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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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에 출간된 작품치고는 제목이 상당히 도전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자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불어를 모르지만 원제<Joyeux suicide et bonne annee>를 그대로 옮겼다고 추측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오너먼트와 해피뉴이어라는 말에 자살이라는 말, 더구나 행복한, 이라는 단어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기에 조금 꺼림직한 마음은 접어두고 읽어보기로 한다.

실비 샤베르는 마흔 다섯의 고아다. 새벽녘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고아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마흔 다섯이나 먹은 사람에게 '고아'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건 아마도 마흔 다섯쯤 되고 보면 이제 부모님의 슬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렸거나 혼자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혼자로서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고아라는 말은 아직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혼자 남겨지는 아이들을 위한 단어이니까. 그럼에도 실비는 스스로를 고아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가족은 아무도 없고 사랑하는 남자도, 혹은 자신이 낳은 아이도 없다. 아빠의 묘지를 계약하러 간 실비는 자신의 묘지도 미리 사기로 한다. 우울해하는 실비를 위해 친구 베로니크는 정신과 의사에게라도 가보라고 권하고 언젠가 만났던 남자 중에 프랑크라는 남자가 있었다는 이유로 고른 심리치료사 프랑크를 만나 크리스마스에 자살을 하려고 한다고 고백한다.

"오래전부터 혼자 살아요. 독신이고 자식도 없어요. 나는 외동인데 4년 전에 엄마를 잃었고, 몇 주 전엔 아빠를 잃었죠. 나는 혼자고 죽을 거 같아요. 크리스마스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이죠."

(중략)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두 달하고 조금 더 남았군요.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만나러 오세요. 그리고 12월 25일, 그날이 진짜 마음에 들면 오후 2시 30분에서 4시 30분 사이에 자살하세요. 어떻습니까, 실비?"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이어> p. 23

프랑크는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느냐,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는 조언과 충고를 늘어놓는 대신에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과 상담을 하되 그 때까지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실비가 원하는 날에 자살을 하라고 권한다. 대신 다음 상담에 오기 전까지 자신이 권하는 일들을 해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부끄러워서 절대로 하지 못할 일들이라든가, 비난받아 마땅해 보이는 짓을 저질러 보라고 한다. 실비는 펄쩍 뛰지면 어차피 곧 죽을건데 뭔들 못하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왁싱을 하고 마트에서 입욕제를 훔쳐 나온다. 그리고는 프랑크에게 당신이 시켰던 일들을 하느라 무척이나 부끄러웠고 창피했고 굴욕적이었고 분노까지 일었다며 화를 내지만 프랑크는 어떤 구체적인 일을 시킨 것이 아니라며 결국 모든 걸 결정한 건 실비 자신이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실비는 프랑크와의 상담을 계속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일상에 어떤 것에도 큰 관심도 없고, 그러한 무기력한 태도는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못생긴 여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더욱 외롭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매주 조금씩 다른 일을 하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실비 안의 무언가를 깨웠다. 죽자고 덤비니 어떤 것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일을 해내고 나서 느끼는 감정들이 모든게 긍정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감정의 폭을 넓히고 폭발시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하철 플랫폼에 쓰러져 있는 노숙자와 눈이 마주친 실비는 그녀를 위해 구급차를 불러주고, 차마 그녀를 두고 떠날 수가 없어서 악취가 나는 그녀의 더러운 손을 잡은 채 자장가까지 불러주며 구급대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실비의 손을 잡은 채 세상을 떠났고 실비는 충격을 받았다. 플랫폼에서 죽은 그 여자는 냄새가 나고 더러웠지만 자신의 손을 잡고 죽었다. 따뜻한 욕조에서 좋은 향기와 함께 죽는대도 혼자라면 비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충격을 받은 실비를 위해 달려와 준 프랑크는 실비가 지난 몇 주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 걸 느낀다며 혼자 죽고 싶었던 실비는 이제 없다고 말해준다.

실비, 불행에 크고 작은 건 없어. 불행한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니까.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이어> p.168

실비는 15년을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친구와 함께 노숙자가 있는 영안실로 찾아가 깨끗하게 씻겨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장례를 치러준다. 회사 동료의 소개로 만나게 된 에릭과 네팔로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실비는 크리스마스에 죽으려던 자신의 계획을 접는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오지만 기습적으로 찾아 올 죽음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실비가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아마도 두달 뒤면 죽을 목숨이니 무엇이든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다, 는 용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뭐 아무렴 어때, 곧 죽을건데~! 라고 생각하고 삶의 텐션을 끌어올리다 보면 나한테 이런 면도 있었던가,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던가 싶고 하지 않았을까? 가끔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죽을 용기로 살면 무엇이든 못하고 살겠는가 하는 말이 그런 말이겠지. 사실 이 소설 안에서의 실비는 유산도 어느 정도 물려 받았고, 나름 자리잡고 있는 직장도 있기 때문에 정말 살기 어려워서 죽고 싶은 사람들이 본다면, 다 먹고 살만하니까 하는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하고 비아냥 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크의 말처럼 불행에 크고 작은 건 없다. 부자라고 불행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가난하다고 행복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불행이란 돈의 유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까. 불행한 사람들에게 불행이란 저마다의 크기와 이유가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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