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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자 프란체스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오상빈 옮김 / 애플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청빈과 평화 그리고 사랑의 삶
"하지만 그 분이 꽃을 꺾은 것은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었어."(83)
피카 부인이 프란체스코에게 수도사 피터를 처음 만났던 날을 이야기하는 대사 중 하나이다. 혈기왕성한 방탕아. 그가 바로 프란체스코였다. 1부에서 3부는 그가 나비가 되기 위한 몸짓을 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예상은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의 독서였다. 무엇보다 종교적인 표현이라던가 교훈이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상상력 없이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에 당황하여 같은 부분을 몇 번씩 다시 읽어야 했다. 비슷한 계열이라고 해야 할까, 특정 종교에 대한 (독실하다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신앙이 있어서였는지 성자 프란체스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도 이내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카잔차키스라는 작가가 가진 힘이 느껴진다. 그의 문체는 매우 섬세한 인상을 준다.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가끔은 성경의 한 구절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구구절절 은혜의 빛으로 둘러싸인 저자와 프란체스코의 삶이 발견된다.
교회를 고치라는 계시의 꿈을 꾼 프란체스코의 심정을 과연 내가 부러워하고 있었는지,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상식적으로 하루 아침에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신앙 또는 신을 간증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순간 새로 태어났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지금 땅속 깊이 묻혀 있는 애벌레가 된 것 같아요. 나를 짓누르고 있던 땅을 지금 헤쳐 올라가고 있어요. 대지는 하늘과 향하는 통로지요. 표층을 뚫고 빛을 향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두터운 대지를 뚫고 올라가는 일은 매우 힘이 들지만 빛을 보는 순간 내 몸이 나비처럼 가벼워질 거라는 강한 예감 때문에 버텨내고 있는 중이예요."(122)
프란체스코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자신의 허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분이 가라 명한 숙명의 땅, 아시시로 향한다. 그 곳의 광장에서 그는 축복을 약속하며, 돌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외친다. "사랑하시오! 사랑하시오! 사랑하시오!"(145) 그 때 떨궈지는 그녀의 눈물, 클라라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그녀는 후에 프란체스코와 뜻을 같이 하게 된다)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그처럼 혐오하던 문둥이에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신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만일 당신이 입맞춤을 한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가 된단 말이에요."(180)
이제부터 프란체스코가 걸어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면서 기적의 길이다. 그의 기도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다시 살게 한다. 그의 완전한 가난함이 그를 만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시작한다.
슬픔을 참아낼 힘이 없는 프란체스코.
그의 기도가 갖는 간절함의 깊이가 대단하다.
성자로 단련되기에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도 않다는 오만한 상식에 생각이 미쳤을 때, 그는 이미 범접할 수 없는 - 마치 예수가 가졌던 번민에 휩싸여 상상하기 조차 힘든 힘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완전한 가난, 완전한 복종, 완전한 사랑.
로마를 찾아 교황을 만난 프란체스코. 교황은 프란체스코에게 오만함을 경고한다. 어쩌면 이 때까지 나를 포함한 다른 독자들 역시 비슷한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한계를 인정하는 인간임을 고백한다.
"레오 형제, 우리의 기도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주님, 저를 구부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녹이 슬고 말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 저를 너무 구부리지 마세요. 그러면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레오 형제, 이것은 바로 우리가 늘 해야 하는 기도예요. '주님, 저를 있는 힘껏 구부리십시오. 제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세 종류의 기도가 있듯이 인간도 세 부류가 있어요. 레오 형제의 마음 속에 잘 새기고 있어야 해요. 레오 형제, 내가 이런말을 수차례 해왔지만 지금 또 한 번 하지요. 당신에겐 지금 당장 내게 등을 돌리고 떠날 시간이 충분해요. 당신이 부러지는 것을 마다할 시간이 있다는 얘기예요!"(342)
물론 레오는 떠나지 않는다. (레오는 프란체스코의 동행이자, 이 책에서 그의 행적을 좇고 회상하는 역할을 한다.)
길어지는 이 책에는 잠언들이 넘친다.
그의 기도는 흉내낼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감명을 준다.
주님, 당신은 거룩하십니다. 당신은 신 중의 신이시며 당신만이 기적을 보이십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강하시며, 누구보다 위대하시며, 누구보다 높으십니다.
당신은 선입니다. 모든 선입니다. 제일 드높은 선입니다.
당신은 사랑입니다. 지혜와 겸손입니다. 그리고 가장 쓴 인내입니다.
당신은 아름다움이며, 확신이며, 평화며, 기쁨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정의요, 우리의 모든 보물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보호자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방어해주십니다.
당신은 우리 영혼의 거룩한 위안입니다.(622)
그를 따르는 사람들. 제자들.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귀향.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신 전능의 주님이시여,
모든 찬양과 영광, 모든 명예와 축복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오로지 거룩하신 당신만이 그것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당신의 이름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
당신이 창조하신 태양에게 찬미를!
태양을 통하여 우리에게 빛을 주시는 주님,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납니다.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
당신이 하늘에 수놓으신 달과 별 자매들에게 찬미를!
그들은 밝고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
당신이 창조하신 바람과 공기, 그리고 구름에게 찬미를!
조용하고도 시끄러운 모든 기후를 주신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
겸손하고 사랑스럽고 순수한 물을 주신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
밤을 환하게 밝히는 불을 주신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
우리를 길러 가슴에 안은, 우리의 어머니인 대지를 주신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찬미를!(678)
청빈, 평화, 사랑. 그가 남긴 마지막 말. 그의 제자들처럼 먹먹해지는 가슴.
이런 성자의 이야기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에 무척 당황하여, 아름다운 기도와 (도무지 인간답지 않은 그래서) 신만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완전성에 가장 가까운 삶의 에피소드들이 마치 지어낸 동화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앞으로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더 읽어야만 그의 존재와 삶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실존 인물임에도 말이다.
차근차근 책의 흐름에 따라 정리를 해보려 했지만, 적지 잖은 분량에 쉽사리 풀어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은 역시 만만치가 않다. 끈기와 애정을 갖추지 않으면 감동을 보장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공감할 수 있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새 멘토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한없이 부족함 뿐인 인간인지라 애초에 성인의 삶에 조금이라도 닮아가기를 포기했다지만 '성자 프란체스코'의 삶은 충분히 내게 감명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나의 욕심을 돌아보고, 나의 기도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다. 이 점이 내가 이 책을 양서의 첫 자리에 꼽는 이유로 충분하리라 본다.
※ 끝으로 성자 프란체스코, 그의 소개를 옮겨 둡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프란체스코 [Francesco d'Assisi, 1182~1226.10.3]
프란체스코회의 창립자. 가톨릭의 성인(축일 10월 4일). 중부 이탈리아 아시시의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향락을 추구하였고, 기사(騎士)가 될 꿈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20세 때에 회심(回心)하여, 세속적인 재산을 깨끗이 버리고 완전히 청빈한 생활을 하기로 서약, 청빈 ·겸손 ·이웃에 대한 사랑에 헌신하였다. 1209년 11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만나, 청빈을 주지(主旨)로 한 ‘작은 형제의 모임’의 최초의 수도회칙(修道會則)의 인가를 청원, 구두약속을 받은 다음 이 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에게 권유하여 여자를 위한 수도회(클라라회)를 설립케 하고, 다시 속인(俗人) 남녀를 위한 제3회도 조직하였다. 만년인 1224년에 자신의 몸에 성흔(聖痕: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옆구리와 양손 ·양발에 생긴 5개의 상처)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자애로운 인품과 그가 행한 기적은, 모든 시대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는데,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되어 있다. ‘신의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 불리고 있듯이, 《태양의 찬가》를 비롯하여 뛰어난 시도 남겼다.
200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