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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엔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8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박진재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꽤 맘에 들었던 작품이라 작가를 검색해보았다. 아마추어 영화제작과 단편소설을 쓰던 작가는 1976년 헐리우드로 건너가 각본가로 활동한다.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고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작품을 쓰는 성공한 각본가에서 1980년대 중반 다시 크라임 스릴러 작가로 전향한다. '엘비스 콜'이라는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각종 상을 수상하고 '20세기 100대 인기 미스터리'에도 이름을 올리며 최고의 크라임 스릴러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작가 홈페이지 : http://www.robertcrais.com/)
<데몰리션 엔젤>은 그의 2000년 작품으로 시리즈 작품이 아닌 스탠드 얼론 작품이다. 국내에는 <투 미닛 룰/2009/비채>와 <워치맨/2010/에버리치홀딩스>가 번역본으로 나와 있다. <데몰리션 엔젤>을 보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이 작품은 LA 폭발물 처리반에서 일하는 캐롤 스타키와 그녀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잃어가면서도 끊임없이 폭발물들을 만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캐롤 스타키. 그녀는 LA폭발물 처리반 소속이다. 그녀와 그녀의 연인 슈거와 함께 폭발물을 처리하기 위해 나섰다가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연인이었던 슈거는 죽음에 이르렀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상처, 움푹 패고 실개천과 계곡이 만들어진, 색이 고르지 못한 살갗과 아주 작은 구멍을 꿰맨 자국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 정신과 상담, 구강청정제와 제산제도 남겼다. 그녀의 속내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지만 그녀의 말투는 거칠고 세다. 마치 어떤 하나의 촉발에도 곧 폭발할지도 모르는 폭발물처럼. '미스터 레드'로 통칭되는 연쇄폭파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캐롤 스타키의 앞에 나타난 ATF요원 잭 펠은 누구보다 젠틀한 남자이지만 왠지모를 불안한 느낌을 가졌다. 오히려 그들이 잡고자 하는 미스터 레드는 그들 중 누구보다도 침착하기만 하다.
'감' 하나만으로도 범인을 잡아내는 천재적 형사, 혹은 박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량의 증거물 하나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형사가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고 쉽게 흥분하며 분노와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동료들 몰래 술을 털어 넣고 가글을 하는 캐롤. 혹시 그런 자신을 들키게 될까봐 더 센 척하는 그녀이다. 폭발물 처리반에 단 둘밖에 없는 여자 수사관이지만 한 번도 맘을 털어 놓은 적도 없는 동료 수사관 마직.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빨리 계급이 올라 월급이 오르고, 그래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조금은 덜 빡빡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맡은 사건이 엉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동료라도 술이나 먹고 다니는 동료라면 사건에서 빼버리고 싶다. 캐롤과 함께 미스터 레드를 잡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인 잭 펠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어느 순간 그의 폭발하는 감정상태가 불안정하기만 하다. 위험한 건 폭발물뿐만이 아니다. 캐롤 자신도 그리고 그녀 주변의 모든 것들이 폭발물처럼, 폭발물을 만든 레드처럼 위험하다.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경찰물과 비슷하지만 작가의 역량으로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정교한 플롯과 장치, 폭발물과 관련한 일을 하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연쇄폭파범의 등장에 맞춘 듯한 캐릭터 설정은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범죄물들에서 보여주는 '진짜 범인'에 대한 퀴즈도 빠지지 않은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