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삼월은 붉은 구렁을>시리즈를 모두 읽고 나서 나는 온다 여사만큼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시체가 난무하고, 피비린내가 나는 그런 이야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뭔가 오싹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 그것이 온다 여사가 쓰는 책의 특징이다. 별 말 아닌 것 같은데도 으스스하고, 자꾸만 책을 읽으며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그러다 결국은 방의 가장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내 시선 안에 방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노력해보지만, 결국은 내 등뒤 벽에서 무언가 내 머리를 잡아 당기는 듯한 오싹함. 그런 것을 느끼게 한 소설이 바로 온다 여사의 소설이었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이제 대놓고 공포~라고 말씀하시는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에세이다. 온다 여사가 몇 년에 걸쳐서 쓴 여행일기로 비행기 타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작가가 그 공포감을 이기고 취재여행을 떠나서 얻게 되는 보수에 관한 이야기, 즉 공포의 보수, 일기이다. 사실은 나도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섭다. 극도로 싫어한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탈 때마다 무섭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매번 비행기가 만약 추락한다고 기장이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하면 혹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끝에, 얼마전에는 급기야 낙하산이 얼마나 하는지 검색을 해 본 적도 있다. 비행기를 탈 때 낙하산을 하나 짊어지고 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어느 정도 궤도가 안정될 때까지는 두근두근한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운데, 아마도 온다 여사는 이런 게 나보다 10배쯤 더 심했던가 보다.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망상이나 다름없는 황당무계한 플롯을 생각하는 족속이다. 상상하려 들면 얼마든지 최악의 상황을 그려낼 수 있다. 사고, 공중 납치, UFO의 습격, 사이코 승객, 미치광이 파일럿, 좀비, 가메라. 어쨌든 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밀실이고 운명 공동체. 푸른 하늘에 달랑 혼자 떠 있는 상태를 상상하면 등에 소름이 좍 돋는다. -중략- 더욱 무서운 것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태연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렇게 무서운데 주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 p12~13

 

비행기는 실제로 사고가 날 확률이 자동차 사고보다도 적다는 둥, 비행기의 원리를 이해하면 무서울 것도 없다는 둥, 달나라도 가고 우주여행도 하는 시대에 비행기가 무섭다니 이 무슨 전근대적인 시츄에이션이냐며 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무섭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누군가 그런 감정에 대해 이상하다, 그러지 마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그녀가 영국으로 떠난다. 비행기를 12시간이나 타고. 일주일 전부터 잠이 다 오지 않는다. 하루가 끝나는 마무리는 항상 맥주. 참으로 술을 많이도 맛있게도 드시는구나, 싶었는데 책 제목을 다시 한 번 보니 부제목이 영국, 아일랜드, 일본 만취기행이다. 하하하. 여사님이 참으로 유머러스하시다. 심지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기린 요코하마 비어 빌리지, 삿포로 맥주 주식회사, 오리온 맥주 나고 공장등의 견학과 시음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그냥 글만으로도 온다 여사가 마시는 맥주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몇 번씩이나 맥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도 여러나라의 여러나라 맥주를 말이다.

 

그중에서도 고딕 로맨스 작가 엘리자베스 보언이 아일랜드 사람이었다는데는 개인적으로 놀랐다. 나도 그 시대의 더블린에 살았다면 분명히 고딕 미스터리 작가가 됐을 것이다. 내 전생은 더블린 아니면 런던 중류 가정의 딸이고, 저 집에 이상한 딸이 있는데 기분 나쁜 소설 나부랭이를 쓴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으리라는 자신이 있다. - p 175

 

오늘 일정은 이로써 종료. 길가에서 우체통을 찾아 슈에이샤에 보내는 엽서를 무쳤다. 낙서투성이 우체통이 어째 서글퍼 보여 정말 일본까지  배달해줄지 불안해졌다. 결국 집배원이 수거하러 올 때까지 근처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수거하는 장면의 증거 사진까지 찍고서야 마음이 개운해졌다. -p 200

 

시종일관 여행지의 느낌과 함께 펍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건물, 일본과 비교하여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여행지등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불안감이나 공포등과 어우러지게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생각나는 책과 음악, 영화등을 다양하게 선물해주고 있어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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