이 항아리에서는 항아리의 양끝이 접속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닫혀 있는데도 사실은 열려 있다. 항아리의 용도는 발견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실제하는 클라인의 항아리의 용도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소설 속에서 클라인의 항아리는 모든 것이 체험 가능한 롤플레잉 게임기로 활용된다.
주인공 우에스기는 어드벤처 게임북 공모전에 '브레인 신드롬'이라는 작품을 응모하지만 낙선한다. 하지만 그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토대로 게임기를 만들겠다는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게임회사에 원작을 넘기게 된다. 게임상용화 전에 테스트 플레이를 하겠다는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우에스기는 또다른 아르바이트생 리사와 함께 게임 모니터링을 시작한다. 게임의 엄청난 사실감 앞에서 놀라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우에스기와 리사는 테스트플레이를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스기는 게임 도중 어떤 경고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함께 테스트를 하던 리사는 아무 소식도 없이 게임 테스트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생각과는 달리 돌아가는 석연치 않는 상황 속에서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회사의 비밀을 캐내겠다고 생각한 우에스기는 그 자신이 벌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일들이 현실인지, 가상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야기의 산 속, 낡은 건물의 다락방에서 몰래 숨어지내며 자신이 왜 피해있는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 왜 도망쳐야만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우에스기만큼이나 읽고 있는 나조차도 지금 여기가 현실인지 가상인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다. 우에스기처럼 독자도 클라인의 항아리에 얽힌 처음 그 순간부터 항아리 속에 빨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우에스기는 말한다.
"처음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끝내면 돼."
현실이라고 생각한 순간 가상이라고 느끼게 되고, 가상인가 싶은 순간이 현실이라고 느끼는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괴로움에 우에스기는 게임을 종료할 단 한가지 방법을 찾아낸다. 과연 이 게임은 끝날 것인가!
처음 말한 것처럼 표지와 제목이 그닥 끌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SF 스타일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라 더욱 별로였다. 하지만 첫 페이지의 계약서, 그리고 시작된 첫 문장이 벌써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끝까지 나를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한 편의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긴장감과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전형적인 이야기꾼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소설,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