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쏘다 반니산문선 4
조지 오웰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1984>와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읽기 전에 장강명 산문집 <책, 이게 뭐라고>를 읽은 건 어떤 전조였을까? 세상을 향해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임무를 자신에게 지운 2000년대 한국의 장강명이라는 작가와 1900년대 영국의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는 시대도 다르고 태어난 나라와 환경도 다르지만 내가 보기엔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품었었기에 사회를 비판하고 전체주의의 종말을 묘사하는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에세이였다. 그는 인도에서 태어나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립예비학교에 들어 갔지만 그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차별을 겪으며 우울한 시절을 보냈고, 19살의 나이에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미얀마에서 대영제국의 경찰로 5년간 근무했지만 영국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을 뿐이었다.

삶이란 본디 층층이 위계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옳은 일이었다. 강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이길 자격이 있었고, 그래서 늘 이겼다. 또 약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져도 쌌고, 그래서 늘, 끊임없이 지기만 했다.

<코끼리를 쏘다> 中 117p

어린 나이에 자신의 위치가 정해져버린 오웰에게 진다는 것은, 무언가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혹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늘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오웰은 자신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믿었다. 어떤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불쾌한 사람에게서는 나쁜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고 그래서 자신에게도 냄새가 나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믿음은 그를 상당히 염세적으로 만들었다.

서른 살 무렵까지도 늘 나는 큰일을 도모해봤자 망할 게 뻔하고, 앞으로 몇년이나 더 살지 모른다는 가정 하에 앞날을 계획했다.

<코끼리를 쏘다> 中 124p

"규칙을 깨라. 아니면 죽는다."

나는 그런 경우 약자에게 자신을 위한 새로운 법칙을 만들 권리가 주어진다는 거을 알지 못했다. 설사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그것을 사실로 확인해줄 사람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코끼리를 쏘다> 中 130p

1911년에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간 조지 오웰의 학교 생활이 기술된 부분을 보면서 벌써 1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지금이나 다를바 없는 일처럼 보인다는 것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있는 아이들은 선생들로부터 특혜를 받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수입을 묻고, 차종을 묻고, 집의 크기를 묻는다. 더 좋은 학교에 진급시키기 위해서 상류층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 아닌가?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인가, 아니면 아직도 인간이라는 종이 여전히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진다. 오웰은 자신이 8살 어린 나이에 상류층의 어마어마한 부자는 아니었을지언정 관리의 아들이었으니 일반 학교에 다녔다면 특별히 모자라게 자라지는 않았을 테고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감으로써 겪어야 했던 패배감으로 자존감이 낮아지지도 않았을터다. 그곳에서 느꼈던 분노와 증오, 그리고 패배감이 성인이 되고 난 이후까지 얼마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의 약점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또한 무엇이든 쉽게 믿기 때문에 남들에게 쉽게 휘둘린다. 남들의 농간으로 열등감에 쉽게 빠지고, 이해할 수 없고 가혹한 법을 어기는 데 대한 공포에 쉽게 물든다.

<코끼리를 쏘다> 中 152p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상의 인물과 대화를 나누거나 글 쓰기를 좋아했던 소년 오웰은 결국 작가로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가 말하는 산문을 쓰는 동기는 네가지이다. 똑똑해보이고 싶고, 세간에 회자되고 싶고, 사후에도 기억되고 싶은 더없는 자기중심주의가 그 첫번째이다. 두번째는 미학적 열정, 세번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상을 발굴해서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정치적 목적이라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다. 내 글쓰기의 시작점은 늘 당파 의식, 불의에 대한 공분이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쓸 때 나 자신에게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폭로하고 싶은 거짓말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목해주길 바라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다.

<코끼리를 쏘다> 中 202p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은 상당히 날카롭고 지적이어서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표시를 하다보니 한장 걸러 한장씩 표시를 하게 될 지경이었다. 산문집의 표제로 쓰인 <코끼리를 쏘다>는 한편의 긴장감 있는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식민통치를 하는 영국인들을 은근하면서도 대놓고 미워하는 버마인들. 백인의 동양지배라는 상황을 코끼리 사건을 통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더이상 아무런 해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코끼리를 쏴야만 했을 때의 오웰의 심정은 그야말로 절박해보였다.

벡인 통치의 전제조건이 늘 이른바 '원주민'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고, 따라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원주민'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를 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고, 그의 얼굴은 가면에 맞게 변한다.(중략) 내가 그때 코끼리를 쏜 건 그저 바보처럼 보이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눈치 챈 사람이 있을까.

<코끼리를 쏘다> 中 183p

이 외에도 오웰이 책방에서 일하던 시절에 느꼈던 일들과 평론가로의 삶을 살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단편으로 담겨져 있는데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글쓰기에 대한 의무감과 애정 등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자라온 환경과 지난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두고 보니 그의 작품이 훨씬 더 잘 이해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너무나 많이 망가져서 말세라고들 하는데 오웰이 살았던 시절은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있었고 온갖 사상들이 급작스럽게 나타나 사람이 사람을 파괴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펼치고 세상을 고발하는데 온힘을 다하려 했던 오웰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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