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말랑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요를 들으면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날에는 희뿌연 하늘에 떠있던 달을 보다 눈물이 나기도 했던 그런 시절.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던 카톡 대신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동전을 넣고 전화를 하고, 더 넣을 동전이 없으면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다 말하던 중간에 뚜뚜뚜뚜 하고 전화가 끊기던 시절. 삐삐에 숫자로 된 암호를 남기고 크리스마스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방학이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쓰던 그런 시절. 누구나 젊은 시절은 다이내믹하다. 어떤 것도 완성되지 않은 시절이라 그렇고 완성을 향해서 달리는 시기라 그렇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 인생의 목표는 이제 크게 없고 '우리' 혹은 '우리 가족'의 목표를 두고 살고 있달까. 아이가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는 입시를 잘 마치는게 목표였고, 지금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 남편의 합격도 우리 가족의 목표 중 하나이다. 결국 오롯이 나 혼자만의 인생목표가 없어지고 난 뒤에는 내 인생이 젊은 시절처럼 다이나믹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하는 일상의 작고 희미한 것들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무뎌진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드라마를 고를 때도 연애하는 드라마는 패스한다. 연애세포를 살려서 쓸데도 없고, 내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해야 하는 '연애'라는 것이 이제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달의 조각>이라는 이 에세이는 딱 내가 스무살부터 서른살까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책이었다. 지금도 본가에 있는 내 오래된 상자를 열면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들이 하나 가득이고(심지어 그 안엔 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이 복사본으로 들어 있다. 나중에 내가 무슨 말을 써서 보냈는지 확인하려고 복사해서 보관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무섭다) 구닥다리 PC에 넣는 플로피 디스크에는 시집을 내겠다며 써놓은 얼굴 화끈거리는 시들이 몇 백편쯤 들어 있다. 혼자이긴 싫지만 그렇다고 무리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 더 싫었던 시절의 나를 오글거리는 말들로 포장해두고 '시'라고 불렀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 중 가장 바빴고, 부지런했고, 치열했고, 열심이었고, 아팠고, 많이 웃었고 또 많이 울었던 10년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