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화로워 보이는 우리의 일상도 온전히 얻은 평화는 아니다. 잠시의 휴전으로 평화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여전히 뉴스의 두려운 자막과 사상자를 알리는 숫자,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은 우리 곁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여전히 삶의 터전과 추억을 잃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스노우 헌터스>는 차분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전쟁 이후의 삶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전쟁을 겪은 이들은 다시 따뜻한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지 또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스노우 헌터스>는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큰 소리로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눈 속에 묻혀 있던 한 사람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눈 속에서 발견된 스노우맨처럼 전쟁의 한복판에서 얼어붙은 존재는 조국도, 이념도, 이름마저 희미해진 채 제3국으로 향한다. 그곳은 태양이 강렬하고 밤이 짧은 나라,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하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겨울이 남아 있다. 전쟁은 끝나도 기억은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스노우 헌터스>는 상처가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순간들이 조금씩 통증의 결을 바꾸어 놓는 과정을 보여 준다. 재단사의 침묵, 정원사의 손길, 거리의 아이들이 건네는 눈빛 속에서 다시 세상에 발을 붙이게 만든다. 그것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아주 조금씩 스며드는 온기다. 마치 겨울 끝자락에 햇빛이 눈 위에 내려앉듯 느리지만 분명하다.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우리는 그 소식을 반복해서 접하며 무력해진다.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감각과 슬픔이 너무 커서 감정조차 마비되는 순간들은 여전하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도착할 수 있다. 낯선 땅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온다.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증명하기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작은 숨을 돌릴 자리를 내어 준다.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전쟁 이후의 삶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하나의 증거처럼 읽힌다. 결국 그것은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하는 미세한 온기이자 사라지지 않는 겨울 속에서도 끝내 녹지 않는 마음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