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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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제목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는 20세기 초엽 미국의 여류 혁명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말을 조금씩 변형시켜 엠마 골드만은 대중연설과 저술 등에서 자주 사용했다는데, 책의 저자인 최세진이 자신의 책의 제목으로 또 한 번 사용하였다.

이 말은 혁명이라는 거대담론 앞에서 구체적 삶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의미이다. 혁명과 같은 거대서사 앞에 내가 놓일 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희생되고 소멸된다면 혁명마저도 나의 것은 아니고 "너희들"의 것이라는 발언이다. 그건 마치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파시즘만큼이나 의미가 없고 그런 혁명에는 동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최세진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노동단체 <노동자의 힘>의 기관지에 "세상야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에 자료를 보충하고 글을 다듬어 내놓은 책이다.사회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사회운동의 전통과 역사를 주로 "문화"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알리고 전달하는 책이다.

저자 최세진은 경력이 특이한데,책에 소개된 약력을 보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으로 일했다.남미의 혁명을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머무른 뒤 현재 민주노총을 그만두고 토론토에서 다시 남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되어있다.노동운동가,정보통신활동가에서 국제연대주의자로 이동중인 것 같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는 연재글의 모음집답게 짧은 글들이 엮어져 있는 형식인데, "1부 만국의 로봇이여 단결하라"의 대중문화에 관한글, "2부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가 되겠다"의 위대한 현대 좌파인물에 대한 글, "3부 힘내라 바퀴벌레"의 남미,일제시대,80년대의 운동/혁명 이야기, "4부 인터넷 광장"의 인터넷의 사회변혁적 역할에 대한 글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글은 진보적인 것을 떠나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하다. 1부의 글에서는 다양한 게임,SF문학,영화,해킹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요즘 10,20대가 많이 즐기는 문화상품들,문화현상들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이라는 것이 개인의 인간성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전쟁친화적 인간을 어떻게 양산하는 지 좌파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반면, 핵티비즘을 소개하면서 IT의 정치적 의미와 운동적 위치를 설명하기도 한다.

2부에서는 바그너,쇼스타코비치,마야코프스키,조지오웰,존 레논,피카소,미야자키 하야오,첨바왐바가 소개되는데, 고급예술에서부터 대중예술의 아이콘까지 아우르면서 그 정치적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책의 부제인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이라는 말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뒷얘기들을 다루고 있다.흥미롭게 읽으면서 사회진보를 위한 투쟁사를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3부는 체 게바라의 쿠바,멕시코 등 남미의 혁명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미국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남미라는 특수한 지리적,역사적 조건을 배경으로 전개된 혁명의 이야기,현대에 와서 상품화되기까지 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 등을 다루고 있다.이미지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설득은 자본과 진보진영이 동시에 채택하고 있는 전투전략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4부는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인터넷을 매개로 발생한 주요사건들의 전개과정과 의미를 정말 잘 정리하고 있는데,효순이 미선이 사건,노사모,안티조선운동,2002년 월드컵과 붉은악마 등의 소재가 다뤄졌다.그리고,시간적으로 이전인 PC통신시절의 소사들도 취급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알려진 인터넷이 그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자본을 위해 작동하고, 자본에 독점과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인터넷은 흔히 그리스 시대의 광장(아고라:agora)에 비유되어 직접민주주의의 장이거나 완전경쟁이 작동하는 시장(market)정도로 많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소수의 자본이 "연단"과 "마이크"를 장악한고 대중집회장과 같아서 그 운영과 시스템이 민주적으로 되도록 우리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의 저자 최세진은 젊은 운동가다. 아마 30대 초중반 정도로 추측이 되는데 책을 읽다보면 진보와 사회변혁에 대한 관심못지 않게 감각과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기존 운동방식의 폐쇄성과 한계를 에둘러서 비판을 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도하고 선전선동하고 훈육하여 운동인자로 대중들을 양성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파시스트/수구보수주의자들의 방법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대중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대중운동/혁명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중들은 선전선동의 대상이 아니다.내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다면 그건 운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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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유로 세대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알레산드로 리마싸 지음, 김효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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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유로(千euro)면 우리돈으로 얼마쯤 될까? 포털사이트에 조회해보니 2006년 10월 27일 오후 1시 35분 기준으로 120만3070원이라고 한다.

천유로세대란 2000년대를 살아가는 유럽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한달 평균 10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살아가는 유럽의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600만 청년들을 가리키는 단어다. 고용상태도 정규직이 아니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 또는 알바들이다.

유럽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몰아친 후 젊은이들의 고용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60~70년대에는 기존의 권위에 대해 반항하며 데모와 시위를 하고, 코카인과 섹스를 탐닉하는 대학시절을 보내도 직장과 연금이 보장되고, 기성질서로의 안정적인 편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80~90년대와 밀레니엄을 거친 지금은 후진 정규직 일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책 <천유로세대>는 시작된다.

밀라노의 다국적 IT회사의 마케팅부 어카운턴트인 클라우디오는 룸메이트 로셀라, 알레시오, 마테오와 함께 살고 있다. 월 1000유로 정도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집을 구할 수가 없어서 공동취사를 하는 것이다.

클라우디오의 경우 하루 12시간 넘게 일을 하지만 월수입은 1050유로정도다. 대학을 졸업했고 27살이지만 불법취업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이만한 자리에 이른 것이다.

월수입 1000유로는 방세 400유로, 각종 세금 100유로, 한 달치 장 보는 데 200유로, 휴대전화카드 50유로, 교통비 50유로, 피자 값, 영화, 기타 등등 200유로로 사용된다. 병원에 갈 돈이 없기 때문에 아프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은 클라우디오의 생활철칙이다.

클라우디오는 부유한 집안출신의 애인이 있지만 그녀의 변덕과 소득상의 격차로 인해 늘 고민한다. 회사에서는 제법 실력을 인정받아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스페인 출장도 가지만 소득은 늘 그대로고, 승진은 고사하고 재계약이나 될지 늘 전전긍긍한다.

룸메이트인 로셀라는 아직도 미취업상태로 베이비시터나 거리에 전단지 붙이기 등의 알바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로셀라의 월수입은 가장 많을 때가 750유로정도다. 이력서를 하도 많이 제출해서 이력서 작성이 특기이자 취미가 돼버렸다.

알레시오는 우체국의 정규직 일자리를 잡은 30대지만 소득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고, 프리랜서로 영화잡지 기자생활을 하며 영화시사회 참석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고 있는데 여자에게는 관심도 없는 고민 많은 젊은이다.

마테오는 아직 대학생이다. 하지만 집에서 정기적으로 붙여주는 용돈이 있어서 함께 생활하는 4명 중 소득수준은 가장 높다. 공부보다는 주말이면 클럽에서 밤을 지새우며 여재애들과 시시덕거리는 것과 휘트니스클럽에서 몸을 다듬는 데 더 관심 있다. 참 한심한 청춘이다.

<천유로세대>는 클라우디오의 시점에서 룸메이트, 회사동료들 그리고 회사와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유럽에서는 포스트펑크 소설로 불릴 정도의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서술로 인해 부담이 없다.

<천유로세대>는 2005년 12월 프리랜서 기자인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와 알레산드로 리마사가 인터넷 홈페이지(www.generazione1000.com)에 무료로 올린 소설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고. 이후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가디언>등 유럽 언론이 앞 다퉈 소개했고, 현재는 영화제작에도 들어간 상태라고 한다.

두 저자는 판권 등으로 제법 수입이 생기고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자신들도 아직 "천유로세대"의 범주에 든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아직 20대인 저자들은 1000유로내외의 월소득으로 생활을 하며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천유로세대>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초 정부가 최초고용계약(CPE) 법안을 내놓으면서 '신입사원 채용 후 2년 이내에 해고할 수 있다'고 발표해 젊은이들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 <천유로세대>의 배경인 이탈리아는 무급으로 몇 개월씩 젊은이들을 부려먹고 해고하는 관행이 뿌리 깊어 항의시위가 끊임없다고 한다.

한국 대졸백수도 100만에 이른다. 대학을 겨우 졸업한 많은 청년들이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를 못 잡고 알바와 계약직을 전전하거나 고시생 대열에 합세해 학원가와 고시촌을 서성이고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외환위기의 강풍이 휩쓸고 간 우리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자 현실이다.

나날이 진행되는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양극화를 넘어 직업선택마저 양극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천유로가 아닌 만유로, 십만유로 세대가 등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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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 예술가 뒤러 1
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임산 옮김 / 한길아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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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미술세계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글로 읽기 보다는 눈으로 감상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술의 세계를 활자로 얼마나 표현하고 묘사할 수 있을까? 문학과 미술이 다른 쟝르이듯, 기사도 미술과는 너무나 다른 표현매체이다. 아무리 잘 써도 직접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의 저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생존했다면 향년 93세가될 독일 하노버 태생의 세계적인 미술학자이자 미술사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였고,<인문주의 예술가 뒤러>도 1943년 미국에서 출판된 책이다. 미술서적 중에서는 고전중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미술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기에는 조금 무리도 있어 보이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정도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꼭 뒤러의 미술세계를 개괄하고 싶지 않다면 1쪽부터 차곡차곡 읽어나갈 것이 아니라 죽 넘기면서 그림을 먼저 보고 관련해설을 읽어보는 것도 효율적인 독서법일 것 같다. 중세와 르네상스,기독교,미술기법 등에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죽 읽어나가는 독법은 조금 지겨울 수도 있다.

뒤러는 1471년 독일 뉘른베르크생으로 1528년에 사망하였고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얻고있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유럽 등 서구에서는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와 동등한 대접을 받는 화가이다.

뒤러는 직접 회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당대의 미술품 제작관습에 따라 공방작업을 통하여 수많은 목판화, 동판화 작품을 남겼고, 판화의 밑그림이 되는 흑백소묘도 다수 남겼다.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라는 평가에 걸맞는 미술이론 서적도 많이 남긴 유능한 미술이론가이기도 하다. 유채화 약 100점,목판화 350점,동판화 100점,소묘 900점을 남겼다.

뒤러는 1498년 목판의 연작 <묵시록>,<대수난>을 작업하였고,1504년 최초의 인체비례의 수작 <아담과 이브>를 제작했다.1505년 <장미관의 성모>,<젊은 베네치아의 여인>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그 후1511년경까지는 <만성도(萬聖圖)>등 종교화의 대작을 몇 점 제작했다.1513∼1514년 동판화의 3대 걸작 <기사(騎士) ·죽음 ·악마>,<서재의 성(聖) 히에로니무스>,<멜랑콜리아>를 발표했다.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의 위상과 미술세계

▲ 뒤러의 <멜랑꼬리아(우울)>,판화라고 믿기어려울 정도의 세밀함은 뒤러 작품의 최대 강점이다.
첫째, 뒤러는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이다. 뒤러의 초기작품은 중세적 기독교 신앙을 배경과 소재로 하여 제작되었다.그래서 뒤러의 초기 작품은 그리스도의 수난,만찬 등의 소재, 중세미신적인 소재가 많다. 하지만 후기로 가면서 당대 종교개혁의 기수 루터에 의한 사상적 영향으로 미술소재적인 측면에서 중세를 탈피하는 듯한 변화가 생기고,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원근법과 인체비례법을을 익혀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 특히 뒤러는 원근법과 인체비례에 관한 미술이론서적도 남겼다.

둘째, 뒤러의 작품은 당대의 공방작업적 제작관습을 반영하고 있다. 당대의 거물 미술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뒤러도 공방을 통한 일종의 집단창작시스템을 운영했다. 특히 뒤러의 작품은 판화가 많은 이유로 뒤러가 밑그림을 은필소묘하면 그의 제자들이 판화를 새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직접 동판,목판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요즘의 만화제작공방과 시스템적으로 유사점이 있다. 미술이 순전히 개인적인 고뇌와 창작의 소산으로 떠오른 것은 역사상으로 훨씬 이후의 일이다.

셋째, 뒤러의 미술세계는 당대의 문화적,사회적인 영향아래 놓여있다. 중세와 르네상스기 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뒤러의 미술세계 역시 침윤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재와 주제적인 측면에서 뒤러 작품의 70%는 기독교적인 것이고, 그 나머지는 르네상스기에 부흥한 그리스,로마고전적 소재들이다. 가령 헤라클레스나 포세이돈 같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이 소재로 채택되었다. 그 외에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과 같은 고대의 사상가들에게서 영향받은 작품들도 다수 있다.

넷째, 뒤러 작품의 물질적,테크닉적 측면이다. 뒤러는 색채에는 감각이 없는 인물로 평가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색을 사용하지 않는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 끌을 사용하여 새기고 찍어낸 흑백의 판화가 뒤러 작품세계의 정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판화인 탓에 여러 점을 찍은 경우도 많아서 상대적으로 많은 작품이 남아있다. 한편, 르네상스기로 들어가면서 많은 미술가들처럼 뒤러도 인체비례와 원근을 측량하는 도구들을 많이 사용하였고, 당대의 기하학과 수학에도 능통하였다.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는 쉽게 읽을 수 잇는 가벼운 읽을거리는 아니다. 이번에 한길아트에서 독자가 쉽게 접근하도록 책의 판형을 줄여서 출간을 하였지만 여전히 담은 내용은 상당히 전문적이고 묵직하다. 그러나, 판형을 줄였다고 책에 담은 작품들의 감상성이 훼손된 것은 아니다. 워낙에 주요작품이 흑백의 판화라서 책이 칼라인쇄가 아닌 점에도 작품의 감상성은 별로 영향받지 않았다. <인문주의 예술가 뒤러>는 미술대가의 작품과 그 세계에 관심이 있는 교양있는 독자라면 다가오는 추석연휴에 한번쯤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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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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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들의 선언이 있은 직후 인문학 위기론은 그 어느 때 보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한 편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통섭을 주창하는 사람도 있다. 그 두 인물은 <대담>의 두 당사자인 도정일 교수와 최재천교수이다.

신화를 품은 인문학자라 불리는 도정일 교수는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로 문학평론가를 하고 있으며,'기적의 도서관'운동과 '책읽는사회만들기'운동을 하고 있다. 공적인 일에도 활발하여 문화연대 공동대표로도 활약하고 있다. 잡지편집장,기자등의 일을 하였고,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도정일의 신화읽기>, <만인의 시학> 등의 저서가 있다.

개미를 사랑한 생물학자라고 불리는 최재천 교수는 동물행동학의 세계적 원위자로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그는 과학을 과학자들의 폐쇄적 커뮤니티 바깥으로 끌고 나온 귀한 학자 중의 하나로 개미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성 곤충과 거미,까치,조랑말 등의 사회구조와 성의 행태를 연구하였다. <곤충과 거미류의 사회 행동과 진화>,<개미 제국의 발전>,<열대예찬> 등의 저서가 있다.

<대담>은 두 교수가 2005년까지 벌인 10 차례의 대담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2005년 후반부에 벌어진 황우석 신화의 붕괴에 따른 내용들은 실지 못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해서는 2004년의 황우석 교수의 인간 배아 복제 성공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으서 아쉬운 점은 있으나,<대담>에서는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이후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된 생명공학(BT, Biotechnokogy)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도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대담>은 주요 테마별로 13개의 장으로 꾸며져 있다. 두 교수가 대담을 한 기록이지만 사실상 대담을 주도한 것은 도정일 교수였고, 최재천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같은 테마를 부차적으로 해석해 나가고 있다.

<대담>에서 최재천 교수는 이학전공의 교수답게 인문학의 거봉인 프로이트를 시효폐기된 인물로 평가하여 관심을 끌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비과학이며 더구나 프로이트적인 정신요법에 의한 환자치료는 위험하기 까지하다고 예를 들며 주장한다.

그러나, 도정일 교수는 신화와 프로이트의 현재적 의의를 주장하며 프로이트와 라깡 심리학이 여전히 인간을 해명하는데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두 교수의 프로이트를 둘러싼 의견대립은 결국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호간의 지적 배경의 차이를 인정하는 선에서 봉합된다. 그러나, 독자에게 주요한 것은 그 결론이 아니라 두 교수의 대담 전개에서 등장하는 풍요로운 인문학과 자연과학적 사유와 논거들이다. 흥미로우며 유익한 이야기들!!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은 도정일 교수의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이다. 사회생물학이 가진 역사적인 오류들, 즉 인종론과 성차별에 이론적 근거를 대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사회생물학의 대가 미 하버드대 윌든교수의 수제자인 최재천 교수는 사회생물학의 역사적인 실수를 인정하나 사회생물학의 진면목은 다르다고 해명을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해설들은 어려워 보이기만 하는 자연과학에 대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돋군다.

도정일 교수와 최재천 교수는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도정일 교수는 기독교 신화가 가지는 윤리적 의미는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기독교가 행한 야만을 비판하고, 최재천 교수는 창조론과 창조론의 뉴버전인 지적설계론의 비과학성을 논박한다.

<대담>의 마지막 장은 21세기형 인간인 호모 심비우스의 도래로 의견이 취합되며 마무리 된다. 세계화의 시대에 인류가 고독한 밀실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공생의 축제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마무리 되는 것이다. 단지 인간만을 위한 지구가 아니라 엄연히 수억종의 동식물이 공존하는 지구를 보호하는 것이 인류의 진정한 윤리적 의무라는 것이다.

<대담>은 두 지식인의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보기드문 대담체의 책이고, 풍요로운 지식의 책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패러다임, 그리고 두 패러다임의 통섭을 꿈꾸어 보는 자라면 한 번 쯤 읽어 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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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 레비나스의 철학 현대의 지성 122
강영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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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강영안 교수가 레비나스의 철학세계를 비교적 쉽게 그러나, 전문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주체와 타자을 둘러싼 레비나스의 철학적 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레비나스의 철학에도 다른 철학과 사유처럼 학문적 엄격함과 권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레비나스 철학의 가장 큰 매력은 그 근저에 흐르는 노철학자의 인간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레비나스는, 러시아 문학과 히브리어 성경, 프랑스 철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베르그손, 그리고 20세기 초반 가장 혁신적인 사상가였던 독일 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를 읽으면서 자신의 철학 사상을 정립했다. 그는 초기에는 현상학자로 활동했으나, 이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무한을 향한 초월적 욕망을 밝혀냄으로써 현대철학의 가장 대담한 입장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1995년 12월 25일에 사망했다. 사랑과 대속의 철학자답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던 눈 내리던 날에 이 땅을 떠났다. 그 당시 <타인의 얼굴>의 저자 강영안 교수는 레비나스와 인터뷰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터뷰를 놓쳤다고 회고하고 있다. 하이데거 등과 함께 현대를 대표하는 한 철학자가 20세기가 기우는 시점에서 세상을 등진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한 전통적 논점은 주체와 타자,전체와 존재,향유,그리스도와 대속 등 몇 가지의 키워드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전공자도 아닌 입장에서 레비나스 철학세계를 다 분석,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단지 레비나스 철학세계에 대하여 인상적이였던 몇 가지만 간단히 적는다. 전체적인 큰 그림과 세세한 짜임에 대해서는 관심있는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첫째, 레비나스 철학의 제 1주제는 주체와 타자이다. 특히 기존의 주체를 중심으로한 서양철학의 전통에 타자의 존재에 주목하였고, '타자의 얼굴의 현현'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병자,과부,핍박받는자,고아들에게 우리의 몫을 내어놓고 사랑을 베풀 것을 레비나스는 말한다. 이들이 레비나스의 타자이며, 그들의 우리의 삶에의 등장이 바로 '타자의 얼굴의 현현'이다.

둘째, 레비나스는 '존재'로 대표되는 서양철학의 전체성의 전통에 반대를 하였다.존재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전체성보다는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것들을 존중하였다. 자신이 사는 구체적 삶들을 '향유'하기를 말하였다. 그래서 레비나스에게는 사랑은 물론 성과 생활도 철학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묵직한 것'들만을 소재로 잡는 전통에서 이탈하여 '여성적인 것','소소한 것','하찮은 것'도 레비나스에게는 철학의 중요한 소재가 된 것이다.

셌째, 레비나스는 삶의 소재를 철학의 주제로 선택하였다. 각각 독립적인 주제이기도 한 여성,집,출산성,에로스,노동,향유 등은 레비나스 철학의 중요한 범주로 서로 망처럼 얽혀 있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물론 정교한 철학의 언어를 빌렸지만 결코 우리의 삶과 생활에서 동떨어지지 않은 철학을 하였다. 삶과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켰다.

넸째, 레비나스의 철학에서 잊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그의 철학은 대단히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의 철학이 서양철학의 윤리철학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독교 사상과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통과 대속이라는 범주를 다룬다. 이 점은 하이데거와는 다분히 차별적인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원형으로 하여 인간의 구원에 대한 전망을 하고 있다.

레비나스의 이름 엠마누엘은 우리가 익히 아는 철학의 시조 칸트와도 우연히 이름이 같다. 엠마누엘(Emmanuyl)은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흔한 이름이며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신다"는 뜻이다. 정말 사랑의 철학자다운 이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시어 만인에게 평화와 행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라는 것이 레비나스 철학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늦게 알게 된 레비나스의 부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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