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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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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여배우 [나카마 유키에]가 재일 한국인으로 나온다는 설정인 일본 드라마 [동경만경] 의 원작소설이지만, 주인공은 평범한 일본 남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메일로 알게 된 미오와 료스케의 사랑은 서걱서걱하고 건조한 모래처럼 쌓입니다. 물을 흘려보내도 젖어들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서로의 손을 쥐고는 있지만, 쉽게 서로를 바라보지는 못하는 미오와 료스케. 진정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남녀 주인공을 작가는 아름다운 동경만을 배경으로 건조하면서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까 야오야마 호타루 소설, 이번 달부터 한동안 연재를 쉬는 거 같더라."

그렇게 말하며 요시노가 잡지를 미오 가슴 쪽으로 들이밀었다.

"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갑자기 쓸 수 없게 됐나봐. 사과의 글이 실려있었어. '나는 아직 상처가 없다', 분명히 그런 말이 써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상처가 없다.' 상처가 없으면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상처받기가 두려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미오와 료스케. 끝 무렵에 실려있는 이 문장은 두 사람에게 보내는 메세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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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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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터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길어서 마지막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희미한 빛을 의지하며 천천히 걷습니다.   때로는 멈추기도 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합니다.  소리내어 불러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저 끝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보고 싶은 걸까요. 영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의 먼지 날리는 바닥에는 우리가 걷고 넘어지고 달려왔던 무수한 신발자국들이 박혀있습니다.  하츠 역시 그 발자국들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의문 하나. 어째서 그 발자국들은 이리도 닮아 있을까요. 모두들 이리저리 맞춰보면 꼭 들어맞을 것만 같은 그런 모양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츠의 발과 니나가와의 발.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모두의 시간들은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이상하리만치 닮아있습니다. 벌써 저 멀리 사라져가는(이미 사라졌을) 기억을 불러내서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바라봅니다. 그러면 사락사락 넘어간 책장의 마지막 귀퉁이에서는 너무나 눈부시고 그리운 시간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부끄러울 정도로 빛을 발하며 박혀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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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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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에쿠니 가오리씨의 책들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겨울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한없이 고요하고 냉정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차가워 오히려 청량감마저 선사합니다. 리카와 다케오가 마시던 세븐업처럼.

<낙하하는 저녁>은 이러한 선선함과 어쩌면, 조금은 냉정한 마음들이 스며있습니다. 리카, 다케오, 하나코는 가늘고 연약한 실을 나눠가지고 있습니다. 각자 손에 쥐고 있는 실은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들을 꽁꽁 묶습니다. 리카는 다케오를, 다케오는 하나코를, 하나코는 스스로를 말입니다. 집착하고 싶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벗어나고 싶은 마음들은 무채색의 담담함으로 차분하게 탄생하고, 이어지고, 소멸합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고요해서, 아주 작은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다는 기분마저 듭니다. 청결하고, 조금은 복잡한 눈물을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녁에 냉철해진다는 에쿠니씨처럼, 낙하하는 저녁, 리카와 다케오는 한층 냉철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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