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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어두운 터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길어서 마지막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희미한 빛을 의지하며 천천히 걷습니다. 때로는 멈추기도 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합니다. 소리내어 불러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저 끝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보고 싶은 걸까요. 영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의 먼지 날리는 바닥에는 우리가 걷고 넘어지고 달려왔던 무수한 신발자국들이 박혀있습니다. 하츠 역시 그 발자국들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의문 하나. 어째서 그 발자국들은 이리도 닮아 있을까요. 모두들 이리저리 맞춰보면 꼭 들어맞을 것만 같은 그런 모양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츠의 발과 니나가와의 발.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모두의 시간들은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이상하리만치 닮아있습니다. 벌써 저 멀리 사라져가는(이미 사라졌을) 기억을 불러내서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바라봅니다. 그러면 사락사락 넘어간 책장의 마지막 귀퉁이에서는 너무나 눈부시고 그리운 시간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부끄러울 정도로 빛을 발하며 박혀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