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아웃핏 시공그래픽노블
다윈 쿡 지음,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 글 / 시공사(만화)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전편 『헌터』와 비슷한 스타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했는데 이런 변주가 나오는구나.

 전편에서 한바탕 뒤집어진 조직 쪽이 자신을 쫓아오자, 파커는 역으로 조직을 뒤엎기로 한다. 그것도 혼자서 엎는 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야, 거기 조직 업장 있댔지? 거기 좀 털어줘.' 하는 식으로. 그런 다음 서술자가 잠시 파커에게서 벗어나 몇몇 사례를 직접 소개하는 대목이 멋지다. 아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리처드 스타크)의 원작에서도 어느 정도 스타일 변주가 있을 테지만, 그래도 소설이라는 형식의 한계상 이 그래픽 노블만큼 표현이 다채롭지는 않았을 듯하다. 다윈 쿡은 아예 시각적 형식까지 달리하면서 각각의 이야기를 독립된 단편 범죄 만화처럼 다룬다. 범행 과정을 잡지의 르포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사기 과정을 제품 사용설명서처럼 찬찬히 나열하기도 한다. 특히 번호 맞추기 사업에 관한 이야기는 파커 개인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사회의 시스템을 더듬어 보는 쾌감마저 있다. 이런 스타일로 아예 논픽션 범죄 만화 같은 것도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 마틴 스콜세지의 〈카지노〉 같은 만화는 어떻습니까?

 『헌터』 영화판인 〈포인트 블랭크〉에서 적극 다루었던 범죄의 기업화를 반대 방향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회계사가 장부를 들고 와서 운영을 논의할 정도로 합법화된 형태의 기업형 범죄 조직. 그런 조직에 몸담고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그 맹점으로서의 파커. 〈포인트 블랭크〉가 직접 총을 들고 날뛰는 과거의 갱스터가 현대 사회의 조직망 속에서 설 자리를 잃은 모습에 관해 말한다면 『아웃핏』은 거꾸로 일을 나누고 책임을 넘기며 모든 일에 간접적으로만 관여하는 현대적 조직 체계가 직접적인('원시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타격 앞에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물론 그냥 졸라 짱 센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드는 놈들 다 패버리는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할 수도 있을 테지. 그래도 규정과 대리인, 책임의 분화로 점철된 현대의 집단에 곧잘 느끼게 되는 불신을 생각하면 쉬이 넘기지 못하겠다.

 미국에서는 시리즈가 두 권 더 나왔고 분위기상 쿡이 이후로도 계속 파커 시리즈를 그래픽 노블로 옮길 것 같은데, 모쪼록 한국어판도 계속 나와주면 좋겠다. 안 팔릴 게 빤히 보여 그게 걱정. 정말 멋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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