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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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탄다.'

이 문장엔 뭔가 신비한 구석이 있다. 홍길동이 구름을 탄다고 할 때의 그런 묘함이다.

<파도수집노트> 중 18쪽

난 미끄러운 것을 지독히도 싫어한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서 살얼음이 낀 길을 걷거나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나 미끄러질까봐 두려워서 종종걸음을 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추위에 긴장에 얼어붙어 버려서 몸살을 앓는 것처럼 아파진다. 그렇기에 미끄러지는 종류의 스포츠는 어떤 것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스케이트, 스키, 보드, 롤러스케이트 같은 것들이 전부 그런 것에 해당한다. 파도타기는 그런 종류 안에 넣어서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넘어졌을 때 위에 열거한 스포츠들보다는 덜 아플테니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짠물을 먹거나 눈에 바닷물이 들어갔을 때의 고통 무엇보다 바다에 빠졌을 때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매한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패스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면에서 볼때 작가는 참 용감하다. 제법 연식이 있는 때에 파도타기에 이끌려 배움을 시작했고, 글을 읽다보니 제대로 교육을 받거나 한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파도타기 하는 사람들의 모양새를 보며 나도 하고 싶다, 는 강렬한 욕망으로 스스로 터득해나갔던 모양인데 그 또한 대단하고 용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도타기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용감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인구가 그닥 많지 않을 것이고, 파도타기를 익히며 쓴 일기를 누군가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을 인구는 더더군다나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러면에서 용감하고 실천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나는 스포츠를 '하기'보다는 '보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프로레슬링, 권투, 야구, 배구, 농구를 꾸준히 봐왔고 특히 야구나 배구, 농구는 직관을 즐겨했던 사람이다. 집에서 TV채널을 돌릴 때도 어설픈 드라마나 웃기지도 않는 예능을 보느니 차라리 스포츠채널을 보는 사람인데 그 이유는 바로 스포츠는 흔한 말로 '각본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결과는 매번 다르다. 같은 사람들이 등장해도 매번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예상을 벗어난다. 결과를 예측하기가 힘든 일들이 벌어진다. 요즘 스포츠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가 터져나오지만 그래도 스포츠라는 것이 내내 사랑받는 이유는 그안에 우리의 인생과도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좌절이 가장 쉬운 요즘이지만 그래도 노력한만큼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직한 것이 스포츠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파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듯이, 작가도 파도를 타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느 정도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어 놓은 작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에서 또다른 배움과 성장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이 누군가와 비교우위에 서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하여 더 나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응원하고 싶어진다. 또한 이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그저 흘러가는 듯한 내 인생에도 작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아, 그저 이렇게 흘러가기만 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겠구나, 그러한 노력을 하는 데에 늦은 나이란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아아, 파도가 내 몸을 스치는 찰나에 느껴지는 그 허전함이란. 파도를 타기 위한 나의 의미없고 부질없는 몸부림. 물이 다가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은 너무나 짧고 덧없었다. 나의 무모한 몸짓은 무엇이든 꼭 움켜쥐려는 욕심으로 가득한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파도수집노트> 중 20쪽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익숙한 즐거움을 누리며 탈 것인가 아니면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에 도전할 것인가.

파도타기를 하며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고통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로 만족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즐길 것인가. 과연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일까?

그 가치는 누구의 가치인가. 남들이 인정하는 사회적인 가치인가 스스로 만든 개인적인 가치인가. 어느 한쪽이 중요하지 않거나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수학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중략)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삶. 남들이 만들어놓은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찾아가는 삶.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파도수집노트> 중 4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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