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 탐정 1 - 세인트 메리의 리본
다니구치 지로 지음, 정은서 옮김, 이나미 이츠라 원작 / 애니북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실종된 사냥개 찾아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탐정이 있다고? 사냥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일단 그런 일이 얼마나 잦은지, 그런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을 정도인지 의문이었다. 설혹 가상의 직업이라고 해도, 그걸로 이야기가 되나? 더구나 말로만 들어도 자상하고 따사로울 것 같은 그런 소재를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로 풀어냈다고? 그걸 『고독한 미식가』를 그린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만화로 옮겼고? 여러모로 낯선 조합이었다. 사실 그 정도만이었더라면 개 이야기에도, 다니구치 지로에도 관심이 크지는 않은 터라 '그런 책도 다 있구나' 하며 지나쳤을 텐데, 만화가 출간되고 얼마 후에 국내 최고(最古)의 미스터리 사이트 하우미스터리와 출판사 손안의책이 협력하여 하우미 컬렉션이라는 시리즈를 시작, 첫 작품으로 『사냥개 탐정』의 원작인 미스터리 소설 『세인트 메리의 리본』까지 발간하면서 새삼 관심이 더해졌다(그나저나 이 문장은 어쩐지 손안의책 관계자 같은 인상인데, 출판사와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밝혀둔다. 하우미스터리 회원이기는 하고, 하우미 컬렉션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기에 소설 『세인트 메리의 리본』을 알리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망일 뿐이다).

직접 읽어보니 전부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실종된 사냥개 찾아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며 살아가는 류몬이라는 남자. 그는 상속받은 삼림 속 오두막에서 파트너인 조와 살아가며 사라진 사냥개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다. 이 무뚝뚝한 남자는 삼림을 돌아다니지 않을 때는 복장에서부터 코트에 중절모라는 장르 도상을 사용하고 있으며, 필립 말로나 험프리 보가트 영화 등을 인용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 연줄을 이용해 탐정일을 돕는 친구, 야쿠자와 연결된 미녀 의뢰인 등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탐정물에 있을 건 다 있다. 류몬이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정이 깊은 남자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다니구치 지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어조, 세밀하면서도 다소 평면적인 그림으로 이 이야기를 그려낸다(단, 화마다 제목을 담은 패널과 마지막 패널에서는 펜선으로 그림자를 좀 더 짙게 표현하여 한껏 분위기를 낸다).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형식의 원작을 해체하고 변형하여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었지만, 플롯을 억지로 끌어다 하나로 묶었다는 인상은 없다. 우리네 일상이 그러하듯 여러 사건이 한 사람에게 다소간 동시다발적으로 겹쳐 일어날 뿐이다. 억지를 부리지 않으니 애초에 플롯이 성기다는 기분도 들지 않고,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모든 사건 아래로 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라는 독특한(이 장르에서는) 주제가 흐르며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준다. 『고독한 미식가』가 그렇듯(그렇다, 실은 다니구치의 작품은 아직 이것밖에 본 게 없다) 무언가를 애써 힘주어 하려고 하지 않는 듯한 그 자연스러움이 도리어 야쿠자와의 대립에서부터 맹도견에 관한 학습 만화를 방불케 하는 안내까지 온갖 상황을 선뜻 받아 삼키고 음미하도록 이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표면의 침착함은 그야말로 하드보일드가 아닌가. 후기를 읽고 검색해 본 후에야 알았는데 다니구치는 초창기에는 하드보일드 활극을 주로 그렸던 모양이다. 작가 자신은 후기에서 "솔직히 이나미 선생님이 그려낸 작품 세계의 캐릭터나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없는 것뿐이라서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하지만, 다 보고 나니 둘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구나 싶다.

번역에 관한 작은 딴지. 103쪽 〈소유와 무소유To Have and Have Not〉에 관한 주석에서 감독 이름이 "하워드 훅스"로 표기돼 있는데, "하워드 혹스"다. 그리고 제작연도도 1994년이 아니라 1944년이다. 혹스 팬인지라 〈소유와 무소유〉 인용이 나와서 깜짝 놀라며 활짝 웃었다가 연이은 오류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한편 일본어를 모르는지라 일본어의 어미가 어떤 식으로 분화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작 소설 한국어판을 보니 류몬은 때에 따라 하오체를 쓰는 모양이다. 원작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137쪽에서 류몬이 준을 만날 때 "처음 뵙겠습니다. 류몬이라 하오."라는 대사는 어색하다. 처음 만난 사람을 상대로 시차 없이 바로 이어지는 두 대사의 어미가 완전히 달라서 어법에 맞지 않는 데다, 이후로도 류몬은 준에게는 하오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한국어판에서는 "류몬 다쿠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옮겼다. 아마도 실수일 듯하니 2쇄를 찍는다면─이런 멋진 만화는 꼭 2쇄를 찍었으면 좋겠는데─고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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