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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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사건을 겪은 후 이전의 삶을 잃은 채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브리엔. 후유증으로 기억에 문제가 있고,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잠또한 편하게 잘 수가 없다. 그런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친구들이 권해주었던 방법대로 세입자를 들였고, 의사이면서 친절하고 다정한 나이얼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늘 바쁜 나이얼에게 함께 저녁을 먹겠느냐고 제안한 이후 자연스럽게 이제 저녁식사 정도는 함께 하고 있다. 가끔 나이얼과 식사를 함께 하다보면 남들이 보기에 두 사람이 부부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성적인 긴장감이 없다 뿐이지 이런게 부부라는게 아닐까, 우리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도 흔치 않은데 하며 상상에 빠지곤 하지만 그러다 친구로 지내는 나이얼과의 관계가 흐트러질까봐 조심하게 된다. 사고 이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무슨 이유에선지 모두 다 멀어지고, 자기 인생에 1도 도움이 된 적 없던 엄마는 2년 전 췌장암으로 죽었다. 브리엔이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이 저택은 브리엔의 조부모님께서 브리엔에게 물려주신 것이고, 그 분들이 브리엔에게 남긴 유산도 제법 되지만 사고 전까지 브리엔은 자신만의 힘으로 살아가며 그 돈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어느 날 브리엔은 열쇠를 하나 배달받게 되고, 확인해본 결과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아파트 임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당한 강도사건의 범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브리엔은 자신의 신분이 도용당한 건 아닐까 의심해본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서로 가는 것을 망설이던 브리엔은 열쇠를 들고 아파트로 찾아갔다가 누군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옷장 안으로 몸을 숨긴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온 여자의 모습은 브리엔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모든 것이 브리엔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가방의 브랜드, 머리색깔, 스타일, 심지어 자동차와 듣는 음악까지도!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SNS까지 하고 있었고, 먼 가족들과도 친구를 맺고 있었다. 이 여자는 누구길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여기까지는 흔한 스릴러 소설처럼 보였다. 누군가 나의 흉내를 내고 있다. 나는 사고를 당했고, 바깥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정신적으로나 여러가지면에서 취약한 상태. 그런데 나의 집에는 나를 다정히 보살펴 주지만 그렇다고 애정관계는 아닌 세입자가 있다. 그는 믿을만 하게도 의사이며 다정하고, 친절하고 심지어 이제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여기서 경고음이 들린다. 그 남자는 믿지마, 믿을 수 없는 남자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브리엔에겐 그런 경고를 해줄 친구도 이웃도 없다. 안 그래도 취약한 브리엔을 뒤흔든 또 다른 나의 등장은 브리엔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나이얼에게 더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이얼이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당신은 브리엔이 아니라 케이트라나. 케이트는 브리엔이 질투하기까지 했었던 나이얼의 부인이다. 내가 브리엔이 아니고 케이트라니, 나이얼이 세입자가 아니고 내 남편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브리엔이라는 이 강력하고도 세세한 기억들은 다 어디서 온거지? 내가 케이트고 나이얼의 아내라면 어째서 이 기억들은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은거지? 점점 더 자신을 믿을 수가 없어서 불안해진 브리엔, 아니 케이트에게 세상 가장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나이얼은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뻔한 스토리인가 싶으면 맞아, 뻔한 스토리지 하고 오히려 생각했던 이야기를 꺼내놓고 그러다 또 뻔한 줄 알았지, 하고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스릴러물이 늘 그러하듯 숨겨진 굉장한 철학적 의미같은 건 없지만 스릴러의 미덕인 반전이라는 것이 재미를 더해준다. 보통 아주 지독한 스타일의 스릴러물들은 나쁜 놈 옆에 더 나쁜 놈이 있게 마련인데 <내가 너였을 때>에는 그런 지독한 더 나쁜 놈은 없었다. <우먼 인 윈도>의 주인공처럼 사고 때문에 바깥 생활을 주저하는 주인공이지만 브리엔은 <우먼 인 윈도>의 그녀보다 훨씬 자제력이 있고 용감했다. 내가 더 선호하는 스타일의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또다른 베스트셀러라는 <훔쳐보는 여자>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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