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용법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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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중순에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을 다 읽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 챕터씩 모두 99챕터를 매일 거르지 않고 읽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못 읽는 날도, 읽기를 미루는 날도 있다 보니 몰아서 읽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럴수록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읽으려 했다. 페렉은 『인생 사용법』을 침대에 엎드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염두에 두며 썼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가 사물의 세계를 편집증적으로 파고들 때 이를 제대로 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사물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이기도 하다. 페렉은 마르크스에 이어 상품의 세계로 내려간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물에서 삶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다시 인물과 사물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이야기로 빠져나가는 이 후기구조주의적 소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체스의 행마법, 그중에서도 나이트의 이동을 소설에 적용해 소설 속 공간의 배치와 서술 순서에 일관성과 변칙성을 함께 부여하는 그 기술에 놀라게 된다. 페렉은 지독한 인용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책의 말미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애거사 크리스티와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그문트 프로이트,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허먼 멜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수아 라블레, 스탕달, 쥘 베른(… 그 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있다)의 글을 차용하고 변형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이탈로 칼비노, 해리 매튜스, 레몽 크노, 자크 루보,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울리포(잠재문학작업실) 그룹의 책도 가미했다. 인용과 모방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창조를 갱신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에 경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칠백 쪽이 넘는 분량이 독자를 압도하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인생 사용법』이야말로 '지적 모험'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2015년 상반기의 책으로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가 있었다면, 비록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책이지만 지난해 하반기의 책으로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도 적게나마 책을 읽으며 보냈다. 새해에는 더욱 좋은 책을 좀 더 많이 읽으며 살고 싶다.


그렇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바로 시몽크뤼벨리에 거리 11번지의 4층과 5층 사이에서. 한 40대 여인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그녀는 스카이 천으로 된 긴 레인코트를 입었고, 장난꾸러기 작은 요정을 연상시키는 붉은색과 회색 체크무늬의 원뿔형 모자를 쓰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갈색의 커다란 잡동사니 배낭을 메고 있는데, 속된 표현으로 `세면도구 주머니`라 불리는 부류의 가방이다. 가방과 가방끈을 잇는 크롬으로 도금된 금속 고리 중 하나에는 작고 흰 삼베 손수건이 묶여 있다. 그리고 가방 겉면에는 스텐실로 인쇄된 듯한 세 가지 그림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하나는 커다란 추시계이고, 또 하나는 반으로 갈라진 둥근 빵이며, 나머지 하나는 손잡이가 없는 종 모양의 구리 그릇이다. - 24쪽

그녀는 왼손에 든 도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도면은 단순한 종이 한 장으로 아직 남아 있는 자국들이 그것이 사등분으로 접혀 있었음을 알려주며, 복잡한 글자들이 적힌 어떤 두꺼운 책자 위에 클립으로 고정되어 있다. 이 책자에는 그녀가 방문할 아파트와 관련한 세부적인 공동 규칙이 적혀 있다. 사실, 종이 위에는 하나가 아닌 세 개의 도면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상단의 첫번째 도면은 이 건물이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시몽크뤼벨리에 거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거리는 17구의 플렌 몽소 지역 안에서 메데리크 거리, 자댕 거리, 드 샤젤 거리, 레옹조스트 거리가 이루는 사변형의 공간을 비스듬히 가르고 있다. 왼쪽 상단에 있는 두번째 도면은 건물의 단면도로, 세대 전체의 배치를 도식화해 나타내고 있으며 몇몇 세대주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다. 건물 수위인 노셰르 부인, 3층 오른쪽 아파트에 사는 보몽 부인, 4층 왼쪽 아파트에 사는 바틀부스, 5층 왼쪽 아파트에 사는 텔레비전 방송국 프로듀서 레미 로르샤슈, 7층 왼쪽 아파트에 사는 의사 댕트빌, 그리고 지금은 비어 있는 7층 오른쪽 아파트에 죽기 전까지 살았던 장인 가스파르 윙클레. - 25쪽

가스파르 윙클레가 거의 40년간 살면서 작업했던 세 개의 작은 방에는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다. 몇몇 가구와 작은 작업대, 도림질용 전동톱, 작은 줄들은 이미 치워지고 없다. 침대와 마주한 침실 벽 창문 옆에 걸려 있던,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정사각형의 그림도 이젠 없다. 그 그림은 어떤 방 안에 있는 세 남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서 있는 두 남자는 창백하고 뚱뚱하며 긴 프록코트를 입고 마치 나사로 죄어놓은 것처럼 실크해트를 꾹 눌러 쓰고 있다. 그리고 역시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세번째 남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문가에 앉아 손가락에 꼭 맞는 새 장갑을 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 26쪽

여자는 계단을 올라간다. 머지않아 이 낡은 아파트는 두 배로 큰 거실과 더 넓은 방을 갖춘, 안락하고 전망 좋으며 조용하고 근사한 집이 될 것이다. 가스파르 윙클레는 지금 죽고 없지만, 그가 그토록 참을성 있게, 그토록 면밀하게 꾸며온 오랜 복수는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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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시스템 1800.1900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11
프리드리히 키틀러 지음, 윤원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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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키틀러의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를 읽고 비록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기술과 전쟁 그리고 재현 사이의 연합과 길항을 그렇게 생생하고 도발적으로 보여주는 강의라니. 이제 그의 주저인 『기록시스템 1800·1900』을 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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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정치란 무엇인가 - 푸코에서 생명자본까지 현대 정치의 수수께끼를 밝힌다 프리즘 총서 21
토마스 렘케 지음, 심성보 옮김 / 그린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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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지식장에서 생명정치와 생명권력은 어떻게 수용되고 재해석되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는 개론서. 사상과 개념의 여행을 따라가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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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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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렸다. 책 만든 이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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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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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자본』을 다 읽었다. 피케티는 부와 자본을 동의어로 간주하고 '이자 낳는 자본'을 자본의 속성으로 본다. 그건 피케티 연구의 핵심적인 고리이자 가장 논쟁적인 지점이다(한편 주류경제학자들은 주로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해석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관점을 논외로 하고, 18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시계열 자료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는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으로, 즉 사회공학(국가공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으로 전환하고자 하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시계열 연구를 제안한다.


  피케티는 '미완의 혁명'으로서의 프랑스혁명을 '세금혁명'으로 완수하려 한다. 프랑스혁명의 이념인 자유·평등·박애에도 프랑스혁명의 결과인 근대국가에서의 불평등은 완전히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자본이 붕괴된 이후의 '영광의 30년'(2차대전 종전 후~1970년대 말)은 지극히 예외적인 시기다. 피케티의 강점은 자본은 본질적으로 축적을 멈추지 않고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의 본성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상당수 경제학자가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그라는 점에서 볼 때 피케티가 좀더 정직해 보이는 건 이 지점에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21세기가 19세기 말~20세기 초와 같은 극단적인 불평등의 시대('벨 에포크')로 회귀할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절반쯤 있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피케티의 고민은 또다시 전쟁이라는 외부의 충격 없이 어떻게 불평등을 감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정말로, 우리는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피케티는 '사회적 국가'(국민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와 누진적 소득세·상속세, 글로벌 자본세와 같은 장치를 제안한다(여담으로, 피케티는 프랑스의 불평등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피에르 로장발롱의 저작을 비교적 자주, 로베르 카스텔의 저작을 한번 미주에 언급한다). 그리고 글로벌 자본세를 계기로 유로존 예산회의 같은 형태의 민주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현재의 그리스 위기도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당 우파 정도의 정치적 포지션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올랑드 정부의 행태로 보았을 때는 현 정부보다 좀더 왼쪽을 향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21세기 자본』의 설득력은 피케티가 동원하고 활용하는, 방대한 자료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는 가히 '기록하는 국가'이고 프랑스 국민은 '기록하는 국민(민족)'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프랑스라는 국가는 거대한 기록보관소인 셈이다. 미셸 푸코와 동료들이 『나, 피에르 리비에르』 같은 책을 낼 수 있는 배경이 되겠다. 


  1820년대부터 상속과 기부의 연간 총액에 관해 상세한 통계자료를 발표하기 시작한 정부는 1901년에 부동산 규모에 따라 다양한 통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이 자료는 연령, 부동산의 규모, 재산 유형 등에 기초한 교차 분석과 함께 점점 더 정교해졌다. 1970~1980년 이후에는 특정 연도의 상속세와 증여세 기록의 대표적인 표본을 포함하고 있는 디지털 파일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데이터를 2000~2010년까지 확장할 수 있다. 나는 세무당국이 지난 두 세기 동안 직접 만든 풍부한 자료에 더해 포스텔비네, 로장탈과 함께 수만 건의 개인 신고서들을 수집했다. 이것들은 19세기 초부터 국가와 각 부서의 문서보관소에 아주 신중하게 보관되어왔다. 이는 1800~1810년부터 2000~2010년까지 10년 단위로 대표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체로 프랑스의 공증 기록들은 지난 두 세기 동안의 부의 축적과 분배를 이례적일 정도로 풍부하고 상세히 보여준다. (406~407쪽)


  예컨대 1789~1790년 혁명의회가 최초로 취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왕실 정부가 다양한 개인에게 지급한 금액(부채 상환액, 전임 관료들의 연금 및 노골적인 지원도 포함)과 그들의 이름의 목록이 나열된 '연금 개요'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 1600쪽에 달하는 책자에는 2만3000명의 이름과 상세한 금액(개인별로 다양한 수입의 출처가 한 줄에 나열되어 있었다), 관련 부처, 개인의 연령, 지급의 최종 연도, 지급 사유 등이 기입되어 있었다. 그것은 1790년 4월에 출간되었다. (794쪽 주)


  『21세기 자본』을 읽기 전에는, 책에서 인용된 발자크와 오스틴, 헨리 제임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단지 '평범한' 독자가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 당의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피케티 나름의 '문화비평'이었다. 19세기~20세기 초의 소설은 경제성장률은 낮고 자본축적은 높았던 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당대 소설가들은 돈(화폐)을 통해 당시의 통속적인 재산 개념, 특권 계급으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 같은 걸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반대로 오늘날 그런 식의 접근은 거의 없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의 등락이 급작스런 20세기 중반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본다). 문학은 당대를 그리고 '경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표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너무나 정직하게 대응하는 셈이다. 이런 문화비평은 소박하지만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아주 현란한 응답으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것이 있다. 그의 「문화와 금융자본(Culture and Finance Capital)」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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