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느린 걸음>은 1990년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소소한 기억의 편린을 기록한 책이다. 도시 곳곳의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담아 짧은 글과 함께 기록한 책 속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소박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또한 오랜 시간 동안 온전히 흐르고 있는 시간을 카메라로 담아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섬세한 시선과 평범하고 솔직하지만,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지친 우리의 일상에 작은 휴식을 내어 준다.꿉꿉한 날씨 탓일까, 요즘 들어 마음을 앓는 일이 잦다. 어느 날의 하루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이 같은 슬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의 빛나는 기억 때문이 아닐까. 그때 내가 품었던 감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두고 이렇게 괴로운 날 가끔 몰래 훔쳐보기도 한다.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담아내기에 너무 벅찼던 감정, 다시 없을 만큼 크게 웃었던 순간,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한다는 걸 알게 해 줬던 기억.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뜨거운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추운 날들을 버티게 하는 난로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