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살아가는 후미에는 남편의 월급으로 한푼 두푼 아껴가며 생활을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에 지치고 예전과는 달리 후덕해진 몸매에 자존감도 떨어진데다 해리성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적으로도 몹시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유일한 낙이라면 이런저런 이벤트에 응모해서 작은 선물들을 받곤 하는 것이었는데 한 유명 연예인의 디너쇼 티켓을 이벤트 상품으로 받고 기분전환 겸해서 참석하게 된다. 거기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생인 가나코를 만나게 된 후미에. 가나코는 중학교 때 너무나 예뻤던 후미에를 동경했었고,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때 따뜻한 말을 건넸던 후미에에게 더더욱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여태껏 지내왔다는 말을 한다. 게다가 그 고마운 마음에 꼭 보답을 하고 싶다며 일자리를 제안하는 가나코. 후미에는 그녀가 잘 기억나지도, 자신이 했다는 그 따뜻한 말도 잘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가나코의 진심어린 말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가나코가 용기를 북돋워 준 덕분에 다이어트에도 성공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되면서 잃었던 자존감도 되살아나고, 거기에 더불어 가나코가 제안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금전적인 풍요로움까지 생기게 된다. 가나코를 만난 이후 좋은 일만 생기기 시작한 후미에는 그간 먹었던 정신과 약에 덜 의존할 수 있게 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형사들의 방문, 그리고 그간 후미에가 가나코라고 믿어왔던 여자의 존재를 증명할 그 무엇도 없는데다 후미에의 매니저 역할을 하던 쇼고가 사실은 쇼고라는 인물이 아니라 다자키 미노루라는 이름의 사람이며 형사들은 그가 살해되었다고 말한다. 완벽하게 후미에가 살인범으로 몰리도록 설계된 사건이었다. 다자키 미노루가 살해당할 당시 후미에의 알리바이를 대줄 사람이라고는 후미에의 어린 두 자녀 뿐이었는데, 후미에의 말을 들은 형사들이 찾아들고 온 서류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된다. 후미에에겐 어떤 비밀이 있으며, 가나코는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후미에를 그토록 완벽하게 속였을까?
후미에는 조사를 받으며 사실은 가나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나코의 행방에 대해 후미에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정신과 약의 부작용으로 자신이 혹시 환영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스스로를 믿지 못할 정도다. 가나코의 뒷조사를 시작한 형사들도 도대체 가나코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생각나기도 했다. 귀신이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듯이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자신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사람. 애초에 시작이 어떤 연유에서였든 결국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짓밟아버렸다는 사실만은 다르지 않다. 진짜 이름이 도모요로 알려진 가나코는 자신의 거짓말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우습고 한심했다. 그렇기에 바보같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을 쉽게 믿어버린 그 사람들이 더 잘못이라고 코웃음치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어쩌면 도둑질보다 더 악질적이고 나쁜 짓이 '사기'일지 모른다고. 왜냐하면 도둑질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누군가의 것을 훔치는 일이지만 사기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 자기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10원이 필요한지, 100원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 그 10원 혹은 100원을 위해서 무슨 일까지 할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이 벌이는 일이라고 했다. 도모요는 각기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인 척 다가가 그들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채워주면서 신뢰를 얻었고 그렇게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후미에에게는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조금이라도 더 싼 슈퍼를 찾아다닐 필요없다고 속삭였다. 사고로 두 아이를 잃고 그 아이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 후미에의 금이 가버린 유리같은 정신을 파고들었다.
원제는 <네펜테스의 달콤한 숨결>이라고 하는데, 네펜테스는 벌레잡이통풀이다. 잎 가장자리에 달콤한 꿀샘이 있는 이 식물에 이끌려 곤충이 다가오고, 미끄러져 꿀샘 안으로 빠지면 그 곤충을 소화시켜 버린다. 달콤한 숨결, 이라고만 했을 때는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네펜테스까지 붙이니 정말 제목으로는 이보다 더 정확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알아내 그걸 모아둔 꿀샘을 만들고 그 꿀샘 안으로 빠져들면 아주 마지막 하나까지 쥐어짜 소화시켜 버리는 범죄를 저질렀던 도모요와 그녀의 범죄를 끝까지 파헤치던 형사 하타와 나쓰키의 조합도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