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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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동안 타투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다. 쇄골쯤에 혹은 어깨와 뒷목의 중간쯤에, 혹은 엉덩이와 허리를 구분짓는 그 라인쯤에 하면 어떨까 하고 이미지를 모으기도 했었다. 오래 전이라고 해서 20대였던 건 아니고 이미 결혼도 하고 아들도 있을 때였는데 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노화가 시작되는 내 '몸'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잉크자국을 새긴다는 것이 껄끄러워서 고민만 하다가 결국 스티커 붙여보기로 아쉬움을 달래다 끝이 났다. 캐나다에 살면서 타투를 한 사람들, 타투 전문점 등을 흔하게 보게 되었는데 그 때 오히려 용감하게 타투를 하게 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는 '아, 한 때의 호기심으로 하지 않기를 천만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몸은 탄력을 잃어가고 처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그림이나 글자들은 내 몸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된다. 쭈글쭈글한 장미가 되는가 하면 불어난 몸과 함께 풍선같은 장미가 되기도 한다.

낼모레면 오십이 되는 시미는 남편과 이혼하면서 하나뿐인 아들과의 관계도 끊어졌다. 하지만 모성이란 만나지 않는다고 아들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어떻게든 아들과 연락하고 지내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같은 사무실의 화인의 뒷목에 새겨진 문신을 두고 상무가 이러쿵 저러쿵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하자 그간 삼켜왔던 말들과 함께 분노가 솟구쳤고 그녀 대신 대찬 소리를 내뱉어주었다. 그러자 화인은 그에 대한 보답이랄까, 자신이 문신을 한 문신술사의 명함을 내밀어주며 충동적으로 새긴 문신이었지만 그 이후 뭔가 자신감이 생기고 심장이 새로 뛰는 것 같았다며 시미에게도 한번 가볼 것을 권했다. 그렇게 문신술사를 방문한 시미는 흔히 생각하는 곳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고, 적지 않은 나이에 몸에 무언가를 새긴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돌아 나오고 만다. 그리고 몇 건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사건들이 발생하는데 그 중 한건의 사건의 한가운에 화인이 있었다. 회사를 대신해서 화인을 찾아갔던 시미는 화인의 뒷덜미에서 화인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주었다던 그 샐러맨더라는 문신이 사라지고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_ p. 138

시미는 다만 혼잣말 에 가까운 어조로 그렇게 물었다. 또는 어떠한 존재가 당신을 지켜주었나요. 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떤 호의와…… 얼마만 한 경멸과 때로는 악의를 만나왔기에, 자신을 지키는 부적을 온몸에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_ p. 136

상당히 짧은 분량의 이야기이고 미궁으로 빠져버린 사망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없지만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폭력들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정폭력의 대상이었던 화인의 아버지, 갑질을 일삼던 회사대표, 데이트폭력의 끝을 보여주었던 전남친 등 기이한 사건의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생전에는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가장 마지막까지 그들과 있었던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게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간절함이 심장에 수놓아졌고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 그들을 구해냈을거라는 판타지소설이다. 어쩌면 그들 모두를 구해낼 방법을 '판타지'에서 밖에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이야기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눈여겨 바라봐줄 때 세상은 판타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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