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시작한다고들 말한다. 비록 출발점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사회로 나오면 연봉으로, 타고 다니는 차의 배기량으로, 살고 있는 집의 평수로, 늙어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그렇게 줄세우기를 시작한다. 타고 난 배경에 따라 누군가는 흙수저로 불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불린다. 똑같이 공부를 잘해도 대학에 들어가서 누군가는 편하게 공부만 하면서 쉽게 스펙 쌓으면서 다닐 수 있는 형편이 되는가 하면 누군가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일찌감치 빚쟁이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니 강남의 높은 빌딩 숲과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 아파트들이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편히 쉴 안식처 같은 곳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자신들의 숨을 조일 듯 짓누르는 거대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 역사들을 점령하고 그곳에 승전기를 꽂으면 그 역사의 왕이 되고, 더 많은 역사를 점령하면 할수록 깃발은 그 색을 달리하게 되고, 왕의 스펙도 올라가게 된다. 김독자도 진짜 전투를 치르며 역사들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누구보다 한발이라도 앞서가기 위해 온갖 스펙을 쌓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결과로 김독자와 같이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이제 정직원이 된 유상아와 왕따를 당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직원이 되기엔 스펙도 뭣도 모자라던 김독자의 처지는 이제 완전히 뒤바뀌어 멸살법을 완독한 김독자는 무리의 왕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유상아도 현실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실력을 발휘하여 이 새로운 세상에도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20개의 역사를 점령한 왕들끼리의 전투. 말하자면 왕중왕전이랄까. 그 전투에서 살아남게 된 마지막 하나의 왕은 절대왕좌에 앉을 수 있게 되고, 김독자는 그 하나의 왕이 된다. 그리고 그는 유중혁이 걸었던 그 길이 이 세상을 반전시킬 수 있었는지를 곰곰 생각하고는 여태까지 아무도 내리지 않았던 결론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