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치 문학동네 시인선 56
최서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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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 2층.
창 밖엔 비가 내렸다 천둥이 쳤다 번개가 번쩍했다.
주변의 초등학교 아이들은 우르릉 꽝-하는 소리에 맞춰
날카로운 비명을 짧게 질러대고 
나는 빗자국 따라 점점이 물들어가는 아스팔트 주차장과 
흐려지고 어두워지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오롯이 눈에 담으며 한 권의 시집을 읽고 있었다.


<욜랑거리다>라는 표현으로 나를 홀리던 시인은 
시인이기 때문에 겪는 
세상을 담는 '언어'에 무척 많은 고심의 흔적들을 심상치 않게 
시집 곳곳에서 흩뿌리고 있었던 것 같다..

'詩는 가시 같은 것',
'시는 밥통 속에 삭은 음식물 같은 것'이라 칭하다 
'무숳; 찔리며 
구멍을 키워온 말 
말의 푸른 이파리를 뜯어먹으며 
둥근 구멍의 힘으로 
가시를 뭉그러뜨리는 사람이 있다'고 (<시인> 중에서)
말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러 작품을 옮겨 적으면서도 
쉽게 넘겨지지 않는, 
괜히 더 상상하고 곱씹게 되는 시가 하나 있었는데

용기있고 소신있게 뭔가를 말하지도 못할 뿐더러 
안에 찰랑거리는 마음의 빛깔과 냄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나는... 
이 시를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고 싶었더랬다.
4월 16일, 어젠.



비릿한   _ 최서림

어떤 말은 생쌀같이 씹히고 어떤 말은 밥그릇 속에 든 머리카락 같다 어떤 말은 입가에 묻은 밥알같고 어떤 말은 눈에 들어간 모래알 같다 애써 생쌀을 씹어 먹게 하고, 머리카락을 밥그릇에 집어넣게 하고, 모래알이 눈 속에 들어가게 하는 말이 있다 허연 눈자위가 핏발 서게 머드럭거릴수록 도드라지는 말들이 있다 종종 핏발이 서본 사람은 일부러 모래알을 집어넣지 않는다 생쌀을 씹어본 사람은 내켜 생쌀을 먹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머리에 붙어 있게 하고, 밥알을 밥그릇에 들어 있께 하는 말들을 뒤엎고자 마구잡이 칼을 휘두르는 컴컴한 말들, 패배한 말의 머리통을 밟고 선 점령군 같은 말, 빼앗은 밥그릇을 치켜들고 히히덕거리고 있다 깊고 어두운 데서 솟아나온 말들이 거리거리에 쫘악 깔렸다 비릿한 냄새가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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