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2~3편의 책을 꾸준히 낸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에서 초반 특히 미스터리물들을 많이 읽었고 가지고 있는데 이번 <녹나무의 파수꾼>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같은 작품들을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본성, 같은 걸 기대하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별볼일없는 청년 레이토이다. 술집에서 일하던 엄마가 유부남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낳았고, 그래서 아버지는 본 적도 없으며 아침에는 술 냄새를 풍기며 자고 있고, 저녁이면 화장을 치덕치덕하고 출근준비를 하느라 추억할만한 것도 별로 없는 엄마마저도 일찌감치 죽어버린 뒤 할머니와 살았다. 자존감이라곤 없는데다 배운 것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 결국엔 절도죄로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간 전혀 존재를 몰랐던 치후네라는 이모가 나타나 그를 유치장에서 구해준다. 그녀는 레이토를 구해준 댓가로 자신의 가업 중 하나라는 '월향신사'라는 곳의 녹나무를 지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름이 5미터는 될법한 거목 안에는 밀초를 태우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가 꾸며져 있는데 낮에는 아무나 드나들 수 있지만 밤에는 오직 치후네를 통해서만 예약을 할 수 있고, 혼자여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어 있었다. 무언가 영험한 힘을 지녔기에 '기념'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지만 치후네도 기념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그 '기념'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레이토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치후네는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하고, 기념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도 치후네씨가 절대로 자세한 이야기는 레이토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며 궁금증만 유발한 채 가버리곤 한다. 그러다 레이토는 기념을 하기 위해 온 사지씨를 뒤따라 온 딸 유미를 알게 되고, 유미에게 반한 레이토는 마침 자신도 그 기념이라는게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기에 사지씨의 기념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유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은 '소원을 100% 들어주는 신비한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옆 사람과 서로 마음을 열고 만나기를 빌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이다. 사실 세상에 소원을 100% 들어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작가의 말이 일본말이었기에 해석에 '들어준다'가 단순히 듣는다,인지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준다, 인지는 알 수 없으나 100% '들어'줄 수는 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원이나 이야기도 100%는 못 들어 주기가 쉽다. 단 둘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야말로 100% '듣는' 행위조차도 어렵다. 하지만 나무라면, 오랜 시간 인간의 삶보다 더 긴 시간을 한 자리에서 살아 온 나무라면 100% 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나무가 100% 들어준다는 것은 내 마음 속의 모든 감정들 그러니까 누군가에 대한 내 모든 감정, 혹은 나 자신에 대한 감정, 차마 입밖으로 내놓지 못했던 혹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그저 나무 안에 가만히 서서 밀초를 태우며 감정의 폭풍을 가슴 속에서, 머리 속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무가 다 듣고 있는다면, 그래서 그걸 다 품고 있다가 그걸 받아들이고 싶은 그의 가까운 누군가가 가슴을 열고 또 밀초를 태우며 나무 안에 서있으면 그게 말이 아니라도, 소리가 아니라도, 글이 아니라도 그에게 고스란히 가슴으로 머리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작가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기념을 하기 위해 찾아 오는 사람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미와 그의 아버지인 사지, 녹나무 파수꾼 자리를 제안한 치후네와 레이토,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가정사는 어찌보면 흔해빠진 신파일 수 있다. 지난 며칠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고 있는데 거기서 참 답답한 캐릭터로 나왔던 감독님의 대사 중에 사람이 모두 한가지 면만 있는 건 아니라는 대사가 있었다. 어느 한면이 두드러지게 보이다보면 우리는 다른 한면은 가볍게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찾기 힘든 다른 한면을 힘이 들어도 찾아봐 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 다른 한면은 이 작품 속의 녹나무처럼 영험한 힘을 가진 나무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찾기 힘들 수도 있고, 또 이런 나무가 있다는 설정 자체가 판타지일 정도로 대부분은 인생을 통해 찾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생을 걸고 힘을 들여 찾기를, 찾아 보려고 노력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인생에서의 회한들을 너무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지만 말고 털어내기를, 모든 것에 너무 늦은 시간이란 없다고 생각하고 남은 삶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