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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좌파 : 세 번째 이야기
김규항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를 피한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라느니 '코드'라느니 '스탠스'라느니 하는 말로 둘러대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심을 숨기기 위해 말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 그 단어들, '진보적'이니, '보수적'이니, '좌'니' '우'니 기타 등등 여러 현란한 '가치'들, 이것이 각자가 의미하는 바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단어들은 단지 나와 너를 가르고, 내가 너를 이기려고 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없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뱉어내는 이 말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며, 따라서 상대방과 이야기를 통해 내 견해가 수용될 수도, 설득당할 수도, 조정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말이 다시 내 생각과 같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김규항이라는 사람은 여지껏, 자기가 뱉어내는 말이 곧 자기가 생각하는 바와 같음을 삶으로 입증해 왔고, 하여, 이 당연한 것을 실천하였으므로, 존중받아야 한다.
남을 속이기 위한, 혹은 더 가련하게도, 심지어 자신을 속이면서도, 자신이 속는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지식인, 인 척 하는 사람들, 가운데 김규항의 글은 빛난다.
인상적인 부분들
개혁이란 "사회문화적 표피를 변화시키지만 경제 질서와 계급 관계라는 본질은 끝없이 후퇴시킨다"는 내 의견 (28쪽) ;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전문가들(혹은 직업인)력에 의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늘 같아 보이는 가운데, 사실 더 나은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언론의,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있지만, 사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그것이 '전문성'의 외피로 감춰져 있기에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개혁이라는 것은 개혁'주의자' 혹은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 전제에서, 이것이 경제 질서와 계급 관계라는 본질을 끝없이 후퇴시킨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 문장의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을 하라면, 용기를 내어, 답을 유보하는 쪽을 택하겠다.
회개란 교회에 안 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36쪽) ; 예수와 교회에 대한 김규항의 통찰은 단호하고, 인상적이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주류 사회의 가치관에 오염되어 있으며 그 오염된 가치관으로 다시 우리의 운동을 평가하곤 합니다. (중략) 운동의 성과나 전망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진보성입니다. (46쪽) ; 어디 '운동'에 한정되는 것이겠나. 세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을, 가시적 성과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배움을 구부려 세상에 아부하는 것의 시작이다.
주사파가 문제인 건 그들이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시하거나 마르크스보다 김일성을 위대학 여겨서가 아니다. (중략) 주사파가 문제인 건 그들이 남한 인민도 북한 인민도 아닌 북한 정권을 무작정 따르기 때문이다. (97쪽) ; 여기서 밑줄그어야 할 단어는 '무작정'이다.
옛날엔 보수적인 부모도 "동무들과 서로 돕고 양보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라고 가르쳐다. 그러나 이젠 진보적이라는 부모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중략) 보수와 진보가 한 몸이 된 이 미친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공멸'뿐이다. (111-113쪽) ; 디스토피아, 머지 않아 현실이 될.
천황제의 특징은 천황을 신처럼 떠받들면서도 정작 천황이 누구인가는 상관이 없다는 데 있다. 일본 천황이 누군지도 모르는 한국인이 영락없이 천황제의 신봉자처럼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 안의 천황제는 아주 많다. (150쪽) ; 여기에서 역시 밑줄그어야 할 단어는 '누군지도 모르는'이 되겠다. '맹목성'이 사람을 망친다.
아이들은 연예인이 자유롭고 편안하면서도 물질적으로 아주 잘 나가는, 근사한 삶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194쪽) ; 혹은 '열심히 할 ' 대상을 잃은 아이들에게 몇 안 되는 성공 모델이어서일 수도 있다.
현실사회주의가 패망한 건 그게 사회주의라서가 아니라 전제정이었기 때문이다. (198쪽) ; 동의.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유주의를 참칭하며 폭주하는 어떤 체제가 전제정으로 치닫는다면 이에 반대하여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 어려운 문제는, 사회주의는 전제정으로 치닫을 만한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지적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이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사교육 사업의 주역들은 모조리 386 운동권 출신들이다. (215쪽) ; 어렵지 않게 돈을 벌어, 그 돈을 조롱한다. 가슴 아픈 역설.
세상의 모든 시위는 결례다. (259쪽) ; '때문에 그 제한에 한계가 없다'고 말해서도 안 되며, '때문에 그 결례에 한계가 없어도 된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나는 그들이 인민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기 전에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언제나 인민에게서 '기자님', 'PD님'이라 불리는 그들은 정작 인민에게 뭘 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278쪽) ; 스스로 사회적 강자임에도 약자들의 도움을 구하려면, 자신이 강했을 때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어야 한다.
그 아이들은 정말 앞선 걸까? 부자 부모 덕에 우리 아이들을 따를 수 없이 앞서가는 그 아이들은 정말 '인생에서도' 앞선 걸까? (305쪽) ; 감정을 제거하고, 학문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조기에 나가는 것이 더 많이 가는 것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사회가 이상한 열기에 휩싸여 있다.
인텔리들은 뭐가 옳은가를 해명하느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경향이 있다. (327쪽) ; 아프다.
예수는 그런 모든 면들을 뒤섞거나 절충한 인물이 아니라 그런 모든 면들이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다. (327쪽) ; 이해하기 어렵나? 물리학의 '차원'으로 설명하면 조금 더 쉬울 수도.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고독하다. (372쪽) ; 어디선가 김훈이 같은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이 사이가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냄새가 날 것 같다. 같이 자전거를 타면서 놀면 친해질 수도.
그가 말하는 '교육 문제'란 실은 '대입 문제'를 뜻한다. (389쪽) ; '교육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어설프게 수련한 사람들일수록 현실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색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략) 눈에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략) 예수와 석가가 인민 속에서 중생 속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건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418쪽) ; 동감
갈수록 책을 책으로만 읽는 이들이 많아져 걱정이다. (중략) 제 지식과 정보를 모조리 긁어모아 피상적인 리뷰를 교환하는 인터넷 시대의 애서가들 (중략) 그들이 '김규항의 신간'에 기대하는 건 '자극과 카타르시스'다. (493쪽) ; 미안합니다. 자극과 카타르시스에 머무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