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불안한 상태로 여행을 계속하던 질버만은 자신의 전재산이 담긴 돈가방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더이상 희망적인 상황을 꿈꿀 수 없게 되자 그는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다.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잃어버린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결국 질버만은 애초에 자신의 여행을 시작하게 한 것이 국가였다면 자신을 멈추게 할 것도 국가 뿐이라는 생각에 파출소로 가려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꿔 자신에게 네덜란드로 가자고 제안했던 이를 찾아가지만 그와 함께 파출소로 연행되고 그렇게 그의 여행은 끝이 난다.
여행이 설레고 즐거운 것은 결국 여행이 끝난 후 돌아갈 곳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끝이 없는 여행이란 마냥 지치는 일이다. 인간이란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어딘가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며 정착하기를 소원한다. 그런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질버만이라는 남자가 시작한 여행이란 얼마나 슬프고도 고된 것인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다시 언제 만나게 될 수 있을지 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게다가 집이라는 곳으로는 돌아갈 수도 없고, 유대인이라는 신분이 들킬까 두려워 아는 사람을 만나고도 마음 놓고 반가워할 수도 없다.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유대인이 자기 가까이에 머무는 것이 불안하고 화가 나기까지 한다. 저 수많은 유대인들 때문에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할 지경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역겨우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독일을 떠나보기 위해 국경까지 넘어갔다가 결국은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 하염없이 독일 내 기차를 타고 배회하던 질버만은 결국 그렇게 독일 내에서 강제로 여행을 끝마쳐야 했고 그 여행의 끝에서 그는 자신의 돈가방과 함께 이성까지도 함께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27세의 젊은 유대인 작가가 '수정의 밤' 사건을 경험한 뒤 도망 다니는 와중에 쓴 작품이라고 하니 극중 질버만이 경험한 독일 내 유대인의 불안감과 공포의 공기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