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줘서 고마워요 - 사랑PD가 만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은 사람들
유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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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오랗고 오돌토돌한 표지,

예쁜 그 책을 펼쳐 들었다.

살아줘서 고맙다며 꽃 한송이가 피어있다.

서점 한 켠,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슬며시 자리를 잡고,

체온이 금세 전해지는 색지의 표지를 아주 조심히 펼쳤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은서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엄마, 우리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p.085)

 

 

- 풀빵엄마 최정미씨와 아이들(은서, 홍현) -

 

올라왔다. 순간이었다.

붉게 오르는 눈물의 온기를 애써 삼켜야했다.

갑자기 만난 슬픔을 어디에 담아야 할지 몰라 낯설어 하며 서점을 나와야 했다.

 

 

 

# 2.

지난 번에 후르륵 넘기듯 훑어보던 책 속에서

웃고 있던 소녀가 불쑥 떠올랐다.

노오란 책은 또 꽃을 내밀어줬다.

“친구들도 저를 마녀라고 놀려요. 제가 우리 엄마 아빠를 죽였대요.” (p.209)

 

원장 수녀가 나오미를 안아준 순간,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내전으로 두 살 때 부모를 잃고 처음 안겨보는 따뜻한 품이었던 것이다. 고작 포옹 한 번에 참아온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p.212)

 

 

- p.215  콩고민주공화국의 나오미 -

 

책은 다시 접혀야 했다.

갑작스러운 그 무엇의 방문은

또 다시 나와 내 손을 버벅거리게 만들었다.

 

 

 

# 3.

유해진 피디는 16년차 다큐멘터리 피디다.

난 다큐멘터리를 싫어한다.

우린 만날 수 없는 인연이었다.

당장 이웃집이나 학교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굳이 긴 시간을 들여 그들의 적나라함을 만나야 할 이유를,

먼 나라에 사는 다른 피부의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야 할 필요를,

나는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책으로 그의 길을 보았다.

이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40대의 나는 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꾸준하고 질기게 노력하면 조금씩은 움직인다는 것을. 그리고 TV가 강력한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혁명, 관계의 올바름을 모으는 혁명, 세상의 부조리를 닦아내는 혁명......나는 오늘도 TV에 혁명을 담는다. p.223

 

그의 글은 눈을 돌려 내게 묻는다.

당장 네 앞에 있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너는 얼마나 진실했고 참된 마음이었는지.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들 또한 100퍼센트 무결점의 존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었고,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다소 수다스러운 면이 있을 수 있고 담배를 좀 많이 피우는 결점이 있을 수도 있으며 운전습관이 많이 과격할 수 있다. 또, 같은 실수를 자주 반복할 수도 있고 남의 말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 고집이 있을 수도 있으며 불량식품을 좋아할 수도 있다. p.278

그들이 ‘아프기 때문에’

혹은 ‘어렵게 살기 때문에’

마땅히 그 고난을 대가(代價)로

착하고 순수하며 맑은 것을 얻었다고

착각을 하고 싶어한 것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들이 나를 파고 들었다.

 

'그들'도 '나'이고, '나'도 '그들'이기에

때론 착할 수도 있고

때론 나쁜 생각을 품을 수도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아름다운 것은

나와 같은 ‘평범함’을 가졌고,

-게다가 ‘고난’까지 가졌지만

그것들을 무기로 ‘씁쓸한 현실’들을

이겨내고 막아내고 견뎌낸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그들의 사랑을 모두가 ‘아름다운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다양한 모습 속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이 절대적으로 주요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두고 ‘아름다움의 순도純度’라고 표현하고 싶다. p.278


- p.279  '그래서 이 책을 쓰고자 했다'라는 마지막 줄 전후에 주목 - 

 

 

 

# 4.

책을 덮어

급습하는 슬픔을 외면하고 싶었어도

꿋꿋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새싹.

 

그 새싹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부는 바람에 꽃잎을 널리 널리 보내고 싶은 건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걸,

세상 널리 알려 주려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움 순도 100퍼센트의 새싹이 책 속에 숨어 있다.

 

 

 

 

- 겉옷(?)을 벗기고 나면 뒷표지 제일 뒤에 새싹이 자라나고 있다 -

숨지 마라, 숨기지 마라.

아름다운 그들이 존재했음을 알아만 다오.

 

 

 

 

 

 

 

 

p.s.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 '사랑'에서 나온

<로봇다리 세진이>...동화책으로도 나와 있다지요.

 

 

궁금합니다. 세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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