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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죽음이 언제 다가와도 이상하지 않은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에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학교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이는 나치들이 자신들이 만든 수용소가 마냥 잔인한 죽음의 수용소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품 같은 곳이었는데 비록 늘 굶주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라도 잠깐이나마 아이들이 웃고 무언가 배움이라는 것을 향해 반짝이는 눈이 있도록 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급작스럽게 챙긴 짐 안에 누군가 챙겨 넣은 책들이 나치의 눈을 피해 수용소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고, 그 책들을 모아 도서관을 운영한 사람들이 있었다. 도서관이라고 해봐야 겨우 여덟 권밖에 되지 않는 책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겉표지도 없이 너덜거리는 책이거나, 누군가는 알아볼 수도 없는 언어로 된 책인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 책을 통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배워나갔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도 있었다. 모든 배움이라는 것이 금기된 아우슈비츠에서 당연히 책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 책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안 그래도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었을까.
책은 아주 위험하다. 책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p. 18
우리가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아마도 내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편협하고도 위험한 사상들이 아마도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하고 미개한 일들을 벌였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인만이 가장 우월한 인간의 종이며, 유대인은 세상에서 멸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모든 유대인들의 가슴에 노란 별을 달게 했고, 그들을 모아놓고 살육을 벌였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과 흡사한 일들을 유대인들도 겪었기에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을 때 가슴 속에서 이는 분노는 갑절이 되고 만다. 일본인들도 조선인들에게 조선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했고, 그렇게 자신들의 말과 글을 빼앗는 것이 바로 한 민족의 정기를 꺾어 없애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아우슈비츠에서 책을 읽지 못하게 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다.
전쟁을 모티브로 한 모든 이야기들의 기본 줄거리는 우리가 벌써 다 알고 있다. 어느 나라가 전쟁을 시작했고,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아픔을 겪었으며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고, 그들을 해방을 맞았고, 누군가는 죽었다. 전쟁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끔찍하고, 그것이 남긴 상처는 전쟁이 끝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또다른 전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 속에서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있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정신적 고통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어쩌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어린 시절의 순진한 즐거움이나 기쁨 따위는 잊고 살아가고 있는 열 네살 디타는 아우슈비츠 31구역의 사서였다. 책임감이라기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지만 디타는 프레디 허쉬를 믿고 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여러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 아직 어린 디타는 자신의 믿음을 뒤흔드는 일들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 지옥같은 곳에서 인간성을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언제가 죽음이 될지 모르는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 지금 당장의 삶을 구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는 삶을 구걸하기 위해 내 이웃을 팔아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탈출을 꿈꾸고, 또 누군가는 사랑을 한다. 사랑이라는 것에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말이 아우슈비츠에서처럼 실감날 수 있을까? 나치의 군복을 입은 남자가 먹을 것을 제때 먹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 못해 비쩍 마르고 지저분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위해 선물을 가져다 주지만 그녀의 눈은 빛나지 않는다. 그것이 먹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그를 미워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나치들의 손짓 하나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 곳에서 존엄을 지키기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이 아이들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이 <닐스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만이라도, 비록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서 말하는 선생님조차 지겨워 이야기의 흐름을 바꾼다면 알아챌 정도일지라도,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들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31구역 너머 가스실에서 수천명이 죽어나가고, 누군가는 그 시체들을 구덩이에 파묻고 있고, 또 시체 태우는 냄새가 바람에 흘러나올지라도, 그 현실에 분노 밖에 느낄 수 없다해도 그들이 책과 이야기를 마주한 순간만큼은 그 현실을 잊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문화는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건 사실 빵과 물이다. 먹을 빵과 마실 물이 있으면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빵과 물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눈을 감고 상상력을 펼치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 자신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그들은 남자이고 여자지만 완전한 인간은 아니다. 얼룩말이나 사향소와 딱히 다르다 할 만한 특징이랄 게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p. 491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칼 앞에 서 있어 본 사람이라면,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 말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가진 책 한권을 내놓는다면 앞으로 수용소에서 배고프지 않게 해주겠소, 라는 말에 내놓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배고픔은 모든 것에 앞설지도 모른다. 생존에 대한 욕구 앞에서 도덕적 추락이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으로 놀랍게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강력한 이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지옥에 물들지 않고 아직도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책임감이 강했던 열 네살 디타를 떠올리면 유관순 열사가 떠오르고, 윤봉길 의사가 떠오른다.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 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다. 지금이 있도록 인간의 본성에 굴복하지 않은 전세계의 수많은 위인들에게 새삼 감사를 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