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유로 세대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알레산드로 리마싸 지음, 김효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천유로(千euro)면 우리돈으로 얼마쯤 될까? 포털사이트에 조회해보니 2006년 10월 27일 오후 1시 35분 기준으로 120만3070원이라고 한다.

천유로세대란 2000년대를 살아가는 유럽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한달 평균 10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살아가는 유럽의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600만 청년들을 가리키는 단어다. 고용상태도 정규직이 아니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 또는 알바들이다.

유럽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몰아친 후 젊은이들의 고용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60~70년대에는 기존의 권위에 대해 반항하며 데모와 시위를 하고, 코카인과 섹스를 탐닉하는 대학시절을 보내도 직장과 연금이 보장되고, 기성질서로의 안정적인 편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80~90년대와 밀레니엄을 거친 지금은 후진 정규직 일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책 <천유로세대>는 시작된다.

밀라노의 다국적 IT회사의 마케팅부 어카운턴트인 클라우디오는 룸메이트 로셀라, 알레시오, 마테오와 함께 살고 있다. 월 1000유로 정도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집을 구할 수가 없어서 공동취사를 하는 것이다.

클라우디오의 경우 하루 12시간 넘게 일을 하지만 월수입은 1050유로정도다. 대학을 졸업했고 27살이지만 불법취업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이만한 자리에 이른 것이다.

월수입 1000유로는 방세 400유로, 각종 세금 100유로, 한 달치 장 보는 데 200유로, 휴대전화카드 50유로, 교통비 50유로, 피자 값, 영화, 기타 등등 200유로로 사용된다. 병원에 갈 돈이 없기 때문에 아프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은 클라우디오의 생활철칙이다.

클라우디오는 부유한 집안출신의 애인이 있지만 그녀의 변덕과 소득상의 격차로 인해 늘 고민한다. 회사에서는 제법 실력을 인정받아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스페인 출장도 가지만 소득은 늘 그대로고, 승진은 고사하고 재계약이나 될지 늘 전전긍긍한다.

룸메이트인 로셀라는 아직도 미취업상태로 베이비시터나 거리에 전단지 붙이기 등의 알바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로셀라의 월수입은 가장 많을 때가 750유로정도다. 이력서를 하도 많이 제출해서 이력서 작성이 특기이자 취미가 돼버렸다.

알레시오는 우체국의 정규직 일자리를 잡은 30대지만 소득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고, 프리랜서로 영화잡지 기자생활을 하며 영화시사회 참석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고 있는데 여자에게는 관심도 없는 고민 많은 젊은이다.

마테오는 아직 대학생이다. 하지만 집에서 정기적으로 붙여주는 용돈이 있어서 함께 생활하는 4명 중 소득수준은 가장 높다. 공부보다는 주말이면 클럽에서 밤을 지새우며 여재애들과 시시덕거리는 것과 휘트니스클럽에서 몸을 다듬는 데 더 관심 있다. 참 한심한 청춘이다.

<천유로세대>는 클라우디오의 시점에서 룸메이트, 회사동료들 그리고 회사와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유럽에서는 포스트펑크 소설로 불릴 정도의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서술로 인해 부담이 없다.

<천유로세대>는 2005년 12월 프리랜서 기자인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와 알레산드로 리마사가 인터넷 홈페이지(www.generazione1000.com)에 무료로 올린 소설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고. 이후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가디언>등 유럽 언론이 앞 다퉈 소개했고, 현재는 영화제작에도 들어간 상태라고 한다.

두 저자는 판권 등으로 제법 수입이 생기고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자신들도 아직 "천유로세대"의 범주에 든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아직 20대인 저자들은 1000유로내외의 월소득으로 생활을 하며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천유로세대>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초 정부가 최초고용계약(CPE) 법안을 내놓으면서 '신입사원 채용 후 2년 이내에 해고할 수 있다'고 발표해 젊은이들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 <천유로세대>의 배경인 이탈리아는 무급으로 몇 개월씩 젊은이들을 부려먹고 해고하는 관행이 뿌리 깊어 항의시위가 끊임없다고 한다.

한국 대졸백수도 100만에 이른다. 대학을 겨우 졸업한 많은 청년들이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를 못 잡고 알바와 계약직을 전전하거나 고시생 대열에 합세해 학원가와 고시촌을 서성이고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와 외환위기의 강풍이 휩쓸고 간 우리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자 현실이다.

나날이 진행되는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양극화를 넘어 직업선택마저 양극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천유로가 아닌 만유로, 십만유로 세대가 등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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