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일상을 벗어던지고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 보자. 나 홀로 떠나는 여행도 좋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떠나는 여행도 좋다. 여행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 미식가, 뭐든 다 좋아하는 예스맨, 휴식을 취하는 사람 등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역할이 분배된다. 그리고 <짧은 휴가>의 저자는 높은 확률로 ‘찍는 사람’이 된다.저자는 여행지에서 찍어 온 사진들을 들여다보고서야 뒤늦게 그 도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도 하고,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으로 여행을 결심하기도 한다. 저자에게 여행은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곳에서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래서 <짧은 휴가>는 여행 에세이라기보다 강렬하고 순전하게 감지되는 어떤 심상들에 가깝고, 저자의 글 안에서 사진과 문장과 분위기는 구분 없이 끈끈하게 한 덩어리로 엉겨 있다.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한창 코로나 팬데믹이 유행하기 전에는 일 년 동안 국내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적도 있다. 단순히 설렘에 부풀어 여행을 계획하고, 놀고먹는 게 즐거워서 여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삶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마도 계획한 것보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줄 때도 있다. 길을 잘못 들어 분노하고 포기하는 대신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게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동안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게 바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우리의 한 순간을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어떤 전제에도 속하지 않던, 한 순간의 우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