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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 - 플라톤의 대화편 ㅣ 마리 교양 1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은 가독성이 매우 좋아 끊김없이 술술 읽었다.
불경죄로 고발된 소크라테스. 그의 변론을 듣고 있자니 제대로 설득당했는지 도대체 그의 죄를 무엇이라 이름붙여야할지 모르겠고,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로 죄질이 나쁘다는 의견에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다. 너무 현명한 자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지나친 위협이 되었을까?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아무리 설득당하지 않겠다고 확고히 답을 정해두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저 논리들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
진실과 진리를 외면하고, 옳은 결단을 흐리게 하는 현상들이 여전한 현재에도 소크라테의 변론은 불의를 외면하고 더이상 진리를 탐색하지 않는 자들을 일깨우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크리톤]. 크리톤이라는 인물에 대해선 잘 몰랐었다. 소크라테의 죽마고우라는데, 그 역시 철학자였다지만 현대 학자들로부터 크게 인정받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실린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를 다루고 있다. 탈옥을 권유하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는 '많은 이들의 평판은 중요치 않다고', '전문가가 올바른 앎을 가지는 것이지, 많은 이들이 올바른 앎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며 크리톤의 탈옥 권유 논변을 반박한다. 그리고 '조국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조국이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해야 한다'며 조국이 내리는 처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정으로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조국을 설득해야 한다고(p.131) 논증을 펼친다.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고자(p.148) 했던 소크라테스는 결국 조국이 명하는 죽음을 따랐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들으며 '아~'하는 깨달음과 동시에 그의 논리에 사로잡히고, 그를 더이상 반박할 수 없다는 한계를 만나는 경험이 뭔가 뿌듯하면서도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분하다는 감정이 자꾸 밀려들어서였을까? 그런 점 때문에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이끈 사람들의 열등감(이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의 부당함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는 대단히 이성적이었지만, 그에게 죄를 물은 이들은 매우 감정적이었다. 유죄와 사형에 투표한 어리석은 배심원들은 언젠가 부끄러움을 깨달았거나 개인적으로 형벌이라 여겨질만한 괴로움 같은 감정이라도 느끼긴 했을까?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을 통해 학창 시절 교과 공부로 막연하게 배웠던 소크라테스의 변론 장면을 제대로 참관할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기우였다. 오유석 교수님께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번역에 공들여주신 덕에 평소 엄두내기 어려웠던 철학서 한 권을 마음 편히 읽어낼 수 있었다. 한 번 읽고 덮는 건 너무 아깝다. 악법도 법이라며 처벌을 감내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그저 달변가의 말이 아니었다. 옳은 행위에 대해,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깊은 의미와 무거운 질문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땅 및의 일들과 하늘 위의 일들을 탐구하고, 더 약한 논증을 더 강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에게 이와 같은 일들을 하도록 가르치며 불의를 행하고 주제넘은 일을 행하고 있다.”(p.25)
“나의 현재 상태 그대로, 저 사람들이 가진 지혜의 관점에서 지혜롭지도 않고 저들의 무지의 관점에서 무지하지도 않음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저들이 가진 지혜와 무지를 둘 다 갖기를 택할 것인가?”
그리고 저는 저 자신과 신탁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 내 상태 그대로인 게 나에게 유익하다.”
그런데 오, 아테나이 사람들이여! 이렇게 사람들을 심문한 결과 저를 다루기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겼고, 그만큼 지독한 반목과 비방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혜로운 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주제로 누군가를 논박할 때마다 함께 있던 이들이 그 주제에서는 저를 지혜로운 자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은 오, 사람들이여!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오직 신뿐이시며, 이 신탁을 통해 신께서는 인간의 지혜가 거의 또는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이 사람 소크라테스를 들먹이실 때, 저를 본보기로 삼아서 제 이름을 사용하시는 듯합니다. 마치 “오, 사람들이여! 그대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지혜에 관해 진실로 아무 가치도 없음을 인식하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p.37-37)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폴리스가 믿는 신들을 밎지 않으며 새로운 다른 신적 존재들을 믿으며 죄를 짓고 있다.”
이것이 고발 내용입니다. 각 항목을 하나씩 따져봅시다.(p.41)
만약 오직 한 사람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머지 사람들은 젊은이들에게 유익을 준다면, 그건 젊은이들에게 큰 행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 멜레토스여! 당신이 젊은이들에게 신경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제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무관심을 명백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저를 법정에 소환한 그 일들에 당신은 전혀 관심을 가진 적이 없으니까요.(p.45)
... 제가 의도치 않게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면, 법률은 이런 실수 때문에 이곳 법정으로 소환하는 대신에 개인적으로 불러서 가르치고 훈계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의도치 않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멈출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런데도 당신은 저와 함께 지내거나 저를 가르치기를 기피했고 거부했스빈다. 그러고는 이곳 법정으로 소환했습니다. 배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아니라 처벌을 필요로 하는 자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 적법한데도 말입니다.(p.47)
제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고발장에서 스스로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을 믿지 않지만 동시에 믿음으로써 죄를 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농담하는 사람이나 할 법한 말입니다.(p.50)
오, 멜레토스여! 인간과 관련된 일들은 존재한다고 믿으면서도 인간이 존재함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 중략 ... 신적인 존재와 관련된 일들이 존재한다고 믿으면서도 신적 존재들이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p.51)
만약 저에게 유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저를 고발하는 것은 멜레토스나 아뉘토스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비방과 시기라는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다른 많은 선한 사람들을 유죄 판결로 이끈 것인데, 제 생각에는 또다시 그렇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저에게서 그치게 될 까닭이 없습니다.(p.55)
지금 여러분이 아뉘토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를 석방해주신다고 합시다. 그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애초에 소크라테스를 이곳 법정으로 소환하지 말았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일단 소환했으니 그를 사형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풀려난다면, 여러분의 아들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연마하다 모조리 타락할 것입니다.”(p.59)
“오, 아테나이 사람들이여! 저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며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보다는 신께 순종할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저는 지혜롭게 사랑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를 만나게 되든지, 늘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입증하면서 말입니다. ... 중략 ... 저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를 검증해볼 것이며 논박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이 탁월함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가졌다고 주장하는 듯하면, 저는 이렇게 꾸짖을 것입니다. ‘당신은 가장 가치가 큰 것들을 업신여기면서 더 보잘것없는 것들을 중시하는군요.’ 저는 제가 만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렇게 할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든ㅌ 나이든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시민이든 말입니다. 시민들에게는 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혈통이 그만큼 저와 더 가까우니까요.”(p.60-61)
저에게는 죽는 게 문제가 아니며, 무슨 일이든 불의나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오로지 저의 관심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p.69)
그렇다면 몇몇 사람들은 도대체 왜 많은 시간을 저와 함께 지내면서 즐거워하느나 걸까요? 오, 아테나이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이미 그 이유를 익히 들어서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에게 모든 진실을 말씀드렸으니까요.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자들이 검증받는 것을 들으면서 즐거워합니다. 이는 불쾌한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은 신께서 저에게 명하신 일입니다. 신탁과 꿈 그리고 모든 계시 수단 -신적 운명이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도록 명령하는-으로 말입니다.(p71)
오, 사람들이여! 아마도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을 설득해서 심판을 모면할 논증-무엇이든 행하거나 말해야 한다고 제가 생각했다면 말입니다.-이 부족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유죄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이는 논증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마도 뻔뻔함과 후안무치함 그리고 여러분이 듣기 좋은 것들을 말하려는 열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목놓아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저답지 않은 많은 것을 행하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위험에 맞닥뜨렸다고 해서 자유인에게 합당치 않은 일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마찬가지로 지금도 저는 제 변론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변론해서 살기보다 차라리 지금처럼 변론하고 죽기를 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러하지만 그 누구도 법정이나 전쟁터에서 무슨 짓이든 해서라도 죽음을 모면하려고 꾀해서는 안 되니까요. …중략…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떠납니다. 반면 이 사람들은 진리의 이름으로 사악함과 불의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중략…
오, 저를 죽인 자들이여! 신께 맹세컨대, 여러분은 제가 죽자마자 저에게 내린 사형선고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든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한 논박을 견뎌내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헤서 저에게 이런 일을 저질렀지만, 저는 이와 반대되는 결과가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으로 여기니까요. 여러분을 논박하는 자들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이들을 억제하고 있었는데 여러분은 눈치채지 못하고 계셨지요. 또한 그들은 젊은이들인 만큼 더 다루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더 분개하시곘지요. 사람들을 죽여 여러분이 바르게 살고 있지 않음을 누군가가 비난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신다면, 이는 잘한 생각이 아니니까요. 이런 임시방편적 모면은 강력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훌륭하고 쉬운 길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대신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p.87~91 최후진술 중에서)
이제 벌써 떠날 시간입니다. 저는 죽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은 운명으로 나아가게 될지 신 외에는 그 누구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p.98)
소크라테스 : 우리는 결코 의도적으로 불의를 행하면 안 되는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불의를 행해야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불의를 행하면 안 되는 건가? 또한 우리가 이전에 여러 차례 합의한 것처럼 불의를 행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도, 아름다운 일도 못 되는가? 아니면 우리가 앞서 합의했던 모든 것이 최근 며칠 사이에 내동댕이쳐졌나? 그래서 오, 크리톤이여! 우리처럼 연로한 사람들이 서로 심각하게 대화하면서도 자신이 아이나 다를 바 없음을 이미 한참 전부터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무엇보다 우리가 일전에 논의했던 바가 사실인가? 많은 이들이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또 우리가 지금 겪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겪어야 하든 아니면 더 가벼운 일을 겪어야 하든, 여하간 불의를 행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쁘고 수치스러운 건가?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건가, 그렇지 않나?
크리톤 : 우리는 그렇게 말하네.
소크라네스 : 그렇다면 어떤 경우라도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되네.(p.123)
202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