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크리스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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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히가시노 게이고 선생의 책이 너무 빨리빨리 나와서 전작이 힘들어 포기했다는 말을 쓰면서 거의 거미줄 뽑아내듯 작품을 뽑아낸다는 말도 쓴 적이 있는데 장편소설을 주로 쓰시던 분께서 이제 동화를 내셨다. 당연히 아주 짧고, 심지어 그림까지 들어 있어서 한 30분이면 완독이 가능하다. 마더 크리스마스라는 책 제목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와는 약간 다른 날씬하고 치마를 입은 모습을 한 산타클로스를 보고 엄마와 관련한 크리스마스인가보다, 하고 상상했었다.

왜 산타는 꼭 남성이어야 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생각할까요? p.40

전세계 산타클로스가 모여 산타회의를 하는 날이다. 산타는 피부색만 다를 뿐 다들 후덕한 몸매에 흰 눈썹과 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이 더 이상 산타를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꿈을 잃은 아이들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 날은 회장님이던 미국 지부 담당이 은퇴를 하는 날이고, 회장님은 부회장이었던 네덜란드 지부 산타를 회장으로 지명하고 자신의 후임을 소개하기로 한다. 모든 산타의 찬성을 얻어야만 산타가 될 수 있었는데 아프리카 지부의 산타는 자신이 피부색 때문에 후보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로운 미국 지부의 산타 후보는 제시카라는 오동통한 여성이었다.

이번에 후보자를 선정하면서 나는 지금까지의 제약을 모조리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아프리카 산타의 입회 승인 회의 때였어요. 그를 지켜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후임자가 될 미국 산타에는 흑인도 대상에 넣어야겠다고요.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인간적인 자질 외에는 어떤 조건도 달지 않기로 했습니다. p.30

갑작스러운 여성 산타 후보의 등장에 다른 지역 산타들은 열띤 토론을 시작한다. 기본적인 산타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기본적인 산타 이미지란 뭐냐, 빨간 옷에 흰 수염, 남자라는 이미지, 성 니콜라스, 문제가 되는 부성의 상징 등 저마다 각자의 의견에 열을 올렸고 심지어는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시카의 아름다운 노래소리에 정적이 되돌아오고, 그녀가 구워 온 쿠키와 차를 마시며 그들은 왜 제시카를 산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대화를 시작한다. 두 살 때 사고로 아빠를 잃은 토미가 엄마인 제시카를 산타로 추천했고, 제시카는 산타는 남자만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토미는 화를 냈다.

엄마는 아빠 몫까지 나를 사랑해주잖아요. 내게 그러겠다고 약속했잖아요. p.54

부성이든 모성이든 어떤 사랑이 더 강력하다고 말할 수 없고, 그 어떤 한쪽도 가벼이 여겨서도 안되지만 겉모습 따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사랑이란 누구 한 사람 특히 남성이거나 여성으로 한정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 속으로 정해 놓은 산타에 대한 이미지들이 사실은 그냥 그렇게 굳어진 것일 뿐 어느 것 하나도 위법행위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누구나 빨간 털 달린 옷을 입는 것 같지만 호주에서는 알로하 반팔 셔츠에 반바지를 입는다. 사막에서는 붉은 망토를 둘렀었지만 사자에게 쫓기는 바람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초록망토로 바꿨다. 흰 눈썹이 아쉽다면 밀가루를 바르면 된다. 그렇게 제시카는 미국 지부 산타로 임명되었고, 너무 뚱뚱해서 힘들었던 지난 산타와는 달리 이번 산타는 알래스카에 도착하기 전에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그리고 순조롭게 선물배달을 마친 제시카산타는 집으로 돌아와 3층에 사는 존의 가족과 함께 별을 보며 그의 청혼에 yes,라고 대답한다. 산타들은 미국 지부 산타의 결혼을 승인하느냐를 두고 또 한 번 회의를 시작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여성과 남성, 피부색에 관련한 차별과 같은 여러가지 상황들이 담겨져 있다.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이 어쩌면 그저 약간의 선입견으로 인해 굳어진 오해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러한 상황들이 오로지 나만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사고라는 것,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바로 인간적인 자질 외에는 어떤 조건도 달지 않겠다던 전임 미국 지부 산타의 말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인간적인 자질 이외의 것들에 상당히 많이 좌우되고 그걸 편견이나 선입견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고 의견이라고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렇게 또 한번 스스로를 점검해 볼 시간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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