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만으로는 채울 수 없던 어머니의 빈자리를 어린 시절엔 거짓말로 채워간 적도 있었지만 로즈는 열네살이 되던 해 더 이상 어떤 조각 하나도 없는 어머니를 창조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 속에서 죽이기로 결심했다. 서른 다섯이 되도록 안정된 직업을 가지지도 못했고, 오래 사귄 남자친구 조와도 같이 살고는 있지만 결혼을 한 사이도 아니다. 로즈의 아버지는 늘 로즈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직업을, 삶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런 표현조차도 로즈에겐 상처가 되고 만다. 그토록 어머니의 존재를 그리워 할 때는 한마디 말도 없었으면서 갑작스럽게 아버지는 로즈에게 소설책 한권을 내밀며 로즈의 어머니가 가장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은둔한 소설가, 콘스턴스 홀든이라는 이름을 받아들고 로즈는 어머니의 존재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관이 커튼 뒤로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던 친구가 너무 슬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것을 보았다. 내게 어머니의 상실이란 느낄 수는 있지만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내가 느낀 슬픔은 잠가놓아 열 수 없는 상자였고, 열쇠 없는 집이었으며, 이름을 발음할 수 없는 지도 위 장소였다. 어느 날 정체를 알게 된다면 당연히 압도당하겠지만 그럴까 봐 두렵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없었고 어머니를 가진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잃은 적 없는 대상을 어떻게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리움에 대해서도, 궁금증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뿐이다. 가진 적 없는 건 그리워할 수도 없어!
콘스턴스 홀든에 대해 아버지가 한 불길한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았고, 외국어나 기술을 배워보라던 설득을 생각했다. 지금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너는 큰일을 할 사람이었어! 수도 없이 들은 말이었다. 사실 내게 일어난 중대한 일은 단 하나였다. 나는 어머니가 곁에 있어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1980년부터 1982년까지 로즈의 어머니인 앨리스가 코니(콘스턴스 홀든)을 만나 어떻게 사랑에 빠졌으며 그 둘의 삶이 어떻게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2017년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어린 소녀가 서른 다섯의 성인이 되고 어머니의 부재라는 결핍이 그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래서 갑작스럽게 손에 쥔 어머니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따라 나서는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다.
앨리스는 겨우 스무살이었다. 앨리스는 코니의 당당하고 힘있는 우아함에 이끌려 그녀와 함께 하게 되지만 코니와 함께 누리는 모든 것들이 자신이 이루어 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힘겨웠고, 그녀와 함께 그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럴수록 코니를 붙잡고 싶었지만 코니에겐 코니만의 삶이 있었다. 성공한 작가로 헐리우드에서 유명 배우와 감독들과 함께 하는 코니에게 어린 아이처럼 매달려 징징대는 앨리스가 귀찮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둘 사이엔 오해가 쌓여가기 시작했고 결국 앨리스는 코니의 절친이자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 준 샤라의 남편 맷과 훌쩍 현실로부터 도망쳐 버린다. 비록 샤라와 맷의 관계가 이미 위태로운 관계였다 해도 맷와 앨리스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 그럼에도 맷은 앨리스와 자신의 아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앨리스는 코니를 잊지 못해서 산후우울증에 시달렸고, 걱정이 된 맷의 연락으로 코니를 만났지만 그들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을 준 채 헤어졌다. 그것이 코니에게도, 맷에게도 그리고 앨리스의 딸인 로즈에게도 마지막이었다.
"코니는 당신, 당신의 파트너, 그리고 관계 자체가 있다고 해. 사랑 말이야. 자신을 돌보듯이 사랑도 돌봐야 해. 사랑이 혼자서 유지되며 자라기를 바랄 순 없어. 우린 사랑을 돌보지 않았어, 조.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러길 원하지 않았고. 그리고 가끔 그런 사실을 아무도 설명하려 들지 않는 것 같아."
"사랑은 화분에 심은 식물이 아니야, 로즈."
"살아있는 생물이야." 내가 말했다.
코니와 앨리스, 샤라와 맷, 맷과 앨리스 그리고 로즈와 조
모두는 한때 서로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을 돌보지 않았다. 사랑이 저절로 유지되고 자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저 버려두었다가 사랑이 깨지고 금이 가고 그 깨진 사랑에 자신들의 마음을 베었다. 로즈는 어머니의 흔적을 찾겠다고 코니를 찾아가지만 그것은 어머니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기 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로즈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조차 자기를 버렸는데 어떻게 자기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인정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늘 의심했던 것이다. 사업이랍시고 벌여 놓고 통 진전이 없으면서도 로즈에게 미안한 마음조차 없는 조에게 따끔하게 사실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조의 가족들에게 명절마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가면서도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조와 헤어진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진 '관계'라는 끈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머니가 버린 자식'이라는 스스로의 정의로부터 비롯한 것이리라.
그래서, 로즈의 엄마 앨리스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 하는 궁금함에 제법 묵직한 책의 페이지를 하염없이 넘겼다. 하지만 애초에 작가의 목적은 앨리스가 어디 있는지보다도 로즈가 자신의 인생에서 어디쯤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로즈가 잡아야 할 삶의 목적은 35년 전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헤매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바닥으로 내모는 것도 아니었다. 관계를 갖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고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나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그리고 그 사랑을 돌볼 수도 있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