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작 1 - 천하를 취하게 할 막걸리가 온다!
이종규 지음, 김용회 그림, 허시명 감수 / 북폴리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때는 만화에 대한 편견이 참 심했다. 지금은 학습만화가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만화자체를 아예 금지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만화라는 것이 그림 위주에 간단한 말풍선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아직 독서습관이 완벽하게 잡히지 않은 어린이들이 만화에만 몰두하게 되면 나중에 긴 호흡의 책을 읽기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은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어른이 무슨 만화책을 보냐는 둥, 만화가 책이냐는 둥 하는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려서 읽은 만화책들 중에는 그저 웃자고 보는 코믹물도 있었지만, 역사를 배경으로 한 팩션도 있었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있었다. 아름답고 멋진 그림, 거기에 시처럼 아름다운 대화, 그리고 줄거리의 끈을 놓치지 않는 주제의식까지. 나는 만화가 정말 종합선물세트라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황미나 작가님의 <레드문>은 아직까지도 내 책장에 손때 묻은 그대로 꽂혀 있고, 가끔 한 번씩 들춰볼 때마다 감동이 전해져 오니 말이다. 몇 년 전에 사서 아직 어린 아들이 볼까봐 숨겨두었던 <타짜>는 숨겨진 자신의 모양새가 처량해서 집을 나갔는지 그 길로 나조차도 찾지 못하게 되어서 얼마나 슬픈지 모르겠다.
여튼! 이번에 내 품안에 온 이야기는 천하를 취하게 할 막걸리 이야기, <대작>이다. 스토리라인은 간단하고 또 익숙하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천하에 망나니 백수건달 안태호. 특별한 꿈도 의지도 없이 매일 술이나 부어라 마셔라 하며 할머니 속 썪이고, 동네사람들에겐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친구 석배가 운영하는 파리 날리는 포장마차에서 할머니가 직접 빚은 막걸리를 내놓게 되고, 그 막걸리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할머니의 막걸리로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는 의지를 갖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담근 술은 함부로 남에게 주어서도 안 되고, 더구나 팔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할머니마저 뺑소니차에 치어 운명을 달리 하시고,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국내 굴지의 주류 회사에 자신의 모든 막걸리 빚는 기술과 도구들을 5천만원에 넘기셨다. 모두가 태호를 위한 일이었지만 그 일로 태호는 또 다시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 그저 할머니의 막걸리 흉내만 낸, 이름 뿐인 할머니 막걸리가 자본을 등에 업고 판을 치게 된다.
주인공을 돕는 사람들. 주인공과 대치하는 인물들. 선한 이와 악한이의 대결구도. 망나니에서 제대로 정신차린 한 사람의 건실한 청년으로 변신하는 드라마틱한 구조는 심플하다. 5권이라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로 빠른 전개였다. 그림도 멋지고, 캘리로 표현된 제목도 막걸리라는 주제에 걸맞게 한국적으로 보여서 좋았다. 중간중간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술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곁들여져 있어 주류여행을 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세계의 술이 된 와인을 알기 위한 와인여행도 있는데, 막걸리라고 왜 안 되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항상 너무도 괜찮은 우리의 것을 소중한 줄도 모르고 홀대하다가 남의 것으로 빼앗기곤 해왔다. 김치가 기무치가 되는 것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만화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불어닥쳐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된 막걸리라는 우리 술이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잠깐 인기를 끌다 사라지게 하지 말고, 우리나라를 알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또다른 효자상품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오버일까?
재미나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짧은 만화 한 편을 통해 우리나의 정서를 느끼고 또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생각했따면 정말 오버인가? 뭐 이런저런 이야기는 다 관두고라도 약간 찌그러진 잔에 막걸리 한 잔을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켜고 싶어졌던게 사실이다. 맛있는 막걸리 한 잔이라면 특별히 다른 안주 없이 그저 또 맛있는 김치를 손으로 집어 먹고 손가락을 쪽 빨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