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클럽
유춘강 지음 / 텐에이엠(10AM)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서른 즈음에 결혼한 그녀들, 
마흔 즈음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로 치자면 헤드카피에 해당하는 저 윗줄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딱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에 결혼하여 마흔 즈음이 된 나...

다른 그녀들은 어떻게 결혼하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장 독특한 케이스만을 선별한 대표주자였고, 
너무 드라마같은 삶을 사는 그녀들이었기에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와는 조금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녀들의 독백과도 같은 한마디, 한마디는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너무 사랑해서 죽을 때 한 날, 한 시에 죽어야 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함께 살면서 생긴 정으로 누군가 먼저 떠나야 한다면
같이 탄 버스에서 먼저 내리는 사람을 보내는 그런 아쉬운 마음으로 배우자를 떠나 보내려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한 번도 마흔 즈음에 있을지도 모를 급작스런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

열 너댓살, 혹은 스무 살, 서른 살즈음에 생각했던 대로
마흔이 되면, 아니 마흔 정도가 되면 일생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뭐든 내맘대로, 생각한 대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째 마흔 즈음에 오니 더 복잡해지고 알 수 없어지는건지..
예고편이라도 살짝 보여주면 실수를 좀 덜할텐데 하는 생각..

너, 그동안 왜 그렇게 살았니? 좀 더 낭만적이었어도 좋았잖아...

남편이 좋아하는지 어쩌는지도 모른 채, 
철철이 남편의 옷과 구두따위는 백화점에서 사들였으면서도 
처녓적 좋아했던 핑크빛 립스틱은 관두고 팥죽색같은 립스틱을
그것도 다 써버린 빈 곽처럼 생긴 립스틱을 새끼손가락으로 파서 써야 하는 마흔 즈음의 '나'라는 주인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시대의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공감을 가졌다. 
대부분의 아내는, 엄마는 여자이기보다는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옷을 사도 아이들 옷을, 남편 옷을 먼저 사게 되고
먹을 것을 사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 남편이 좋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그렇게 살다보면
죽을만큼 사랑해서 한 결혼도, 
남편의 혹은 남편가정의 돈이나 다른 조건을 보고 한 결혼도, 
조건도 사랑도 그만그만하다고, 이 정도면 안정적이라고, 
노후를 위해 들어 놓은 연금보험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한 결혼도
결국에 한 십년쯤 세월이 흐르고나면 
사랑도 빛이 바래고, 꽃처럼 시들어서 조금은 쓸쓸함만 남게 되는걸까?

반쯤은 사랑으로, 반쯤은 보험을 든 기분으로 결혼을 했지만 그 보험이 중간에 없어져버린 '나'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했지만 사랑에 발목이 잡힌 것 같은 지소, 
조건을 보고 결혼했지만 조건 때문에 결혼생활은 빈 껍데기같고 모래사막같은 소정..

그녀들에게 마흔이란
늙지도, 그렇다고 아주 젊지도 않은 나이
상실과 분실의 나이 
젊음을 분실하고,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하고, 
운이 나쁘면 ‘나’처럼 배우자를 상실하는 나이이다. 

공감한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설레이기에는 어색한 나이..
그렇지만 또 다시 사랑이라는 이름에, 혹은 봄이라는 계절에 설레이고 싶은 나이..

마흔은 친구들이 보고 싶은 나이라고 한다. 
다시 사랑을 하기에는 늦어버린 나이라서 친구들을 찾게 되는걸까?
어느 정도 안정되고, 아이들도 커버려 자신의 시간이 조금씩 나는 때..
그래서 그 빈 시간을, 빈 가슴을 오래 된 우정으로 채우려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보니 더욱 확실해진다. 
그래도 난 행복하구나...
조건에 매달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사막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으며, 
사랑에 목매어 결혼했지만 능력없는 남편을 먹여살리려고 자신을 소비하고 있지도 않으며, 
사랑과 보험 반반이었지만, 그 보험이 어느날 갑자기 소멸되는 불운을 겪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더더군다나 
나는 다 비어버린 립스틱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것이 내가 원치 않는 색깔도 아니다..
아직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엔 이른 나이, 마흔..
그 다음 인생을 더 풍요롭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