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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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화학교사로 일하던 트레이시는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 죽었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동생의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끝내지 못했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남자는 이미 20년째 복역중이지만 어설픈 재판과 무언가 숨기는 듯한 마을 사람들로 인해 트레이시는 선생일을 그만두고 형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동생 세라의 주검이 20년 만에 나타났다. 세라를 찾아냈으니 이제 진실을 찾아야 할 때라고 트레이시는 생각했다.

세라 린 크로스화이트

더 키드

대런이 말했다. "네가 언짢지 않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 세라를 그렇게 기억하거든.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 동네를 쏘다니던 꼬맹이, 더 키드로."

트레이시는 눈물을 닦았다. 대런이 말을 이었다.

"이제 세라를 편히 보내주자."

<내 동생의 무덤> 중 99쪽

"그래. 세라를 찾았지. 그러니 죽음이 죽은 자를 묻게 놔둬라."

"전에도 그 말을 하신 적이 있죠. 기억하세요? 하지만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로이 아저씨. 죽음은 죽은 자를 묻지 못해요. 산 자만이 그럴 수 있어요."

<내 동생의 무덤> 중 130쪽

20년 전 사격대회 결승전, 이미 여러차례 우승한 경험이 있는 트레이시는 네살 어린 여동생 세라에게 1년 전 우승을 넘겨줘야 했다. 그리고 한발을 놓친 순간 올해도 우승은 물건너 갔다고 생각했지만 세라는 두발을 놓쳤고 그렇게 트레이시가 우승벨트를 차지했다. 트레이시는 세라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확신했고 화가 났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맹이 여동생, 늘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하는 트레이시였지만 그날만큼은 정말로 화가 났다.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빨리 가자고 서두르는 남자친구 벤과 혼자서 집에 가겠다고 하는 세라 사이에서 갈등하던 트레이시는 세라를 그렇게 혼자 집으로 보냈다. 자신의 우승벨트와 카우보이 모자를 씌워서. 그리고 그날 이후 다시는 세라를 만나지 못했다. 남자친구의 청혼을 받고 행복한 잠에 겨워 있던 트레이시는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하와이에 간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세라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라가 타고 간 트럭이 국도변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세라를 찾아 헤맸지만 세라는 그야말로 증발해버렸고, 마침 강간범으로 6년의 복역을 마치고 삼촌네 집에 와있던 에드먼드가 용의자로 떠오른다. 에드먼드는 세라를 강간해서 죽였다고 했지만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던 상황에서 시간은 초조하게 흐르던 차에 한 세일즈맨의 증언으로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에드먼드의 집에서 세라의 귀걸이가 발견되면서 에드먼드는 세라의 살인혐으로 복역을 시작한다. 하지만 에드먼드는 끝끝내 세라의 시신이 있는 곳을 말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가족들은 세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세라를 기다리지도 못하는 상태로 무너져간다. 마을의 사랑받는 가족이었던 트레이시의 가족은 붕괴된다. 명망있는 의사였던 아버지는 엽총을 입에 물고 자살해버리고, 더 이상 그 음울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트레이시는 벤과 결혼하지만 그 결혼도 결국은 깨지고 만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집 안에 음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들 가족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트레이시는 세라를 혼자 집에 보낸 것 때문에, 부모님은 그 운명적인 주말에 집에 있지 않고 하와이로 놀러간 것 때문에.

<내 동생의 무덤> 중 162쪽

가족의 죽음은 남은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더구나 세라의 죽음은 남은 가족들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만약에'라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그 생각에 잠식되어 갔다. 부모님은 자매의 사격대회 결승전이었으니 함께 보고 같이 있어줬더라면, 집에 우리가 데리고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트레이시는 그날 세라가 져줬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면, 그래서 벤과 함께 레스토랑으로 셋이 함께 갔더라면, 하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세라의 불행한 죽음이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세라를 지켜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트레이시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재판이 끝난 후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알았기에 스스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형사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자료를 모으고 많은 사람을 만나도 세라의 시신을 찾지 못하는 한 결국은 벽에 부딪치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세라를 찾았다. 그리고 부검을 통해 여태껏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던 재판을 뒤집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 당시 보안관이었던 아버지의 친구 캘러웨이와 검사, 변호사까지도 한통속으로 무언가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트레이시.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과연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그 진실이라는 것이 트레이시를 마침내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형사가 된 트레이시의 현재와 아직 세라와 함께 하던 과거, 세라가 실종된 이후의 삶이 교차되면서 사건은 점점 진실을 향해 간다. 조금씩 멀어지다 결국은 깨져버린 부모님과의 기억, 마침내는 남편과의 관계까지 무너져버리게 했던 세라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고 싶었던 트레이시. 어릴 적 함께 놀던 소꿉친구 댄이 든든한 변호사로 트레이시를 도우면서 형사물은 법정물로 변신한다. 그리고 마지막 대반전의 순간 트레이시가 다시 이야기를 형사물로 되돌려 놓는다.

13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던 작가의 책이라 그런지 법정씬이 상당히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화학교사 전직을 가진 현직 시애틀 경찰국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주인공 트레이시의 활약도 매서웠다. 미드나 소설 속에서 여성캐릭터가(심지어 본인이 경찰이면서도) 민폐를 끼치거나 남성캐릭터에게 기대는 상황이 많이 나오는데, 이 작품은 내 몸 하나쯤은 내가 지킬 수 있는 캐릭터로 그리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또한 마지막 해결도 자신의 손으로 해내는 트레이시를 보면서 아, 이래서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었구나 싶었다. 이 작품이 2014년에 나온 작품이고 그 후 매년 트레이시 시리즈가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후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변호사 친구 댄과의 호흡이 계속 이어진다면 형사물에 법정물을 적절히 혼합한 재미있는 시리즈가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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