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이 전부다 - 인생이 만든 광고, 광고로 배운 인생 아우름 29
권덕형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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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이 전부다  인생이 만든 광고, 광고로 배운 인생 권덕형, 샘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만드는 예술, 광고. 현대카드 광고를 돌아보면서.  



 

현대카드 광고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지만, 한동안 텔레비전을 켰을때, 눈에 띄는 광고 중에 하나는 현대카드의 광고였다. 현대카드의 광고들은 무심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내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고 말해 주기도 했고,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벌써 몇년 전의 얘기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현대카드의 광고는 그저  일하고, 공부하고 있을 때도, 심지어 가끔씩은 그냥 잠을 청할때도, 잔잔하게 일렁이던 마음에 누군가 돌멩이를 하나 던진것처럼 파문을 일으키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떠나지, 뭐. 인생 뭐 있어? 즐기면서 살아야지.” 그 광고 들은 내게 행동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메시지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해내느라 내가 가진 거의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을 것이라고 느껴 졌던 시들시들한 삶에, 그래도 남아있는 에너지를 다시 모두 모아서 떠나고,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광고에 필요한 관찰과 발견, 인문학적 소양


 

현대카드의 광고와 현대카드가 어떤 인재를 선호하는 지가 얼마만큼의 상호관계를 갖는 지에 대해서 내가 정확히 파악해본 바는 없지만, 기업의 광고에 그 기업의 마인드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그렇다면 현대카드에서 인문학적 인재를 선호한다는 세간의 얘기가 당시 핫했던 현대카드의 광고를 만들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현대카드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선호한다고 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대카드의 경우 서류와 면접 외에도 에세이 전형을 따로 보는데 '단순함과 복잡함에 대해 논하라', '자신' 등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담긴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현대카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단순함과 복잡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가치를 담은 광고가 나와 당신의 마음에 파고들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20년이 넘게 광고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살아온 권덕형이 저술한  ‘발견이 전부다 인생이 만든 광고, 광고로 배운 인생’(샘터) 에서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기억되고 살아 움직이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찰과 그에 따른 발견이 얼마나 많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하나의 광고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실린다. 그렇기에 광고란 제품을 많이 판매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일일지라도,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서는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 사람에 대한 관찰과 발견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편의 광고에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광고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혹여나 감동을 주게 된다면, 그것이 해당 제품에 어느 정도로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이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고 떠날수 있는 용기와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현대카드(2002년)  광고.

https://youtu.be/sCLS49PxUmk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로 대표되는 현대카드 W 광고(2005). 벌써 오래된 광고지만, 지금 봐도 즐거운 영상

https://youtu.be/cuG_bXDgsEw



 

상품과 작품 사이


 

권덕형이 발견이 전부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때로 광고주들은

p.149 “누가 우리 회사 돈으로 예술하라 했어요?”  


 

하면서, 광고 카피를 쓸때는 어떻게 하면 브랜드에 도움이 되고, 어떻게 하면 제품을 많이 팔 수 있을지에 대한 고뇌하는 것이 필요하지, 예술성은 필요없다 한다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고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광고들의 경우 그 짧은 15초 간의 영상이, 사람들의 인생을 정조준하는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절대 만들어 질 수 없는 작품. 예술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아름답고 즐겁게 표현해 내는 것. 만약 예술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면 시대를 풍미하는 광고도 감히 예술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 아닐까,하는 무리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요즈음 많은 명품들이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고, 자신들의 상품을, 상품을 넘어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전시관을 만들고, 마치 훌륭한 예술품인 것처럼 그들의 상품(혹은 작품)을 선보이는 때에, 광고라고 예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상품과 명품과 작품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지는 요즘, 광고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의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고, 우리가 그 이야기를 통해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광고로 예술을 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품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란 고민이 가능하다면, 광고라고 예술이 되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예술가가도 생활인이기에 밥벌이에서 자유로워 질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팔릴만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상품 또한 그 안에 예술성이 없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들 지도 모른다. 예술과 밥벌이는, 그리고 상품과 작품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잘 만든 광고란 그 것 자체로 상품인 동시에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발견이 전부다  인생이 만든 광고, 광고로 배운 인생 권덕형, 샘터


 

p.17 스포츠는 몸을 지닌 인간의 가장 강렬한 자기 표현이다.

p.20 무엇을 내 주어야 인생은 지속되는 가


 

p.27 그러나 의미있는 존재로서 살아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해 주는 존재는 자신을 진정으로 살아가게 하는 존재나 다름없다.


 

p.56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세심함. 그것은 정책의 우아함에 관한 것이다.


 

p.91 “당신이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좋겠어.”


 

p.130 “먼저 구두를 보는 거야. 그리고 상상해 봐. 저런 모양이나 색깔 청결도를 가진 구두, 그리고 저런 양말을 신는 사람은 나이가 얼마나 될까? 어떤 표정을 한 사람일까? 어느 브랜드 가방을 들었을까? 시계는 찼을까 안찼을까?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너의 예상과 실제 그 사람의 얼굴과 차림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거야.”

p.144 좋은 광고는 공감을 부르는 광고다. 그리고 공감이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마음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p.150 감동을 준 광고의 카피들은 모두 시 아닌 것이 없고, 성공하는 광고 캠페인들은 소설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내공을 탓해야지 애먼 ‘문학’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광고가 결국 만나야 할 대상인 ‘사람’을 향하지 못하고, 자음과 모음의 낱글자들에 머물러 식어버린 말들의 블록쌓기만을 하고 있던 나 자신이 문제였던 것이다.


 

p.153 그들의 간판에 희망의 바람이 가득 불어 팽팽한 돛으로 부풀어 오르고, 매일 저녁 밥벌이를 완수한 자들에게 허락되는 작은 행복에 닿기를 바란다.


 

p.174 광고가 매스미디어를 수단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귓속말을 나누는 애인처럼 사사로운 관계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p.220 몸을 채우고 마음까지 채우는 음식이 이리 소박한 것은 화려한 ‘만한전석(청나라 황실요리)’보다 우리 영혼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작고 낮은 목소리들은 작고 낮은 우리네 인생에 더 가까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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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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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이기호,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소설 읽기의 장점_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


 

연이은 작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란,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것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만약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보도, 주변 사람들의 얘기만 통해서 세상을 접한다면, 그 뉴스 주인공, 얘기의 주인공들이 회자되는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을때, 그가 대체 어느 정도로 아팠고, 어느 정도로 기뻤는지 우리는 조금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딱 우리가 경험한 만큼만 기억할 수 있을 것이고, 하잘것 없는 우리의 조그만 경험만을 토대로 타인의 아픔과 슬픔 고통 그리고 기쁨을 재단할 것이니 말이다. “너는 아마 이럴거야.” 라고 제멋대로 판단하면서.


 

하지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고 있는 그대라면, 그대가 그 사건에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기쁨 또한 내가 절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우리는 당시의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 섣불리 재단하여 그와 대화함으로써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놓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세상을 뉴스 보도나 신문 또는 옆사람의 이야기로만 접하는 것에서 벗어나, 소설을 읽는 일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하는데에 굉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써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속의 주인공들과 주변의 인물들이 내가 겪지 못했던 일들을 겪어내면서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지나쳐 오는지, 어떤 의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소설 속에서는 많은 부분이 상세하게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동안, 타인의 감정과 의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것은 우리가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내가 경험한 일에서 더 나아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도 얼마간의 인식을 얻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p.37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과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아이에게 하고 말았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게 염치도 없이…”


 

=> 어린게 염치도 없다는 부분만 빼면, 나도 참 내 아이에게 가끔씩 하지 않아야 될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이제 안그래야지 생각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면 한정희는 자기 아빠나 엄마를 대신해서 자기를 키워주는 고모부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일테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어려운 것보다, 부모와 자식이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관계가 되면 그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p.113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일이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 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 어떤 이들은 나에 대해서 자기가 굉장히 많이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이 소설 속의 여자와 같이 어른들의 말에 피곤함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을까? 노인들, 시골, 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던 소설.


 

p.156 구두 매장에서 재고 물건들을 싸게 팔아치우는 걸로 먹고 살던 애가 얼굴 하나 반반한 걸로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것이 결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새로이 우애를 나눌 수 있는 것인지 시연을 알 수 없었다.


 

=> 내가 더 우위라고 생각했는데, 갸가 시집을 잘? 가면 꼭 저런 식으로 험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가 못난 것을 남을 험담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사람들


 

p.161 “네 그래도 제 식구가 뭘 어쩐 건 없으니 마음 푸세요, 어머니. 어머니 바람대로 저도 가족을 못 보고 가족도 저를 못봐요. 여기가 저의 현주소고, 전 전보다 더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어요. 사랑이 뭘 변화시킨다면 그걸 믿는 사람들과 함께이기 때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속설에 불과한 거죠. 제 생각엔, 얻은 것뿐 아니라 잃은 걸 통해서도 사람들은 뭘 배우고자 하면 배워요. 지섭씨는 그걸 존중하는 사람이에요. 전 구두말고 다른 것도 잘 팔 수 있어요. 저도 잘하는 게 있어요 어머니. 저 사람들처럼요.”


 

=> 잃은 것을 통해서 배우는 게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그것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사람마다 다른 것이겠지만. 같은 일을 겪는다고 모두가 같은 정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니까.


 

p.195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니까.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려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는 곳이 되리라는 것 역시 아직 알지 못할 테니까.

=> 아이에게 결핍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일


 

p.206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활달함이랄까 생명력이 실은 무례와 상스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나 싶어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내 사촌언니 두 명이 한달 새 나란히 사고로 아이를 잃자, 엄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며, ‘우리집안 죄 받았다 할까봐 부끄러워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낸다.’고 했다. 그것도 상복입은 사촌언니 앞에서, 엄마가 늙었나? 그새 분별력과 자제심을 잃었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 아, 이런 사람들 너무 많다. 그냥 무식해서 저러는 거라고 넘기면 되지만, 당사자에겐 은근하게 조용한 상처로 남는 다는 것이 문제.


 

#다산북스 나나흰 #한정희와 나 #황순원문학상 #이기호

#옥님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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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의 빛을 따라서 아우름 30
엄정순 지음 / 샘터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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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것은 진짜일까? 시각장애인들의 미술수업, 장님 코끼리 만지기_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샘터


 

가끔 나는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기억하는 것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이 생길 때가 있다. 내가 본 것이 진짜일까? 내가 뭘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이럴때 이렇게 느끼는 것이 맞는 건가? 나는 왜곡하여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세상에 대해서 또는 세상을 향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 그림 그리는 대상을 보다 자세히 바라보고 관찰하게 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을 조금 더 세심하게 바라봐야 하는 작가에게는 그림 그리는 일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간단한 일러스트 부터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예전에 사두었던 간단하게 일러스트 그리는 책이 있는데, 사실 이책은 따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산것은 아니고, 아이를 위해서 산 것이었다. 아이가 보게 하려고 산 책이라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간단한 것이라도 아이 앞에서 그림을 그려주면서 같이 그림 그리면서 놀아주면 아이가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랑 한번 창의적으로 놀아보려고, 산거다. ㅋ


 

근데 생각해 보니, 아이와 함께 이렇게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이로 하여금 세상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게 하는 효과를 주겠구나 싶다. - 물론 나는 (책을 산 그날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ㅋ) 그 책을 사다 놓고, 앞에 몇장 그리기 해보다가 안하고 있다. 이제 이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다시 날마다 한장씩이라도 그려야지. )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샘터)’ 의 저자 엄정순은 화가, 예술가 이다. 그는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시각장애아이들과 함께 코끼리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나는 그의 코끼리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 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엄정순이 진행하는 코끼리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지러 가는 것이다. 엄정순은 많은 거절 끝에 아이들이 코끼리 만지는 것을 허락하는 광주의 우치 동물원을 찾아내고, 그곳에 가서 시각장애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지금은 우치 동물원의 코끼리들은 일본으로 이사 갔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어릴 때 광주에 살때 우치 동물원에 가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코끼리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그렇게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데리고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을 실제로 재현 해보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장님 코끼리 만지기’ 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몇 가지의 불합리성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 않았을까?


 

그는 혹시,


 

우리가 시각을 통해 보는 것 또한 완전하지 않으며, 오히려 시각을 통하는 것보다, 청각 후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시각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우리가 보는 코끼리에 비해서, 장님(시각장애를 가진 사람 ) 들이 오감을 통해서 보는 코끼리가 더 코끼리의 본질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물 또는 대상에 대한 진실을 결코 알 수 없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그렇게 대상을 부분적으로만 인지하고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마 그는 우리가 보는 것이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보는 것에 결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냥 내 생각이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그의 코끼리 프로젝트가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 또한 그로 인해,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개선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여 미술 수업이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되는 그녀의 고민과 생각들을 접하면서, 진정한 매력이란 바로 사람의 이런 점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대신해서 안보이고, 나를 대신해서 안들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슴으로 고민하고 가까이 하는 삶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엄정순, 샘터


 

p.23 이 궁금함은 보는 것 너머에 있는 무엇에 대한 끌림이기도 했다. .. 그럼에도 왠지 나무에 대해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 나무 이면에 무엇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는 느낌으로 늘 답답했다.


 

p.48 “너 대신 저 아이가 안 보이고, 너 대신 저 아이의 귀가 안 들리는 것이야. 그래서 달리 이유가 있을 수 없어.”   


 

p.73 인간이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p.81 소리를 찍고, 온도를 찍고, 냄새를 찍고, 만져서 확인되는 것들을 찍었다.


 

p.90 시각장애인에게 미술은 단순한 과목을 넘어서 우리의 몸이 가진 다름과 그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교육적 도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p.93 “제가 전맹이라서 예전에는 이미지가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자유가 떠올라요.”


 

p.117 경험적으로 보면 작업의 고민은 작업을 해야만 풀린다.


 

p.151 몸이 크고 힘이 세다고 상처받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다.


 

p.159 그것을 만들며 그 아이도 표현하는 희열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표현하면서 알게되는 내면의 충족감


 

p.184 오감수업을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좋은 감각 기억은 평생동안 삶의 활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지칠때 몸이 행복했던 기억들이 제일 먼저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것을 나 역시 많이 경험했다.


 

#옥님살롱 #샘터 #시각장애인 #미술수업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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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눈 + 어린 왕자 (문고판) 세트 - 전2권
저우바오쑹 지음, 최지희.김경주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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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왕자의 눈, 저우바오쑹 지음. 블랙피쉬


 

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줘서 읽게 되었는데, 정말 읽으면서 아. 너무 좋구나 이책. 했던 책이다. 정말 진심.


 

사실 솔직히 말하면 어린 왕자의 내용들 기억 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거의 다 기억 나기도 하지만.) 하지만 어린왕자와는 별개로 저우바오쑹이 해석해주는 글들이 하나하나 가볍게 읽히지만 전혀 가볍지 않고, 아, 이렇게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 “아” 하고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것을 체험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나오는 여타 다른 책들처럼 그냥 가벼운 책이려니 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절대 무거운 책은 아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은 맞지만.) 읽으면서 그저 가십거리가 아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어서 마냥 반갑고 즐거웠다.


 

저자가 어린왕자를 읽고 ‘어린왕자의 눈’이라는 이 책에 실린 내용들에 대해 생각했다면, 나는 저우바오쑹의 ‘어린왕자의 눈’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사랑을 고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감에 대하여,


 

이해받고 싶어서, 그리고 부끄러운 것이 없으므로.


 

나는 실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많이 만나지도 않지만) 남편이 몇달 전에 죽었다, 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 뭐,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먼저 말하는 경우도 있다. 다들 내가 이제야 걸음을 배우고, 말을 배우는 아주 어린 아이들 둘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면 이 시점에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할테니까. 당연히 남편이 있는 줄 알텐데, 나는 실은 남편 없이 혼자서 애기 둘을 키우고 있고, 이것은 남편이 있는 여자가 육아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남편이 있는 여자가 터울이 별로 나지 않는 어린 아이 둘을 육아한다고 해도 “어머 힘들겠어요.”하겠지만, 나는 남편이 없이 혼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으니 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아마도 이해받고 싶나보다. 그냥 기본적인 욕구라고 생각하고, 나는 내가 이러는 것에 대해서,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나는 실은 굉장히 힘들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하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남편이 얼마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물론 육아의 고통에 대한 그 어떤 사실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뭐, 내가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는 사실이 하등 아무런 감흥도 일으킬 수 없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나의 이면에는 남편이 죽은 작금의 상황이 내가 힘들고 안타까운 상황인것은 분명하지만, 절대 부끄러운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린 아이 둘을 남겨두고 남편이 죽어서 몹시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여자가 되었지만, 나는 이 상황을 내 스스로 연출하고자 한 적도 절대 없고, 나는 남편과 지냈던 우리 가족 얘기들을 이 블로그에도 몇번 글을 올렸을 만큼 남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남편이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내가 이 상황이 된 것에 대해 내 스스로 하등 부끄러울 것이 없고, 그래서 내가 하나도 안 부끄러우니 나는 감출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굳이 말할 필요 있나.”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만약 나의 지금 일상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다면, 남편이 없이 나 혼자 애 둘을 키운 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팩트이기에 도무지 그 사실을 빼놓고는 내 매일의 삶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그리고 더군다나 누가 남편에 대해서 묻는다면, 자랑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는 부끄러운 것이 없으니 더더욱이 숨길만한 것도 아닌 것이다.


 

남편의 사망얘기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몇 사람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남편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대체로는 그렇지 않지만 아주 어이 없는 상황이 두번 정도 있었다(이런 얘기를 한 게 정말 몇번 되지도 않은데, 그중에 두번이나, 세상에). 나의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상대가 “하하. 그래요? 정말이요? 하하” 하는 것이었다.미처 상상하지도 못했던 반응. 나는 정말이지 그런 반응을 접했을때, 순간적으로 몹시 기분이 나빴다. (‘저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그 순간 머리 속을 스쳐갈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또 기분이 나쁜 체를 할 수 가 없어서, 나는 그냥 듣고 있었다. 왜냐면 내가 먼저 가볍게 얘기해서 그 사람들이 웃음으로 화답한 것이었으므로, 그 상대의 웃음에는 겉으로 보이는 대화의 흐름상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은 어투로 이야기 했으면서, 상대가 거기에 웃음으로 답했다고, 갑자기 정색하고 화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가벼운 투로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남편은 죽었어요, 몇달 전에요.” 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그 일이 가볍고 별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보통 사람이면, 아무리 내가 가볍게 얘기해도, 그것이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을 잘 배려하지 않는다. 공감하지도 않고, 이해도 못하고. ) 비록 이제는 자다가 일어나서 쌍욕하는 일도 없고,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앞이 안보이게 되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는 일도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나오는 때가 있고, 정말 정말 아주 아주 가끔은, 정말 몇가지의 이유로 내 앞으로의 삶이 너무너무 막막하게 느껴지고, 지금까지 내가 어려워 했던 일들은 이 일에 비하면, 그저 다 사소한 것들로만 느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너무 고독하고 아플때는, 정말 내 옆에 누가 좀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정말 너무 깊이 들때는, 정말 말도 안되게, “아, 그 사람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딱 한번 한적이 있었다. 정말 딱 한번. (이제는 그것도 옛날 얘기도 절대 그런 생각 안할테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할때가 오면, 그 일은 이제 아주 다 지난 일이고, 나는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가볍게 이야기한다.  마치 남 얘기 하듯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남들 앞에서 이야기 하면서 울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그냥 즐겁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가 맨날 울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웃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울어야 할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 울어야지, 밖에서 누구 앞에서 우는 일은 나를 만나주는 고마운 사람을 위해서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할 일일테니까.


 

공감하고 배려하기 위해서,


 

나는 저우바오쏭의 ‘어린왕자의 눈’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에서, 내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음으로 화답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다고, 정말 몇달 전에 일어난 그 일이 지금 내게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저우바오쑹은 어린왕자가 하는 얘기를 조종사가 공감할 수 있으려면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아주 같지는 않지만, 첫사랑을 해본 기억이 있다면 어린왕자의 장미에 대한 그리움과 책임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물론 비슷한 경험과 배경이 만나는 두 사람에게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닐테고, 그럼 공감이란 전혀 불가능한 것일까 하면, 그때는 서로가 가진 상상력에 의해서 결합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남편이 죽는 경험은, 그것도 이렇게 아이들이 어릴 때 죽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에 나는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받는 것이란 본래부터 아주 힘들 것이고, 그러니 나는 이 일로 인해 더욱 더 고립될 환경에 놓인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할머니가 되었든 할아버지가 되었든 자신의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일 텐데,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닌, 남편이,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 둘을 두고 죽는 일이, 아무리 그 당사자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한다 해도, 그것은 절대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수 없음을, 절대 웃음으로 화답할 일이 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일까?


 

상처가 있고, 상처를 극복하고, 당신의 마음, 아픔을 상상하고

나는 그들을 접하면서, 타인에게 이해하고, 진정으로 공감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고독으로 부터 구원해주기 위해서 내가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는, 나도 또한 상처가 필요한 법이었다. 상처 많은 나는  아마 누군가의 상처를 더 잘 발견하고 더 잘 만져줄 수 있을테니, 그 점에서 위로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저 쉬운일처럼 회자되는 배려가, 실은 많은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실은 상대의 마음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충분한 지혜와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


 

아마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고, 타인에게 진정으로 배려하는 방법을 모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만남이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숱한 대화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공허한 관계일지를 생각하게 된다. 옆에 있어도 외로운 관계란 어쩌면 그런 관계이지 않을까? 내 사랑하는 사람을 고독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저오바오쑹은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해야할 몇가지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사유의 깊이가 절대 얕지 않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꽤나 보람 찼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고독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그가 외롭지 않도록 내가 무언가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가 말하는 내용들을 조금 더 숙고하면서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옥님살롱

#블랙피쉬 얼리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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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 - 니체가 알려주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 아우름 28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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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 시라토리 하루히코, 샘터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이겨낼까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먼저 읽었다. (게을러서 이제야 글을 쓰지만.)

인생이 잘 풀리는 방법이라니. 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


 

혹시, 무언가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자신있다.”라고 늘 되 뇌여야 하는 상황이, 실은 겁많은 내게, 그것을 이겨낼 만한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내 상태에 (만약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다면) 무언가 정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모든 모험에는 두려움이 있는 법이니까.


 

모름지기 기존의 것을 취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늘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한다. 모든 기회는 위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그 흔한 말처럼, 내가 겪는 이 두려움은 모험을 선택한 수많은 영웅들도 미리 체험했던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공든 탑이 무너지기도 하는 데, 아직 열심히 탑을 쌓고, 많은 것을 이뤄내기에는 한참 어린 나이에, 이전에 넘보지 않았던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더 늦을 수도 있었는데, 한참을 탑을 쌓는 중에 그것을 두고 다른 탑을 쌓는 일로 넘어갈 수 도 있었는데, 이렇게 이른 지금이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새로운 시작에는 두려움이 없을 수 없고, 이것은 때로 새로운 시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는 설렘으로, 또 어느 정도는 기쁨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두려움이란 또한 반가운 것임에 틀림없으나, 뭐든지 과도하면 무리가 오는 법이기에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뇌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뇌가 담긴 글을 읽는 일이 필요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모든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늘 값진 것이고, 듣는 이와 말하는 이는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서로가 그 대화를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게 마련 일 것이다. 그리고 독서는 대표적인 대화 행위의 일종이고, 따라서 저자와 독자는 늘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누구와 대화하는 지가 그 대화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처럼, 독서의 행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나의 삶이 다 가치가 있고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은 일견 당연한 말이지만, 흔한 신변잡기 처럼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도 인생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성찰이 녹아있는 글이 있는가 하면, 그저 한낱 유희에 불과한 글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예능’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예술’을 접하면서 더 큰 내면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신변잡기만 늘어 놓는 책을 통해서 얻는 쾌락이, 인생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녹아있는 책을 읽는 기쁨을 능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가 겪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나의 행동의 확신을 얻게 되어, 나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만약 내가 성장하는 기쁨을 맛본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아주 소중한 일.


 

독서를 통해 서로가 성장하는 일은 살아있음을 체험하는 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그 자체, ‘살아 있음’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고 난 후, 나는 내가 행하는 그 어떤 행동에서도 그 행동의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일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가 반드시 존재할 것인데, 나는 내가 하는 그 행동을 통해서 나뿐만 아니라, 내 행동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나의 상대방이 함께 깨우치고 성장하는 상호작용.  책을 읽는 행위에 있어서도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든지, 글을 읽는 사람이 되었든지 동반 성장하는 관계가 되어야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관계, 살아서 생동하는 성장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기쁨이야 말로 모험이 수반하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므로.  


 

독서를 통한 성장의 기쁨은,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에서도 동류의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 내게 살아있음을 두배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시작을 함으로 인해 겪을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을 설렘과 기쁨으로 더 손쉽게 전환시키며, 전환되지 않고 남아있는 여분의 두려움 또한 그저 견딜만한 정도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의 육체와 정신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아이가 아니라, 이미 육체적 성장이 멈춘 다 큰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러니, 비록 육신은 늙어간다 할지라도) 내 영혼과 정신만은 늘 성장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우리는 바로 그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바로 이런 체험이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고, 내게 새로운 시작을 즐기게 할테니,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뇌. 누군가의 성찰이 담겨있는 글을 읽고, 그의 생각을 다시금 자문해 보는 일은 아주 기쁜 일이 된다.

      

니체에게 빠져 지냈다는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인생이 잘 풀리는 철학적 사고술’에서 보다 쉬운 언어로 우리에게 생을 살아가는 몇가지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금새 읽을 수 있지만, 읽다가 간혹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메모하다 보면 그 양이 꽤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몇 가지.


 

p.4 얼굴은 몸의 영혼이다.

p.5 사람은 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기뻐할 따름이다.  

p.6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생각하게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언어는, 다듬고 또 다듬어진 사고, 혹은 심오한 인생경험이나 깊은 고독과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의 붓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p.19 정답이 없는 지금의 상태는 우리의 애를 태우기는 하지만 안개 속을 걷듯 신비로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 신비로움은 우리 인간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p.44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여기서 구하라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원한다’ 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원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손에 닿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열정을 의미한다.

p.72 파우스트 박사 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계를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만이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p.105 고독이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독이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p.112 인공적 환경에 둘러싸인 도시인들이 자연을 갈망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야생성을 원한다. 그것을 가져다 주는 것이 바로 개와 같은 반려동물이다.

p.123 확실한 답이 있다. 문제 앞에서 계속 우물쭈물 하지 않는 것이다. 즉, 결단하는 것이다.

p.123 약간의 용기 조차 없다면 인생은 어느 사이엔가 견디기 어려운 지옥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결단한다면 인생은 매우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p.126 우리는 인생을 체념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풍요로움을 좋아하고 사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p.131 사람이 어떤 창조적인 일을 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반드시 개념, 고정관념, 상식이라는 것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

창조란 것은 자기 안에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p.140 그보다는 좀더 솔직히 본능을 존중하면서 현재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쏟아지는 고민도 즐거움도 모두 받아들이고 만족하는게 본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p.146 따라서 일반적인 개념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이끌어 내는 것도 통찰력이고, 관계없는 개개의 사정에서 어떤 사람에게든 통용되는 일반적인 개념을 이끌어 내는 능력도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p.148 “몇번이나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가혹했던 세월에 대하여 나는 한층 깊이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필연적으로 일어난 고난, 그것은 힘겨운 일이었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또 인생의 가감계산을 해보면 그런 고난조차도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벅찬 인생의 고난 들이 바로 우리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고 더 높은 차원의 기쁨을 가져다 준다.

p.149 인생은 이미 시작되어 버렸기에 인생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인생을 만끽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샘터 물방울.

#옥님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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