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시나리오의 난이도는 높아지고, 멸살법을 끝까지 완주한 김독자와 멸망 이전의 세상에서 시나리오 안에 살아 있는 인물들과 애초에 싱숑의 소설 속 게임의 등장인물들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유일한 회귀자인 유중혁의 행동에도 시나리오의 전개에도 미묘한 어긋남이 생기기 시작한다. 김독자는 자신이 아는 게임의 전개와 조금씩 다른 점이 생겨도 이제 놀라거나 겁먹지 않을 정도로 게임에 적응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대로, 애초의 전개대로라면 김독자 자신을 포함한 이 모든 세계의 운명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멸망과 함께 그토록 뻔한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미 목도한 바 있는 김독자는 또다른 무리들을 만난다. 그들은 경찰서 같은 곳에서 뜯어온 철창으로 링을 만들고 사람들을 넣어 개싸움을 시킨다. 생각해보면 인간들처럼 잔인한 동물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개를 데려다가도 싸움을 시키고, 소를 데려다가도 싸움을 시키고, 닭을 데려다가도 싸움을 시킨다. 그리고 사람을 데려다가도 싸움을 시킨다. 아주 어렸을 때 권투나 레슬링을 하면서 선수들이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을 보고 어린 마음이었지만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난다. 왜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어른들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는 걸까, 왜 저 사람들을 구해주지 않나. 싸우는 건 나쁜 거 아닌가, 궁금하고 무섭고 화가 났다. 아마도 인간들의 어떤 부류는 끔찍이도 잔인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예외없이 그런 무리들은 어디에나 있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