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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어보았습니다. 제국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

제가 제국에 대해 완전히 독해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포스티노 님의 리뷰에서 몇 가지 지적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현재의 국제정치경제질서를 제국주의의 연장으로 볼 수 없다는 것. 네그리/하트가 제국을 집필한 시기는 책 서두에 밝혔듯이 1991년 걸프전(제2차 페르시아 만 전쟁)~1998년 코소보 분쟁 사이입니다. 출간은 200년에 했습니다만, 네그리/하트가 '제국의 완전한 자기 선언'을 발견한 때는 걸프전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 합니다. 냉전 체제가 해체된 뒤 다원적인 국제질서가 형성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다원적이지만 미국이 주축이 되는 패권적 국제질서가 나타났습니다. 이 질서는 기존의 근대국민국가 사이의 대립-중국과 인도 사이의 영토분쟁, 일본과 중국 사이의 도서분쟁 등-을 안고 있으면서도 힘의 논리를 '정당한 전쟁' bellum justum 개념과 합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갖고 있지요. '정당한 전쟁' 개념은 춘추전국시대 이래의 '대의명분'과 유사하지만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자기 합리화보다 더욱 정교한 국제질서 슬로건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힘과 도덕을 일치시켰다는 점과 '자유', '민주주의', '평화'와 같은 근대적인 개념을 지배수단의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의 구성원(특히 패권국가인 미국)이 단순히 영토와 주민의 획득, 자원의 약탈, 시장의 확대-이것을 자본주의의 '실현'과 '자본화'라는 개념과 연결지을 수 있음은 물론이지요-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 국민국가의 경계를 확대시키는 게 주된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각 국민국가는 단일패권국가와 더불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본주의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 간의 대립은 존재하지만 국제 사법질서는 국민국가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국제 사법질서 안에 국민국가가 유기적으로 생존해나가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제국의 지배질서를 뚜렷이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근대 국제질서 상 미국의 공격은 분명 침공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이라크 독재정권 붕괴를 명분으로 한 침략은 '내정간섭'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질서에서 그것은 국민국가 사이의 대립이라기보다 제국적 질서 안에서의 치안력의 발현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전지구적인 탈근대 질서 속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독재 정부는 미국과 일본, 한국, UN, EU 등이 적으로 규정하는 '테러리스트'와 동격이었다는 걸 상기해야 할 듯 합니다.

둘째, 네그리/하트는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을 수행했지만 그 영향력을 원천 부정하거나 폐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은 전반적으로 거대 담론을 해체하고 미분적이고 미시적인 영역들에 관심을 돌려 정치철학을 비롯한 근대 철학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습니다. 제국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러한 비판은 탈근대 시대의 도래-그러나 그것은 단절이나 갑작스러운 출현이 아닌, '연결'이라고 보아야 하지요-와 함께 제국적 질서 안에서 큰 효용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제국의 지배질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지적은 라클라우/무페의 민주주의 이론을 비롯한 시민사회 이론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국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국'의 탄생과 유지, 생산과정을 밝히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제국'을 생산하는 데 공헌했다 하여도, '제국'이 손을 뻗는 미시적인 영역을 밝히는 데에 마찬가지의 효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텍스트와 매체, 창작물이 선/악의 구분 없는 세계를 묘사했다고 해서 "현실을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잿빛으로 물들였다"는 식의 비판을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자본주의를 악으로 규정했을 때, 물론 그것의 해악을 올곧이 바라보아야 함은 기본이지만 악의 반대편에 있는 것을 선으로 규정짓는 것 또한 위험한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셋째, 위의 지점에 이어 말하자면 욕망과 다양성, 잡종성 등은 다중의 토양이자 무기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제국'을 형성하는 기반이기도 하지만, 욕망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네그리/하트가 전제하는 것은 "특정한 욕망은 특정한 배치에 따라 변이한다" 라는 들뢰즈/가타리의 입장입니다. 이른바 '독일 국민'이 나치즘을 비롯한 파시즘을 지지했을 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파시즘을 지지하게 하는가?" 라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네그리/하트 역시 스피노자의 개탄을 따옵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를 떠받들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기까지 하는가?" 그것을 들뢰즈/가타리는 '배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배치의 변이가 욕망의 변이를 산출한다는 유물론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정치질서 즉, '제국'이 팽창하고 유지되는 데에 특정한 배치가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대중의 신체 곳곳에 스며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생체정치권력이 된 것이지요. 이것을 국제정치경제질서와 연결시켜보자면 각 국민국가는 그 나라가 기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크게 상관없이 자본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으며(이는 북한도 포함되겠지요), 초국적 자본, UN, 국제 NGO 등과 함께 중심도 경계도 없는 구성적인 제국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고 봐야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배치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싹트는 것은 물론이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다중' 개념이 출현하며 그 기반으로 다양성과 잡종성을 들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단일한 운동노선, 단일한 투쟁주체, 단일한 조직(예컨대 '혁명정당' 등)이 변혁적인 상황을 생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돌발적인 자발성과 자율성에 변이를 맡길 수 없다는 위기감도 있을 수 있지만-그래서 혹자는 "나는 대중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고도 하지만-세계 곳곳의 다양한 '다중'이 생산하는 다양한 전략과 대안은 그것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다수여도 도리어 그 과정은 다중의 역능을 강화하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명확해지는 것은 '다중'은 국제주의적인 존재이며, 그 주체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물론 기존의 배치를 부정하는 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끝으로 '다중'의 출현에 대해 부언하자면, 다중은 현재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근의 리뷰에서 서술했듯이 수많은 혁명적인 순간마다 다중은 출현해왔으며, 단지 그것을 바로보지 못했을 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다중은 훈육이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스스로 공동체의 삶을 생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 실천 속에서 제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하는 데에 있어서는 저의 개인주의적인 삶이 반성점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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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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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Empire 은 놀라운 책이다. 현상과 그 분석의 깊이, 해박함의 수준을 보아도 충분히 학구적이며,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과정은 서사적이기도 하다. 맑스적인 혹은 맑스주의적인 글쓰기/글읽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낯선 개념과 그들 간의 혼합 속에서도 어느 정도 독해의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제국은 무수한 오해를 낳을 여지가 있다. 개념의 이해에서부터 '제국'의 지배형태 등등에 대해 자칫하면 '미국이 곧 제국'이라는 등의 오해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제국'이 자본주의 질서의 확장이라는 개념을 전제하지 않는 한 발생하는 필연적인 실수일 것이며, 제국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염두에 두면서도 종종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제국은 무수한 학문분야와 현상-국제정치경제학, 맑스주의 역사학,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버펑크, 미국의 탄생과 발전, 인종주의 등등-을 가로지르고 있고, 깊이있는 독해를 위해서는 스피노자, 마키아벨리, 헤겔, 니체, 맑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그리고 네그리의 다른 저작과 아우토노미아 사상가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인 문턱이 존재한다. 제국의 시도는 분명 종합화이지만, 이 종합화를 네그리/하트와 같이 달려가기 위해서는 각각의 상이한 문턱들을 뛰어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용의 충실함과 해박함이 도리어 독해에 문제가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그리/하트가 제국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훌륭하다. 특히 두 개의 근대성의 발견과 제국의 탄생, 훈육사회/통제사회를 설명하는 것은 근대 분과학문의 경계를 스스로 넘는 탈근대적인 서술이다. 생각컨대 제국은 또한 문학적이다. 여기서 네그리/하트, 특히 하트의 보이지 않는 공헌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제국하면 으레 네그리를 떠올리지만 공저자인 하트는 문학이 주된 전공(근대 분과학문의 경계 상)으로, 이들은 맑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의 선언적 의미와 문학적인 뉘앙스를 멋지게 오마쥬하고 있다. 제국은 '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문인 동시에 '대항제국' Counter-Empire 의 생산을 진지하게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국이 안고 있는 한계는 종종 지적받는 것처럼 '다중' Muititude 의 존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맑스가 자본 Capital 의 저작에 몰두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생산의 영역으로 내려가' 파헤쳤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는 별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에 대해 네그리/하트는 새 저작인 다중을 집필하였지만 아직 살펴보지 못했고, 출간 후의 영향력이 제국에 미치지 못해 '다중'의 생산에 대한 충분한 논쟁거리를 던져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위험함은 물론이다. 올바른 비판을 바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중'을 기다린다는 것은 메시아 혹은 대중을 선도할 '전위'를 기다리는 바램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한다.'전위' Vanguard 와 '대중' Mass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실천보다 도태되고 고립되는 상황을 낳았다는 것은 수많은 혁명 상황과 현재의 투쟁들이 역사를 통해 고증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우리는 네그리/하트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다중의 징후를 세계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국 안에서도 언급되는 68혁명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LA 폭동 등 뿐만 아니라, 역사의 각 장면들 scene - 수많은 농민반란과 그 실패, 그것이 낳은 보다 반항적이고 지혜로운 대중-에서 '자발성'과 '현명함'으로 무장한 다중은 늘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 역시 혁명적인 상황을 자주 체험하지 않았는가. 한국전쟁을 전후한 이념갈등, 반일투쟁, 반독재투쟁,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87년의 혁명적 국면들. 다중은 오히려 가까이 있지 않을까.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푸른 희망을 생산해 가는 녹색정치운동, 성인과 미성년자 사이의 이분법을 깨고 사회의 동반자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 운동, 지율 스님의 투쟁과 사람들의 화답이 일구고 있는 천성산 살리기 운동, 여중생의 사망에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촛불을 밝힌 추모집회(물론 그 안에서 기존 운동사회 헤게모니를 쥔 운동가들이 스스로 전위가 되어 '미군 철수'를 위해 집회를 활용했다는 측면과 '질서'라는 근대적인 관념이 운동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훼손했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제국'의 자본주의적인 생체정치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현실에서도 다중은 생산된다. 그것은 나일 수 있고, 내 곁의 친구들일 수도 있다. 흑인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일 수도 있고, 아일랜드 탄광 노동자일 수도 있다. 다중의 투쟁전략 또한 다양하다. 잡종성과 다양성이 '제국'을 생산하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중'이 경계와 제한이 없는 '제국'의 리좀에 있기 때문에 거꾸로 잡종성과 다양성은 '다중'의 거름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중'은 국제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전략과 대안은 여전히 실천 속에서 생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국은 실천에 대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뿐이다. 제국은 그것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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