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이고 야구 낮경기가 있는 날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현재 연패중이고 그 연패까지 오는 동안 경기의 질이 좋지 않았고(지는 경기에 질이 좋을 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흔히 말하는 '졌잘싸'와 같은 경기는 졌지만 질이 좋은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선수들의 분위기는 영 엉망인 듯 보였다. 심지어 컴퓨터 모니터 너머로 야구를 보고 있는 내 컨디션까지 바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만큼은 지지 말아야지, 지면 안되는 거지, 하고 나왔겠지만 경기는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1회부터 어이없는 실수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경기의 흐름은 급격하게 상대팀으로 넘어가고 우리팀의 사기는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3회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나는 아, 오늘도 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면서 화도 나고 실망도 되고 아무튼 여러가지 기분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일요일인데, 이처럼 여유로운 한낮인데 야구 때문에 기분이 최악으로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차라리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머리의 한 부분은 어차피 야구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는 소설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읽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티셔츠들을 모아, 그 티셔츠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엮은 책 <무라카미 T>는 지금의 내 상태에 어쩌면 딱 알맞는 책이었다.
Keep calm 으로 시작하는 문구들의 뒤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게 여러가지로 변형되어 적용되고 있는데 원래는 'Keel calm and Carry on'이라는 문구가 그 시작으로 영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개월 전인 1939년에 대규모 공중 폭격이 예고되자 영국 정보부가 민심을 안정시키고 패닉 발생을 막기 위해 만든 포스터의 문장이었다고 한다. '평정을 유지하고 일상생활을 계속하자'라는 뜻인데 하루키의 책을 홍보하려고 출판사에서 그 문장을 패러디하여 'Keep calm and read Murakami'라고 적힌 티셔츠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오늘의 나이다. 야구경기를 보고 평정심을 잃은 나.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Keep calm 하고 그리고 '무라카미 T'를 읽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