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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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강한 유대와 의리가 도덕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이야기이다.

요 네스뵈

이토록 쓸쓸하고 슬픈 이야기가 있을까?

조용하고 작은 시골마을 오스의 언덕 위, 오르가프 농장에 혼자 살고 있는 로위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칼의 유학비용을 대기 위해 작은 주유소에서 일하며 외로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났던 칼이 대단한 계획과 함께 7년 만에 아름다운 아내 섀넌과 함께 돌아온다. 칼의 계획은 그들의 아버지가 자신들의 왕국이라 불렀던 언덕 위에 호텔을 짓는 것이었고, 그 작은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고요하기만 했던 마을이 벅찬 기대감으로 일렁이기 시작했을 때 로위의 심장도 함께 뛰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우린 가족이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 뿐이야. 친구, 애인, 이웃, 이 지방 사람들, 국가. 그건 모두 환상이야. 정말로 중요한 때가 오면 양초 한 자루 값어치도 안 된다. 그때는 그들을 상대로 뭉쳐야 해. 로위.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가족이 뭉쳐야 한다고. 알았지?"

"네"

요 네스뵈 <킹덤> 중 13쪽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how far you would go for love(or family)' 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사랑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하는 말이 그것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가족의 일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도덕을 넘어서는 일을 요구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몹시 사랑한 가족이 있었다. 로위와 칼, 그리고 그의 부모.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로위는 동생인 칼을 사랑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들을 사랑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마음이 약했던 칼을 돌보는 일에 익숙했던 로위에게 아버지는 유독 맏이의 책임을 강조했고, 가족간의 유대를 강조했다. 그 후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서로를 사랑했던 가족들 모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모두 상처받았고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입을 닫았고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치심에 떨어야 했지만 그것이 가족들 안에서라면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결국 가장 용기있게 나섰던 것은 로위였고, 그야말로 가족을 위해서, 사랑하는 동생 칼을 위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작품의 마지막까지 보여주었다.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된 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좋을까. 하지만 로위를 괴물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슬프다. 어느 순간까지는 적당히 타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로위는 상처받았어. 아버지에게 가스라이팅 당했고 어쩌면 그토록 슬픈 눈을 하는 칼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건 자기자신 밖에 없다는 그릇된 책임감에 목줄을 매인 것이나 다름없어. 그러니 여기까지는 어쩌면 나였대도 그랬을거야. 하지만 종반부로 다다를 때 더 이상 가게 된다면 나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만 가라고 로위의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어진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우습고도 슬픈 것은 언제나 자신이 벌이는 일들이 마지막 해결책이 되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생각들에 일침을 가하는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꼽는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이 떠오른다. 계획은 늘 간단하고 완벽해 보인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방해물을 제거하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다. 하지만 두더쥐 게임처럼 하나를 찍어 누르면 반대쪽에서 또다른 방해물이 튀어 나온다. 어린 로위의 심장을 갉아 먹은 죄책감은 동생을 위해 더 용기있게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죄책감은 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역할 수 없는 책임감으로 자라났고, 건강하지 못한 먹이를 먹고 자란 로위의 책임감은 로위에게 또다른 죄책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일들을 벌이게 만들었다.

아무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어려서부터 생긴 트라우마가 로위를 비정상적인 책임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해해줘야 한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폭행을 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을 몇번이나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선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트라우마만으로 그를 용서할 수는 없다. 이야기가 끝으로 가는 내내 나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다만 책 안의 인물을 두고 내 마음이 이리도 혼란한데 작품 속의 로위는 평안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로위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날은 아마도 그가 영원히 눈감는 날이 아닐까. 그의 뒤를 쫓는 쿠르트 올센의 눈은 피할 수 있을지언정 로위 자신의 눈, 진실을 아는 눈을 피할 길은 없을테니. 게다가 자기의 평생을 두고 사랑해 온 동생 칼의 눈에서도 자신의 죄를 볼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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