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적으로 진화를 하든 발전한 현대과학의 산물의 결과로든 암수한몸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태초에 인간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어 지금의 인간이 되었느냐는 여러가지 추론들이 있지만 과학이든 종교든 간에 현재의 인간이 시작은 아니었듯 현재의 인간이 끝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오래 전에 아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 남자와 여자의 뚜렷한 차이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다른 두 종이 이해하고 받아들여가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리하여 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승리하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관계 형성의 비결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인간이라는 것이 여성과 남성, 으로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의 구분에서 오는 '다름'은 세상 끝날까지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남성이면 군입대라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여성은 분단 국가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가임기 여성이 되면 월경이 시작되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문제를 당면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남성과 여성을 나누어 서로에게 자기에게 당면한 문제가 더 크고 중하며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다보면 결국은 상대를 비난하고 비하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앞서 말한 존 그레이의 책에서 말한대로 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승리하는 바람직한 관계 형성이 아니라 나도 상대도 모두 패하고 마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다고나 할까.

아밀의 소설집 <로드킬>에는 표제가 된 <로드킬> 외에도 다섯 편의 단편들이 함께 더 실려 있다. 이 이야기들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더 흐른 미래의 어느 곳에선가 시작하고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우리는 늘 희귀하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다른 인간 여자들은 모두 편의와 힘을 위해서 자궁을 버리고, 유전자를 변형하고, 줄기세포를 이식받고, 장기를 대체하고, 수명 연장 약을 투여받았다. 다른 인간 여자들은 모두 새롭게 진화한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달랐다. 그들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거나, 어떤 오래된 종교적 도덕적 신념 때문에 그런 선택을 거부했거나, 또는 변방의 오지에서 과학적 기술을 접해보지도 못한 채 '자연친화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았다.(로드킬 中 23쪽)

아마도 인류 특히 여성성의 진화에 대해서 상상해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상을 문학적 텍스트로 옮겨 온 이가 바로 아밀이라는 작가였다. 현재의 여성이 가진 여성성이 보존 혹은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런 여성들을 보호소에 수용하여 관리하고 있지만 결국은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불러 오게 되고, 그런 희귀한 여성성을 가진 구시대의 종으로써 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관리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리하여 바깥 세상으로의 탈출을 감행하는 그녀들. 그들은 기꺼이 지금과는 또다른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편의 가스라이팅과 학대, 성폭력에 무방비한 상태로 내던져진 여성이 등장하는 <외시경>과 소수민족의 마지막 주술사인 여성이 남성의 폭력에 희생되는 <라비>, 요즘의 현실을 담고 있는 <오세요, 알프스 대공원으로>, 나와 당신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결국 내가 말하는 당신이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나서는 길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잃어버린 자신이 겪어야 했던 학대를 말하고 있는 <몽타주>, 안정된 삶보다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공희>까지 작가의 기본적인 의도는 '소녀탈출'이었다고 한다. 사회나 가족에게서 억압받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억압을 딛고 일어서서 결국은 스스로 구원이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암수한몸의 인간을 상상하고 꿈꾸었던 이유가 조금 어린 시절에는 분연히 뚫고 나가야 할 억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중년이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는 그러한 적극적인 이유보다는 아마도 분쟁 혹은 논쟁이 더이상은 버거워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어떻고, 남성이 어떻고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보다는 한데 어울려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은 평화주의자가 되었달까.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선구자들은 있어왔고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가려 애쓰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밀의 소설에서처럼 혹은 내 상상 속에서처럼 미래의 어느 날엔가 더이상 스스로의 몸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변화시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 있는 문제점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긍정적인 관계를 위한 나와 나 아닌 모든 타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