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외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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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는 가짜일지 몰라도 저주를 건 사람의 악의는 진짜잖아요?"

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의 악의보다 더 무서운 건 없어요, 후후."

소녀의 동공이 커지고 목소리가 낮고 공허하게 변했다. 물 아래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여러분은 저주를 기획할 때 자신들이 인간의 '악의'라는 벌집을 쑤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어요. 아무리 간접적이라고 해도 부정적인 일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쾌 - 젓가락 괴담 경연> 중 <저주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 예터우즈 321쪽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밥에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세로로 꽂으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이 줄었기도 하고 그 형식도 간소화 되어서 그런지 아예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을 보고 나니 밥에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세로로 꽂는 행위는 아마도 동양권에서는 비슷하게 죽은 자에게 바치는 밥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표지가 예뻐서 사는 책은 별로 없지만 표지가 너무 혐오스럽거나 무서우면 구매를 망설이거나 꼭 사야 하는 경우라면 다른 표지로 가려두기도 하는데 부제에 딸린 '괴담경연'이라는 말과 영화 <장화홍련전>을 떠오르게 하는 표지가 무서워서 책을 뒷면으로 뒤집어 놓은 채 자꾸만 읽기를 뒤로 미뤘더랬다. 무서운 이야기일까봐서. 용기를 내서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예전에 영어를 배우면서 선생님이 첫 문장을 주면 우리가 돌아가면서 한 문장씩 덧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수업을 하곤 했었다. 우리의 영어실력이 짧기도 했지만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늘 이야기는 산으로 가거나 뻔하디 뻔한 문장들만이 반복되곤 했었다. 그런데 젓가락 괴담이라는 테마를 두고 릴레이 소설, 연작소설의 형식으로 일본과 중국, 대만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들이 만들어 낸 조화는 놀라웠다. 각국이 가진 젓가락이라는 보편적인 사물에 얽힌 미신이나 괴담들을 절묘하게 버무려 다섯 편의 단편이면서 동시에 한편의 딱 들어맞는 추리소설로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미쓰다 신조의 <젓가락님>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젓가락에 소원을 빌기 시작하면서 악몽을 꾸게 된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각해보면 대체로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고 바랄 때 우리의 기도는 뭐랄까 조금 더 공개적이고 당당하다. 교회에 간다거나, 절이 가서 기도를 드린다거나 요즘식으로 대체하자면 SNS에 해시태그를 붙인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해하고 싶다거나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것처럼 부정적인 바람은 그와 반대이다. 자신의 그런 음습한 마음이나 바람 따위를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은 사람도 없으려니와 아마도 대부분은 양심이라는 것이 그것을 숨기고 싶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바람은 오래 전에 이런저런 방법이 있었다더라, 하는 미신이나 민속적인 괴담 등에서 그 방법을 차용한다.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른다거나,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을 붉은 색으로 적어 불에 태운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젓가락'이라는 흔해빠진 도구를 이용해서 누군가를 저주할 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이유는 아마도 일상성 때문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사용하는 젓가락,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의심없이 사용했지만 그것으로 내 가까운 누군가가 나를 저주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동안 젊은 방송인들이 연달아 자살하면서 방송연예 기사에 댓글을 막게 되었다. 젓가락 같은 도구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를 저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구들을 가까이 두었다. 간혹 몹시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독기'를 품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독이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인데 그만큼 강력한 기운을 품었다는 것은 그것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렇게 강력한 독이 내 안에 있다는 뜻도 된다.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해로운 일이 된다는 뜻일테다. 다섯 편의 괴담 미스터리 안의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저주를 받았지만 결국 저주를 건 사람도, 저주를 받은 사람도 모두가 행복하지는 못했고 그 사연들은 시대를 흐르고 인연들을 거슬러 올라갔다. 괴담이라는 것을 차용하면서도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을 각기 다른 작가들이 릴레이로 이어간 이 다섯 편의 소설 속에 '인간'의 강렬한 바람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 형태가 발현하면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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